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본격화한 중국의 세계 진출은 이른바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 현상을 낳았고, 이후 미-중 관계는 경쟁을 넘어 관세폭탄과 기업제재 등 노골적인 적대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올해 초 바이든 취임 이후에도 미국의 대중국 관계는 초당적 이슈로서 관계 개선의 징후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간 우리는 한-미동맹하에서 안보를...
FT는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시대를 연 이후로 볼 수 없던 방식”이라고 현 상황을 요약했다.
중국 관영 언론매체들은 당국의 규제 단속을 ‘심오한 혁명’이라고 지칭한 프리랜서 작가 리광만의 글을 최근 일제히 게재하며 벌써 시 주석의 행보를 찬양하기 바쁘다. 리광만은 “중국에서 기념비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이는 자본주의 파벌에서...
과거 덩샤오핑은 공동부유 수단으로 중국 개혁·개방 정책을 추구하는 노선을 취했으나 시진핑 정권은 고소득층과 기업의 소득을 조절하고 사회 환원을 장려하는 정책 등을 위한 슬로건으로 활용하고 있다.
용어설명=홍색규제사회주의 국가에서 모든 사회문제를 정부의 통제와 규제로 해결하려 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 공산당이 사회와 거의 모든 산업에 걸쳐...
덩샤오핑은 “사회주의는 가난한 것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잘 사는 지역부터 잘 살아 못사는 지역을 이끌어 줘야 한다는 ‘선부론’을 주장했다. 중국의 본격적인 개혁개방이 진행되었고,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출발인 셈이다. 덩샤오핑의 선부론도 공동부유를 향한 단계로 그의 ‘두개의 대국(兩個大局)’ 사상에서 잘 나타난다. 첫 번째 대국은 동부...
중국 개혁·개방의 설계자였던 덩샤오핑은 공동부유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경제건설에 중심을 두는 개혁개방 정책을 추구했고 시장 개방 과정에서 일부 사람과 지역이 먼저 부유해지는 ‘선부론’을 허용했다. 결과는 중국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나타났고 공산당은 ‘샤오캉사회(小康社會)’라는 오랜 목표를 달성했다. 샤오캉사회는 의식주 걱정을 하지 않고 어느...
시 주석은 마오쩌둥부터 덩샤오핑까지 과거 지도자들을 호명한 후 “중국인들은 구(舊)시대를 파괴하는 데 능숙할 뿐 아니라 새 시대를 건설하는 데도 능하다”며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살릴 수 있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공산당이 없다면 중국의 부흥도 없었다. 당은 국가의 근간이자 생명줄이며, 모든 중국인의 이익과 복지가 달린 핵심”이라고...
제국주의·내전에 파괴된 빈국서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싱가포르 국부 "공산주의는 중국서 실패…공산당은 성공""내부 대결 아닌 전체 위한 시스템 발전 등이 성공 비결"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이 1949년 중국 인민공화국을 수립한 이후, 그리고 특히 덩샤오핑이 1978년 과감하게 개혁·개방 정책을 시작한 이래로...
시 주석은 덩샤오핑이 구축했던 권력 승계 시스템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마오쩌둥 이후 가장 강력한 지도자가 됐다. 이를 토대로 중국 공산당은 ‘2개의 100년’이라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번 창당 100년에 이어 건국 100년을 맞는 2049년까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지칭하는 ‘중국몽(中國夢)’을 이루겠다는 포부다.
중국이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지만, 시 주석...
‘원바오’는 덩샤오핑의 1978년 개혁개방 확대 및 1992년 남순강화를 계기로 달성했다. ‘전면적 샤오캉 건설’도 후진타오의 서부대개발과 시진핑의 중국몽 세부 목표 아래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실질적인 이면을 살펴보면 아직도 많은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특히 농촌과 빈곤퇴치는 향후 중국이 가고자 하는 ‘따통사회’ 건설의 핵심인데, 생각보다...
중국 전문가로도 알려진 그는 1987년에는 8개월간 중국에 머물렀고, 2000년 강단에서 내려온 후에는 ‘중국 개혁·개방의 아버지’ 덩샤오핑 연구에 몰두했다. 연구의 집대성으로 2011년 출간한 ‘덩샤오핑 평전’은 중국어로도 번역돼 중국 본토와 홍콩, 대만 등 중화권에서 100만 부 넘게 팔리며 베스트 셀러가 됐다.
