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연공서열 버려야 경제도 사회도 바뀐다 -한지운 산업부장

입력 2014-06-0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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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헤드헌팅 업체에 몸 담고 있는 오래된 지인을 만났다. 어느 정도 술잔을 기울이던 그는 불쑥 ‘연공서열(年功序列)’에 대해 말을 꺼냈다.

그의 말은 이랬다. 기업에서 어느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달라는 제안은 수없이 많지만, 막상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지닌 50대 중·후반의 인물을 추천하면 나이가 많다며 거절하는 일이 일쑤라는 것. 특히 해당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보다 나이가 더 많은 경우는 거의 100% 거절된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인재가 아니라 유교적 개념의 부하를 원하는 것으로밖에 해석이 안된다”며 “연공서열에 집착하는 사회적 정서가 많은 것을 잃게 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단다. 구직자가 자신의 나이와 경력에 맞는 직급과 연봉을 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를 지나치게 고수해 자신의 능력을 사회에서 다시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경우도 상당수라는 설명이다.

몇 해 전 읽었던 마이클 게이츠 길의 자전소설인 ‘땡큐 스타벅스’라는 책이 문득 생각났다. 마이클은 예일대 출신에 글로벌 광고회사의 이사를 역임한 이른바 잘나가는 엘리트였다. 그러나 얼마 후 그가 키운 후배에게 명퇴 통보서를 받고 어렵게 창업한 광고 회사는 파산한다. 결국 이혼까지 겪으며 길바닥에 내몰린 그는 맨해튼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잔돈을 털어 카페라테 한 잔을 산 것이 인생을 바꾸게 된다.

28살의 스타벅스의 흑인여성 매니저는 ‘혹시, 여기서 일하실 생각 없어요?’라고 말을 던졌고, 그는 ‘예,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무엇엔가 홀린 듯이 대답했다. 이렇게 해서 한때 잘 나가던 백발의 노신사는 매장바닥과 화장실을 걸레질하는 흔한 매장 직원으로 다시 태어난다. 새로운 기회와 환경에서 마이클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도 잊었던 능력들을 발굴하고 의미깊은 성과를 내기 시작한다. 오만과 편견에 차 있던 껍데기 삶을 벗고 난생 처음 겸손을 배우게 되며, 진짜 행복이란 무엇인지, 삶의 참된 가치란 무엇인지를 깨달으면서 인생에서 잃었던 모든 것을 다시 가지게 된다.

사회는 나이 먹은 사람을 싫어하고 나이 먹은 사람은 체면을 앞세운다면 인력시장에는 수요도, 공급도 없어진다는 역설이 생겨난다. 이 때문에 변화는 필요하다. 기업과 개인 모두 좀 더 유연한 생각을 가져야만 서로에게 플러스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고용 유지를 위한 임금피크제 역시 연공서열을 중요시 여기는 유교적 의식이 걸림돌이 됐다. 직급과 나이를 먹을수록 연봉이 늘어나야 한다는 것은 실제 생활을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후배보다 적은 돈을 받기에는 체면이 떨어진다’는 불편한 진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임금피크제는 10여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하나, 둘씩 기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현재 우리사회는 장기 침체기를 겪고 있다. 과거 고도성장기와는 다른 사회 환경과 채용 환경에 직면해 있다. 정부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중심으로 고용률 70% 달성에 목을 매고 있지만, 단순 일자리 창출보다는 기존의 고급인력들을 어떻게 사회에 재투입해 다시 도약할 수 있는 시너지로 삼을지 고민해야 한다. 또 기업은 연공서열적 생각을 버리고 이들의 경험을 기업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아야 한다. 개인들 역시 이에 맞춘 적극적인 사고 변화가 요구된다.

그러나 채용뿐이랴. 아직도 연공서열은 우리 경제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지난달 20일 전국경제인연합이 세월호 사고에 따른 국가적 아픔을 함께하고, 안전 인프라 구축에 힘을 보태기 위한 성금 모금에서도 이 같은 모습은 이어졌다. 각 그룹은 마치 약속이나 한듯 재계 순위대로 성금 기탁을 발표했고. 성금 액수 역시 삼성 150억원, 현대차그룹 100억원, SK그룹 80억원, LG그룹 70억원 등으로 서열 순으로 차등했다. 이래서야 ‘진심’보다는 ‘형식’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성금이라는 좋은 뜻을 가진 행위마저도 도식적인 연공서열로 진행되는 것은 아쉬울 뿐이다. 과거의 틀을 깨는 ‘작지만 큰 변화’가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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