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대통령이 문제인가?

입력 2014-05-13 10:37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ㆍ전 청와대 정책실장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괴롭히던 ‘설’이 하나 있었다. ‘좌파 정부’의 ‘반기업 정서’ 때문에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과 합쳐 ‘잃어버린 10년’이라 하기도 했다.

솔직히 참기 힘들었다. 우선 사실이 아니었다. 진보적 정책이 없지는 않았지만 ‘좌파’라 부를 정도는 아니었다. ‘반기업 정서’는 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그러면 어떠랴, 그 정도의 왜곡은 참을 만했다. 이리저리 당하며 이력이 나 있던 터였다.

그러나 문제를 그렇게 단순화하는 것은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정책담론의 생성을 가로막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시중에는 ‘이 정부만 끝나면 잘 되게 되어 있다’는 소리가 파다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정말 걱정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논의가 죽어가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대중 강연에 나섰다. 글로벌 차원의 투자부진 현상과 고용 없는 성장의 문제 등 무엇을 걱정해야 되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힘줘 한 마디 했다. “참여정부의 반기업 정서 때문에 경제가 어렵다면 이 자리에서 춤을 추겠다. 왜? 이 정부는 곧 끝이 나니까.”

이명박 정부 시절, 다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었다. 경제를 포함한 크고 작은 모든 문제를 대통령 때문이라 했다. 이때 다시 한번 힘줘 이야기했다. “만일 그렇다면 춤을 추겠다. 왜? 이명박 정부 또한 곧 끝이 나니까.”

이번에는 박근혜 정부다. 잘 나가는가 싶더니 세월호 참사 이후 곤란을 겪고 있다. 지지도가 뚝 떨어지면서 안전문제와 관료집단의 무능 등 모든 문제가 다시 대통령 탓이 되고 있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집회들이 열리는가 하면 SNS는 대통령과 정부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글로 뜨겁다. 일부에서는 선동의 기운과 분노를 부추기는 기운도 느껴진다.

이쯤에서 다시 한 마디 하자. 이 모든 것이 대통령 때문이라면 다시 춤을 추겠다. 왜냐고? 이번 대통령 역시 몇 년 뒤면 그만두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연안여객선의 안전문제만 해도 그렇다. 낡은 배를 사 와 운항하는 데에도 쉽게 어찌할 수 없는 이유와 배경이 있고, 노선 대부분이 독점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데에도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다. 몰라서 그냥 두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알고도 어쩌지 못했던 부분들이다.

이를테면 지금 당장에도 돈이 문제다. 새 배를 사서 운항하게 하자면, 또 경쟁체제가 가동될 수 있게 하자면, 그리고 과적 등의 반칙을 하지 않고 원하는 수준의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하자면 얼마나 많은 국고와 지방비가 지원되어야 할까? 또 이 돈은 어디서 어느 부분을 희생시켜 마련할 수 있을까?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 혼자서 어찌한다고 하여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도처에 유사한 문제들이다. 말썽이 되고 있는 수도권과 서울 도심을 연결하는 광역버스 입석금지 문제는 그 좋은 예다. 단속을 하지 않으면 승객이 위험해지고 단속을 하면 많은 사람이 제 시간에 출근을 하지 못하게 된다. 버스를 늘리면 좋겠지만 버스회사는 그럴 수가 없다.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 만한 수요가 없기 때문이다. 복잡한 문제다.

대통령에 대해 책임을 묻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힘이 크건 작건 대통령은 대통령이고 국민은 국민이다. 원인이 무엇이건, 또 그 일차적 책임이 누구에게 있건 국가적 불행이나 국민이 피해를 입은 일과 관련해 대통령은 포괄적 책임을 진다. 또 국민은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책임을 묻는 것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다르다. 가장에게 가난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하여 그 집안이 잘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잘사는 방법은 그 나름 달리 찾아야 한다. 같은 이치다.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그 자체에 보다 더 충실해야 한다. 정책적 담론의 수준이 더 높아져야 한다는 말이다.

아이들이 희생을 당했다. 이번만큼은 다르게 가자. 선동하거나 분노를 부추기지 말자. 책임만 묻겠다고 나서는 일도 삼가자. 안전문제이건 국가개조 문제이건 문제 그 자체로 돌아가자. 그리하여 제대로 된 대안과 해결책을 찾아보자.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금융권 휘젓는 정치…시장경제가 무너진다 [정치금융, 부활의 전주곡]
  • 요즘 20대 뭐하나 봤더니…"합정가서 마라탕 먹고 놀아요" [데이터클립]
  • "책임경영 어디갔나"…3년째 주가 하락에도 손 놓은 금호건설
  • "노란 카디건 또 품절됐대"…민희진부터 김호중까지 '블레임 룩'에 엇갈린 시선 [이슈크래커]
  • "밀양 여중생 성폭행 가해자는 맛집 운영 중"
  • 새로운 대남전단은 오물?…역대 삐라 살펴보니 [해시태그]
  • 尹 "동해에 최대 29년 쓸 천연가스 매장 가능성...올해 말 첫 시추작업 돌입"
  • "이의리 너마저"…토미 존에 우는 KIA, '디펜딩챔피언' LG 추격 뿌리칠까 [주간 KBO 전망대]
  • 오늘의 상승종목

  • 06.03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6,268,000
    • +1.21%
    • 이더리움
    • 5,245,000
    • -1.17%
    • 비트코인 캐시
    • 650,000
    • +1.48%
    • 리플
    • 726
    • +0.83%
    • 솔라나
    • 230,800
    • +0.96%
    • 에이다
    • 639
    • +2.24%
    • 이오스
    • 1,121
    • +0.18%
    • 트론
    • 158
    • -2.47%
    • 스텔라루멘
    • 146
    • -0.68%
    • 비트코인에스브이
    • 85,800
    • +1.18%
    • 체인링크
    • 24,620
    • -3.38%
    • 샌드박스
    • 632
    • +3.27%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