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호신술을 익힌 옛 선비들은 급한 상황에서 부채를 무기로 사용하기도 하였으니 호신을 해 주는 덕 하나가 또 추가된다. 이래서 10덕선이라는 말도 있다. 부채 하나에 이처럼 많은 용도를 부여한 조상들의 지혜와 해학(諧謔)이 자랑스럽다.
혹자는 습기에 약한 한지로 만든 부채로 어떻게 비를 피하며, 방석 대용, 심지어 밥상 대용으로까지 쓸 수 있느냐고 반문할지...
정일당은 스무 살에 충청도 충주에 사는 14세의 선비 윤광연(尹光演·1778~1838)과 혼인했다. 정일당과 남편 모두 양반가 후손이나 가정형편이 좋지 못했다. 그래서 27세 되던 해에 정일당은 남편과 함께 가난을 타개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경기 과천으로 왔다. 이곳에서 남편이 서당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쳤으나 대부분 생계는 본인이 삯바느질 등을 하면서 도맡았다....
당시 요동지방에서는 선비족의 일파인 모용부(慕容部)의 전연(前燕)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두 나라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342년(고국원왕 12년) 전연의 모용황은 고구려를 기습 공격했다. 환도성은 함락되었고 고국원왕은 겨우 단신으로 빠져나가야 했다. 그러나 왕모인 주씨는 미처 피신하지 못하고 사로잡혔다. 전연의 군대는 퇴각하면서 주씨를 인질로 삼아...
그런 간격을 메우는 게 양형위원회가 주력해야 할 일입니다.”
◇ 정성진 前 장관은…
겸허하고 청렴한 ‘법조선비’…스스로 ‘淸訥齋’ 당호 지어
정 전 장관을 인터뷰한 장소는 서울 충무로의 개인 연구실 청눌재(淸訥齋). 맑은 마음과 생활, 말을 더듬을 정도의 겸허(謙虛)와 경건(敬虔)을 지향하는 뜻을 담고 있다. 스스로 당호를 지은 이 연구실의 벽에는...
이후 KBS2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MBC ‘구가의서’, ‘밤을 걷는 선비’, SBS ‘피노키오’ 등에 출연하며 활발히 활동했다.
또한 이유비의 동생 이다인 역시 2014년 tvN 4부작 드라마 ‘스무살’에 출연하며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MBC ‘여자를 울려’, KBS2 ‘화랑’ 등에 출연하며 언니 못지않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편 지난 1일 방송된...
이들 외에 배용준, 김수현, 박서준 등이 소속된 키이스트도 자회사 콘텐츠K를 설립, KBS2 '드림하이' 시리즈와 '학교2013', MBC '밤을 걷는 선비' 등을 선보였다. 또 FNC엔터테인먼트 자회사 FNC애드컬쳐도 KBS2 '학교2015:후아유', SBS '언니는 살아있다' 등을 만들면서 제작사로 기반을 닦았다.
대형 스타들과 자본을 겸비한 대형 기획사들이 제작사를...
사극이나 ‘전설의 고향’ 같은 프로그램에는 과거 보러 가는 선비 얘기가 많이 나온다. 과거제도는 중국에서는 수나라 때 처음 시작하였고, 당나라 때에 이르러 확고한 제도로 정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광종 때 중국으로부터 귀화한 쌍기(雙冀)의 건의를 받아들여 시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부 명문집안의 자제들이 조상의 공로에 힘입어 과거를 치르지 않고서도...
그래서 옛 선비들은 명분에 벗어나는 일을 하는 것을 가장 치욕스럽게 생각했다. 대의명분(大義名分)을 생명보다도 중히 여겨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것이다.
이름이 바르게 정립된 세상이 바른 세상이다.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혹은 자신이 지은 이름값을 하면서 사는 세상,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즉 임금은 임금의 이름값을 다하고 신하는...
조령 남쪽의 사람들이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장사 길을 떠나는 상인도,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선비도 반드시 이 조령을 넘어야 했다. 거꾸로 서울로부터 과거에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도, 장사에 성공했다는 경사도 다 이 고개를 넘어와야만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경상북도 문경, 즉 ‘聞慶(聞:들을 문, 慶:경사 경)’은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 곳’이라는 뜻에서 생긴...
청년전세임대의 경우 거주인원에 따라 지원단가를 차등화하고, 입주자 경수선비 지원은 1회에서 2회로 늘린다.
징수 가능성이 없는 건강보험료 10년 이상 장기체납자 및 미성년자 부모의 체납 보험료는 결손 처분키로 했다. 대상은 87만 세대, 약 1200억 원 규모다. 소득·재산 등 상환능력이 없는 경우 징수가능성 여부를 검토해 결손 처리할 예정이다.
4월에는 1년...
당장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선비가 글을 읽을 때 최소한 5대 조상까지의 이름자가 글에 나오면 그 글자는 소리 내어 읽지 않고 묵음으로 넘어갔다.
필자가 어릴 때 할아버지는 강릉 옆에 있는 주문진을 주문진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증조할아버지의 호가 ‘주문’이어서다. 주문진을 주문진이라고 무심히 부르는 말 속에 자기도 모르게 부친의 호를 입에 담게 되기...
인의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하면서 왕이 나라의 이익만을 생각하면 관리들은 자기 집안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선비나 백성들은 일신상의 이익만을 생각하게 된다고 하였다. 아울러, 그처럼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모두 이익만을 생각하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설명을 한다.
인의를 강조하지 않은 채 이익만을 챙기다 보면 물질에 눈이 가려 왕이건...
진짜 선비에겐 변절이란 상상할 수 없다. 그저 일편단심일 뿐이다. 이들은 ‘예의’로 행동을 규제하고 ‘염치’로 마음을 단속했다. 일제 강점기 시인 이육사(1904.5.18~1944.1.16)는 그런 선비였다. 당시 많은 문인들이 변절한 데 반해, 그는 글과 행동으로 끝까지 일본에 항거한다.
본명이 원록(源祿)이었던 이육사는 어려서부터 형제간 우애가 깊고 용모가 단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