[기자수첩] 17분만에 끝난 '49년 신격호 시대'… ‘맨손 신화’ 신격호도 그저 노인이었다

입력 2016-03-25 17:03 수정 2016-03-2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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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애 산업1부 기자

"일흔이 넘으면, 나는 내가 신선(神仙)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내 생각이나 결정만이 옳다고 여겨 고집 부리던 일도 우스워지는 줄 알았습니다." 이 글귀는 '어.사.연(어르신 사랑 연구모임)'의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라는 책 서문의 한 부분이다.

이 글귀가 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에게 위안이 될까. 그는 구순이 되도록 끝까지 고집스럽게 버티면서 명확한 후계 구도를 정리하지 않았다.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기업 경영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혀왔던 그의 고집스러운 경영 의지는 결국 분쟁의 사단을 만들었다.

몸이 성치 않을 구순의 나이에 장남 신동주(62)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61) 롯데그룹 회장이 벌이는 경영권 다툼을 지켜봤다. 그도 장남 편에 서 골육상쟁을 벌였다. 결과는 씁쓸했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해 7월 28일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직에서 해임됐다.

1948년 자신이 작명한 회사 일본 롯데의 대표(1948년)를 맡은 지 67년, 일본에서 첫 사업(1945년)을 시작한 지 70년만의 퇴장이었다. 그리고 오늘(25일) 자신이 세운 한국 롯데그룹의 모태인 롯데제과 등기이사에서 49년만에 물러났다. 이날 롯데제과 정기 주주총회에서 그의 사임 승인이 결정되는데 고작 17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대기업을 일구며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받던 그의 17분 퇴진에서 격세지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 측은 "신 총괄회장이 고령으로 인해 정상정인 경영활동이 어렵다고 판단돼 결정한 것"이란 입장이다. 그러나 아무리 미화해도, 결국 아들에 의한 강제 퇴진이다.

그런데, 그의 억척스러운 고집이 아름답지 못하고 쓸쓸하기 그지없는 퇴진을 만든 것으로 밖에는 해석될 수 없는 현실이 더욱 안타깝다. 1948년 일본에서 롯데를 세우고, 한국으로 건너와 맨손으로 지금의 재계 5위 롯데그룹을 만든, 그야말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재계 1세대 창업자도 다른 여느 노인들처럼 신선은 되지 못했다.

'황제형 총수'로 군린해왔던 신 총괄회장은 끝까지 "내가 정한 후계자는 장남"이라고 외쳤다. 왜냐면 이 사태가 벌어지기전까지 '신격호의 말은 곧 법'이 롯데 문화였기 때문이다. 롯데홀딩스 임원들을 모아놓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너 나가"라며 해고를 지시한 '손가락 해임' 일화만 봐도 그의 고집스런 독단적인 경영 스타일을 방증한다.

나의 노년의 모습은 어떨까. 누구나 아름다운 노년을 그린다. 유일한 생존자인 재계 1세대 기업인 신 총괄회장의 노년이 지금이라도 아름다워지려면, 양국서 거대기업을 '철권통치'해온 고집을 버려야 한다. 이제라도 롯데를 투명한 회사로 '환골탈태'하겠다는 아들의 의지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가 고집할수록 롯데는 온 국민에게 미움받는 기업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초라한 그의 모습을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그의 의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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