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은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湖巖)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일곱 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호암이 대구 서문시장 근처에서 청과·건어물 무역회사인 삼성상회를 경영하던 시절이다.
형으로는 제일비료 회장을 지낸 맹희 씨와 고인이 된 창희 씨, 누나로는 인희(한솔그룹 고문), 숙희, 순희, 덕희 씨가 있다....
25일 중국 관영매체 인민일보 해외판은 “이건희 회장이 7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며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 이병철 삼성그룹 창립자의 엄격한 규율 속에 좋은 교육을 받았던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관영 CCTV방송은 삼성그룹을 한국 최대의 기업으로 성장 시킨 인물이자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던 이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텐센트뉴스는...
인도 타임스오브인디아(TOI)는 “이 회장이 아버지 이병철 초대회장으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을 때에만 해도 삼성그룹은 일본 기술에 의존해 제품을 생산했었다”며 “그러나 메모리 칩과 디스플레이의 생산라인을 구축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는 등 과감한 결정으로 삼성의 부상을 촉진시켰다”고 보도했다.
싱가포르 스트레이츠타임스(ST)는 이 회장이...
당시 이병철 선대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반도체가 가능하겠느냐"며 사업 진출에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반도체가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에 부합하고, 한국과 세계 경제의 미래에 필수적인 산업이라 주장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 한국의 산업 현실에서 반도체 사업은 위험 요소가 너무나 많았다. 대규모...
日 유학 이후 서울사대부고에서 레슬링 시작해
선대 이병철 회장부터 이건희 회장까지 삼성가(家)의 ‘스포츠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다.
1942년생인 이 회장은 한국전쟁 직후였던 초등학생 무렵, 일본 유학생활에 나섰다.
당시 일본에서 프로 레슬러 역도산의 활약을 봤던 이 회장은 고교 때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사대부고에서 레슬링을 시작했다. 부모...
‘포스트 이병철’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이 회장은 세계 1등 기업을 만들기 위한 자신만의 ‘플랜’을 하나씩 실행에 옮겼다. 이 회장은 평소 말을 아꼈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화두를 던졌다. 이 회장의 한 마디는 그 자체로 돌파구가 됐고, 삼성의 도전과 혁신의 동력이었다.
1993년 6월 7일 이 회장의 독일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또한, 박 장관은 이 회장이 “일본에서 유학하던 시절 얘기도 하셨다”며 “유학 시절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집에서 영화를 혼자 많이 봤고, 특히 일본영화 ‘천칭’은 선대 이병철 회장이 ‘강추’해 여러 번 봤다고 한 것이 오래 기억에 남았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영화를 수소문해 저도 봤다”며 영화의 내용을 소개했다. 이어 “일본 어느 마을 솥뚜껑 판매회사의...
특히 이건희 회장은 이병철 창업주의 셋째아들로 형인 이맹희 전 CJ그룹 명예회장과 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을 제치고 삼성그룹 경영 후계자에 올랐다. 이를 놓고 다양한 관측이 나오지만 이병철 창업주는 이건희 회장의 경영능력이 뛰어나 그룹을 물려주기로 결정했다는 뜻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8년간 후계자 수업을 받은 이건희 회장은 1987년 11월 19일 이병철...
이 회장은 삼성을 글로벌기업으로 키워냈다.
다음은 고인의 출생부터 타계까지 연보다
▲ 1942년 대구에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남
▲ 1953년 부친 권유로 일본 유학길에 오름
▲ 1961년 서울사대 부속 고등학교 졸업
▲ 1965년 일본 와세다(早稻田)대 상과대학 졸업
▲ 1966년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수료, 10월...
이후 8년간 후계자 수업을 받다가 1987년 11월19일 이병철 선대 회장의 타계 이후 10여 일이 흐른 12월 1일 제2대 삼성그룹 회장에 올랐다. 당시 이 회장의 나이는 46세였다.
이 회장은 취임사에서 사업보국, 인재제일, 합리추구 등의 창업주의 경영이념을 계승하면서 90년대까지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켜 나가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이후 이 회장은...
이 회장은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대구에서 1942년 출생했다. 한국전쟁을 피해 일본에서 중학교를, 서울에서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 와세다 대학과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며 “조화와 조문은 정중히 사양하오니 양해해달라”고 당부했다.
이 회장은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대구에서 1942년 출생했다. 한국전쟁을 피해 일본에서 중학교를, 서울에서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 와세다 대학과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이병철 선대 회장, 이건희 회장, 이재용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동안 끊임없는 신사업 진출을 갈망했기 때문이다.
메뉴가 다양해졌지만, 맛을 놓치지 않았다. 라면과 김밥, 돈가스 등은 이미 세계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다만 새로 도입한 메뉴에서 기존 강자보다 좋은 맛을 내기란 쉽지 않다. 시간이 필요하다.
최근 대형 수주 소식이 잇달아 들려오고 있는 건...
삼성문화재단은 1965년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회장이 설립해 리움미술관, 호암미술관을 운영하며 다양한 문화예술 공헌사업을 펼치고 있다.
다음은 김황식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의 프로필이다.
◇출생연도 : 1948년(전남 장성 출생)
◇학력
1979년 독일 마부르크대학 수학
1971년 서울대 법학과 학사
1966년 광주제일고등학교
◇경력사항...
호암상은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 선생의 인재제일과 사회공익 정신을 기려 학술·예술 및 사회발전과 인류복지 증진에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인사를 현창((顯彰)하기 위해 1990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제정했다. 올해 30회 시상까지 총 152명의 수상자에게 271억 원의 상금을 수여했다.
권 고문은 개발 당시를 회상하며 “당시 삼성이 반도체 사업을 한다는 자체가 넌센스(Nonsense) 같은 일이었다”며 "고(故) 이병철 회장께서 반도체 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하시고, 이후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건희 회장이 지속적인 투자를 해서 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도체 사업에서 삼성전자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워낙 기술 발전...
권 고문은 개발 당시를 회상하며 “당시 삼성이 반도체 사업을 한다는 자체가 난센스(Nonsense) 같은 일이었다”며“ ”고(故) 이병철 회장께서 반도체 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하시고, 이후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건희 회장이 지속적인 투자를 해서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사업에서 삼성전자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워낙 기술 발전 속도가...
이병철 선대 회장, 이건희 회장, 이재용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동안 삼성은 위기에도 과감한 투자를 중단하지 않고 오히려 몰아붙였다. 이를 통해 초격차를 유지하며 글로벌 톱 기업으로 올라섰다.
이재용 부회장 역시 지난달 평택 캠퍼스에 낸드 플래시 신규 라인 증설 투자를 발표하는 등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도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사법...
이번에 웹툰으로 제공하는 인물은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 고(故) 정주영 현대 회장, 고(故) 구인회 회장 등 10명이다.
일본강점기부터 한국전쟁 등 현대사에서 해당 기업의 창업과 성공과정을 묘사했다. 창업주들의 유년시절과 잘 알려지지 않은 경영 비화, 경영철학 등도 담겼다.
17일부터 매주 2화씩 올라갈 예정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웹툰 ‘C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