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어쨌든, 대통령 회고록은 중요하다

입력 2015-02-0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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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경험을 기록하고 나누는 일은 소중하다. 국정에 관한 경험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국가를 잘 운영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국가들이 국정에 참여한 사람들의 개인적 경험과 기억(personal memory)을 집합적이고 제도화된 경험과 기억(institutional memory)으로 만들어 두는 일을 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이 부분이 매우 약하다. 대통령과 정부가 바뀌면 그 이전 정부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크게 두 가지 일이 일어난다. 하나는 새 정부에 의해 경계와 차별의 대상이 되는 일이다. 특히 대통령 주변에서 일한 사람들은 심한 감시와 내사에 시달린다. 경험과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는 정반대의 일이다.

또 하나는 상업적 접근의 대상이 되는 일이다. 기업과 법무ㆍ회계법인 등이 이들이 가진 네트워크를 활용하기 위해 접근을 한다. 그 결과 이들의 경험과 기억은 로비를 하거나 장사를 하기 위한 상업적 자원으로 활용된다.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라지고 만다.

일종의 증언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나 하자.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정책기획위원장 자격으로 정부가 한 중요한 정책 작업들을 정리ㆍ기록하는 일을 총괄한 적이 있다.

백서나 홍보용 문건을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이해관계 세력들이 밀고 당기고 했던 일들, 그래서 성공하고 실패했던 과정을 모두 기록하는 일이었다. 청와대 비서관들이 주무를 맡았고, 국책연구원의 연구원들과 각 부처의 공무원들이 대거 집필에 참여했다. 또 청와대 참모들과 각 부처의 장ㆍ차관 등 관계 인사들이 모두 증언했다. 줄잡아 수천 명이 참여한 작업이었다.

최종 보고서는 모두 77권, 1만 쪽을 훨씬 넘는 분량이었다. 물론 완벽하다고 말할 수준은 아니었다. 일부 팀은 여전히 홍보용 책자 같은 결과물을 가지고 오기도 했다. 하지만 돌려보내고 또 돌려보내면서 만들었다.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나름 가치가 있는 보고서들이었다는 말이다.

다 만들어진 것이 2008년 1월 말, 문제는 인쇄와 배포를 할 수가 없었다. 이미 다음 정부의 인수위가 꾸려져 있는 상황, 다른 정부기관과 마찬가지로 주무기관인 정책기획원회 예산도 닫혀 있었다. 인건비 등을 제외하고는 예산을 쓸 수가 없었다. 이미 끝난 정권, 뭘 더 이야기하겠나. 그저 눈물을 머금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복사물 취급하는 업체에 부탁해 20질을 만들어 대통령과 총리, 그리고 일부 기관에 배포했다. 그리고 CD에 담아 여러 기관에 돌렸다. 당연히 인수위와 대통령기록관에도 보냈다. 대통령기록관의 경우 16대 대통령 홈페이지 대문에서 바로 연결할 수 있도록 했다.

다음 정부가 얼마나 큰 관심을 가졌을까? 글쎄다. 실무 차원의 연락도 없었던 것 같고, 정책 관련 증언을 한 인사들에게도 뭘 물어 온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앞의 정부가 한 일은 다 잊어라’는 분위기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그런지 대통령기록관에 올려놓은 보고서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접속조차 잘 안 되었다.

앞 정부의 기록을 중시하지 않던 정부, 그 정부의 수장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그 나름의 기록, 즉 회고록을 내어 놓았다. 발간의 목적을 ‘다음 정부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라 했다. 한마디로 반갑다. 이제라도 경험과 기억을 기록하고 나누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된 것 같아서이다.

그러나 기록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탓일까?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북한이 뭘 요구했느니 하는 부분은 충격적이다. 어디까지를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나누어야 하는지에 대한 감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이로 인해 우리는 지난 NLL(북방한계선) 관련 남북 정상들의 발언을 공개한 데 이어 다시 한 번 ‘막 가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반갑다. 기록 그 자체는 여전히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도 세종시 부분 등과 관련해 불쾌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건 또 다른 문제다. 일단은 우리 모두 이 회고록을 귀중한 자산으로 받아야 한다.

반어적 표현도, 비꼬는 말도 아니다. 정말 그렇게 했으면 한다. 심지어 그 실수와 잘못까지도 우리의 자산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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