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도 '파밍사기' 피해에 대해 일정 부분 책임져야 한다는 첫 판결이 나왔다.
'파밍(Pharming)' 사기는 범죄자들이 컴퓨터에 악성코드를 심어 가짜 금융기관 홈페이지에 연결되도록 하고 돈을 빼가는 범죄를 말한다. 파망사기 피해자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범죄자가 아닌 은행에도 책임을 묻게 되면서 피해자 구제에 숨통이 트일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전현정 부장판사)은 15일 파밍사기 피해자 허모씨 등 33명이 신한은행과 국민은행, 하나은행, 중소기업은행,농협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은행들은 허씨 등에게 총 1억91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
재판부는 파밍 사기 피해에 대해 은행 측이 책임을 져야 하는 지를 3가지 사례로 나눠 판단했다.
우선 피해자가 다른 사람에게 공인인증서 등을 사용하도록 맡긴 경우에는 은행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재판부는 "공인인증서는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거나 맡겨 사용하도록 허락해서는 안된다"며 "제3자가 공인인증서를 받아서 사용하다가 금융사고를 당했을 때에는 피해자가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피해자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을 통해 은행사이트로 들어가려다 파밍사이트로 유인당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은행이 20%의 책임을 진다.
재판부는 "은행사이트로 들어가려다 파밍사이트로 유인당한 피해자들은 보이스피싱 등으로 자신의 정보를 금융거래와 무관한 곳에 입력한 경우와는 다르다"며 "이러한 정보를 입력한 잘못이 전자금융거래법상 피해 책임을 이용자들에게 전부 부담시킬 정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사기를 당한 경우에도 피해자가 공인인증서 재발급됐다는 통지를 받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에는 은행 책임이 10%로 줄어든다. 재판부는 "공인인증서가 재발급됐음을 알리는 통지를 받았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거래계좌에서 예금이 계속 인출되는 등 손해가 확대되므로, 피해자들이 손해 확대에 기여한 잘못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파밍사기 피해 사례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실에 따르면 파밍 사기 피해액은 2011년 72억원에서 2012년 349억원으로 급증했고 2013년에는 546억원으로 불어났다. 지난해 10월까지의 집계액만 642억원에 달한다. 파밍 사기의 신고 건수도 2011년 1373건, 2012년 7564건, 2013년 1만5206건으로 급증했다. 2014년 10월까지 접수된 신고건수는 1만4412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