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세모자 사건, 유령이 키웠다

입력 2015-07-30 11:13 수정 2015-11-12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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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온라인국 모바일팀장

“도대체 사람들은 편지로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글로 쓴 입맞춤은 상대에게 도달하지 않아요. 오히려 유령이 중간에서 차지하고 말지요.”

카프카가 연인 밀레나에게 보낸 편지 중 한 구절이다. 카프카에게 편지란 상대와의 진정한 소통이 아닌 존재하지 않는 유령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편지에서 전화로의 발전을 언급하며 카프카는 “유령은 굶주리지 않으며, 인간만 사라질 뿐”이라고 결론짓는다. 형이상학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간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지 않는 이상 소통의 직접적인 실체는 모호한 것이니까. 그런 카프카가 100년 후인 지금 온라인에서 수다 떠는 세상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최근 인터넷 세상에서 떠들썩한 이슈 중 하나는 ‘세 모자(母子) 사건’이다. 10대 아들 둘을 둔 40대 여성이 자신과 아들들이 남편으로부터 십 수년간 성폭행과 성매매를 당했다는 내용이다. 인터넷에 올린 ‘고백성 고발’로 시작된 이 사건에 네티즌이 들썩였다. 이들을 구해야 한다며 한 달 내내 들끓었던 반응은 그러나 한 TV시사 프로그램에 의해 반전된다. 이 프로는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세모자가 주장한 엽기적인 성범죄는 거짓임을 보여줬다.

아직 진실이 명확히 규명되진 않았지만 세 모자의 호소에 분노했던 사람들은 멘붕이다. 세모자를 위해 만든 인터넷 카페에 모여든 3만여명의 사람들, 기사에 달린 수십만의 댓글들(대부분 이들을 구하자는 내용이다), 백악관 인터넷 민원사이트에 올린 서명운동 촉구 페이지, 중국 웨이보의 실시간 검색어에 ‘한국 세 모자를 돕자’ 등장까지…. 사람들은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세모자 얘기를 나누고 퍼뜨리면서 주요 의제로 만들었다.

세모자 성폭행 사건을 보며 얼마 전 읽었던 한병철의 ‘투명사회’가 떠올랐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대표되는 디지털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서다. 디지털 시대는 정보를 드러내거나 혹은 정보가 드러나는 ‘투명성’의 사회인데, 이 투명성에는 내용을 의심하는 ‘부정성’이란 없다는 것이다. 세모자 건이 딱 그렇다. “세상에나, 그랬대” 한 마디면 충분한 거다. 빨리 전파하기에 급급해 해석하고 판단하는 과정이 생략된다. 거기에다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은 비상식적인 사건을 그럴싸하게 만들었다. 가해자로 등장하는 목사는 사이비 종교집단이란 데자뷰를, 그리고 제대로 일 못 하는 경찰과 진실을 밝히지 않는 언론 등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캐릭터들이 판단중지 기제로 한몫했다.

‘투명사회’의 지적과 세모자 사건이 겹쳐지는 또 다른 영역은 ‘격분’이다. 디지털 영역에서 격분은 대화나 논의가 없는 감정적인 히스테리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주의를 동원하고 묶어내며 덩치를 키운다. 세 모자 역시 격분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미성년자인 소년들이 무자비한 성폭행과 성매매의 피해자라니. 특히 자녀를 둔 30~50대 여성들의 감정을 자극했다. 세모자를 옹호하는 글들을 보면 “정말 분통이 터집니다”, “불쌍한 세모자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덜덜 떨리고 온종일 일이 손에 안 잡혀요”라는 등 감정 일색이다. 경험했다시피 디지털 세상에서 분노의 전염은 상상을 초월하는 스피드를 지닌다.

세 모자 사건을 듣고 흥분했다가 (거짓이 분명한) 이야기에 “낚였다”, “쪽팔린다”라며 허탈해하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인터넷과 모바일에 떠도는 유령에게 홀렸을 뿐이라고. 그러나 문제는 앞으로 그 유령들이 많아지면 많아졌지 줄어들지는 않을 거란 사실이다. 카프카의 말처럼 유령들로 인해 인간이 사라질지, 아니면 더욱 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그것은 이율배반적인 유령이다. 유령과 맞닥뜨린 햄릿이 내뱉은 대사처럼. “유령이여, 네가 천상의 영기(靈氣)를 가져오는 천사이든 지옥의 독기를 몰고 오는 악령이든, 나 그대에게 말을 건네겠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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