한국에는 1965년 처음 방문한 후 여러 차례 다녀갔고...
빅터 가오 국제관계 전문가 겸 전 덩샤오핑(鄧小平) 통역은 SCMP에 "미국은 WTO와 같은 국제기구보다 상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면서 "중국은 지속해서 나이지리아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미국이 '거부권 행사'를 끝까지 밀어붙일 태세라는 점이다. 이는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WTO에서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시 주석의 이번 주 광둥성 방문은 1992년 이 지역을 방문해 꺼져가던 개혁·개방의 불씨를 다시 살아나게 했던 덩샤오핑의 ‘남순강화’를 떠올리게 해 여러모로 주목을 받았다.
시 주석은 “오늘날 세계는 한 세기 만에 가장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런 변화를 가속화했다. 경제 세계화는 역류에 직면했고 보호주의와 일방주의가 부상하고 있으며 세계...
덩샤오핑의 외손녀 사위인 우샤오후이 전 회장이 2004년 안방보험을 설립했다. 이후 안방보험은 공격적인 M&A로 중국을 대표하는 민간 금융기업으로 떠올랐다.
우리나라 동양생명과 옛 알리안츠생명(현 ABL생명) 등 전 세계 금융사를 인수한 것은 물론 미국 뉴욕의 JW메리어트에식스하우스와 월도프아스토리아 등 럭셔리 호텔과 리조트를 사냥했다.
그러나...
두 번째 오산은 개혁개방의 아버지 덩샤오핑이 중국의 발전을 위해 그렸던 청사진을 계속해서 헌신짝처럼 버렸다는 점이다. 바로 도광양회와 정권 이양 구조, 일국양제다. ‘자신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면서 실력을 키운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는 집권 초기부터 깨져 버린 상태였는데, 올해는 그 도가 지나치다. 어느 때보다 더한 강경 일변도의 외교 자세로 미국은...
당시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선언하고 시장경제로 전환한 지 약 20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000달러도 안 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며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국민만 잘 살게 하면 된다’는 덩샤오핑의 중국식 자본주의가 맞아떨어져 중국 경제는 고속 성장 궤도에 올랐고, 중국을...
“미국 정부가 지나치게 적대적인 정책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평가했다.
덩샤오핑 전 중국 국가주석의 통역 겸 외교관을 지낸 정치 전문가 가오쯔카이는 “미국 정부 내에서 중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더 많은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환상에 빠진 것”이라면서 “미국은 10~15년 안에 결국 미국을 넘어설 중국과 협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국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끌었던 덩샤오핑의 “홍콩의 일국양제 체제를 50년간 유지한다”는 원칙을 절반도 지키지 못한 채 23년 만에 무너뜨린 것이다.
홍콩보안법에는 지난해 6월 일어났던 ‘범죄인 인도법’에 대한 대규모 반대시위가 벌어진 이후 중국 지도부의 초조함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논란을 의식한 듯 중국 지도부는 홍콩보안법의 구체적 내용 공개를...
1974년,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던 헨리 키신저는 자국을 찾은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과 마오타이주를 마시며 “이 술을 많이 마시면 우리는 뭐든 풀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러나 2013년 취임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마오타이주도 직격탄을 맞았다. 수요가 자취를 감추면서 2014년과 2015년엔 매출...
과거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참고 기다리며 힘을 기른다),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유소작위(有所作爲, 할 일은 적극 나선다)에서, 시진핑은 분발유위(奮發有爲, 떨쳐 일어나 해야 할 일을 이룬다)로 나아갔다. 중국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고 충돌도 불사하겠다는 얘기다.
시진핑의 중국몽이 놓친 게 있다. 인민민주독재와 국가자본주의의 한계, 그것의 근본적...
중국은 1985년 당시 최고 지도자였던 덩샤오핑이 개혁의 일환으로 일정을 공식화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빼놓지 않고 매년 3월 전인대와 중국 최고 정치 자문기구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를 개최했다. 이에 두 회의를 합쳐 ‘양회(兩會)’로 부른다. 또 1998년 이후로는 매년 3월 3일 정협을 개막하고 이틀 뒤인 5일 전인대를 시작하는 일정이 유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