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버핏과 게이츠 등 40명이 기부할 돈은 최소 1500억달러, 한화로 175조원에 이른다.
앞서 세계 최대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시스코의 존 모그리지 전 회장과 록펠러 가문의 데이비드 록펠러, 영화감독 조지 루카스,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 뉴욕시장 마이클 블룸버그도 등이 이미 자신의 재산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서명했다.
하버드대 출신 상원의원은 찰스 슈머(민주·뉴욕), 제이 록펠러(민주·웨스트버지니아), 알 프랑켄(민주·미네소타), 제프 빙거먼(민주·뉴멕시코), 데이비드 비터(공화·루이지애나) 등 5명이다.
하원의원으로는 스캇 머피(민주·뉴욕) 등 9명이 하버드대를 출신이다.
스탠퍼드대는 현역 의원 11명으로 정치인 배출 대학 2위에 꼽혔다.
맥스 보커스(민주·몬태나)...
아버지 스펜서 모건이 죽은 후 존 피어폰트 모건 1세는 회사 이름을 JP모건으로 변경, 지금의 모건가를 탄생시켰다.
큰 변화도 있었다. 록펠러가문의 스탠더드오일트러스트가 반트러스트법 제정으로 34개의 독립회사로 해산된 것처럼 모건가 역시 분리 과정을 거쳐야 했다.
1933년 여수신 전문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하는 글래스-스티걸법이 제정된 것이다....
록펠러 1세의 아들 존 데이비슨 록펠러 2세는 재력을 바탕으로 많은 기관들을 설립, 자선사업에 혼신하며 록펠러 자선사업의 전성기를 이룬다.
2세의 이 같은 노력에 록펠러 가문은 여론의 엇갈린 평가 속에서도 명문가로 재부상한다.
록펠러는 록펠러 재단을 세워 문화예술, 교육, 의료 전반에 걸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설립 이후 당시 25억달러 상당의 자금을...
록펠러 가문의 영광은 존 데이비슨 록펠러 1세(1839∼1937)의 회계장부로부터 시작된다. 열악한 가정환경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록펠러는 일기 대신 회계장부를 적으며 하루를 셈으로 매듭지었다.
평범한 기업인이었던 그에게 갑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은 기름이었다.
대규모 유전 발견 이후 록펠러는 1863년에 클리브랜드에 정유회사를 설립했고 1870년...
석유재벌 존 D. 록펠러도 석유 왕으로 불리며 막대한 부를 축척했으나 은퇴 후 미국의 부유층 사이에 기부 문화를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핏 역시 전 세계인들에게 선한 부자로 기억되고 있다.
고전적 경제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기업가는 세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고리대금업자...
그의 죽음과 관련 일본 작가 히로세 다카시는 1986년 출간된 ‘제 1권력’을 통해 전세계 금융과 산업자본의 지배자였던 모건과 록펠러의 주도로 이뤄진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해 화제를 모았다.
1962년 당시 모건과 록펠러의 연합계열이었던 US스틸과 베들레헴스틸이 철강 가격을 올리려 하자 케네디 대통령은 이들 기업에 대한 철강 주문을 중지하게 된다....
사실은 1830년대~1930년대까지 같은 시대를 산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와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대부터다.
이들이 자선사업을 통해 변화시킨 영역은 교육, 문화, 의료 등 광범위하다.
정유사업을 통해 재벌이 된 록펠러는 시카고대학교를 설립해 교육의 산실로 키웠고 ‘록펠러 재단’도 세워 문화예술, 교육, 의료 전반에 걸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56년 미국과 아시아지역간 상호 이해와 우호 증진을 목적으로 존 록펠러 3세에 의해 설립된 아시아 소사이어티는 비영리 재단으로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1989년부터 매년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의 경제포럼인 아시아 소사이어티 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김승유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결정과 탁월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1991년 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