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슬픔과 분노를 에너지로 -한지운 산업부장

입력 2014-05-07 10:56 수정 2014-05-0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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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바꿨다. 빈약한 국가 재난 시스템과 연이어 밝혀지는 조직적인 비리에 대한 국민들의 성토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거셌다. 어린 나이에 세상에 대한 꿈도 펼쳐 보지 못한 채 차가운 바닷속에 사라진 학생들의 추모 행렬에 동참하며, 안타까움은 슬픔으로, 안타까움은 분노로 바뀌었다. 특히 부실한 사회를 만들었다는 어른들의 죄책감은 이 같은 감정의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다.

사실 지난 몇 주간 웃고, 떠들고, 즐기는 것은 사회의 흐름과 걸맞지 않았다. 사람들은 퇴근 후 집으로 향했고, 주말에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대형마트와 백화점도 텅텅 비었다. 황금연휴에도 길거리는 전에 없이 한산했다. 언뜻 ‘소비’는 국가적인 슬픔을 무시하는 ‘죄악’과 같은 행위가 됐다.

이제 이 같은 흐름의 반대 쪽을 살펴보자. 반짝 살아나던 실물 경기에 이번 참사는 내수 부진에 따른 경기위축이라는 반작용을 가져왔다.

일단 가장 큰 타격은 여행업계가 받았다. 여행을 자제하는 분위기에 5월 대목을 노렸던 여행업계는 무더기 예약 취소 사태를 겪었다. 6월 예약분 역시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 이 뿐이랴. 5월은 통상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특수에 연중 마케팅이 집중되는 시기다. 그러나 각 기업들은 예정됐던 신제품 출시를 미루고 있으며, 마케팅도 거의 중단됐다. 한 주류업체는 신상품 출시와 함께 대대적인 론칭을 준비했으나, 발표회는 취소되고 거액의 톱스타 마케팅은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6월 브라질 월드컵 특수도 기대를 버린 지 오래다.

유통가 역시 마찬가지다. 세월호 사고 직후 일주일 동안 대형카드 3사 고객들의 이용 실적은 지난달 같은 기간보다 3.8%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 경제산업 영역에서 세월호 참사는 무시하지 못할 영향을 끼친 것이다.

속타는 것은 기업이다. 그러나 기업들의 행보는 큰 제약이 따랐다. 기업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번 사고에 대한 기업들의 행동 지침은 절대로 표면에 드러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자칫 잘못할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보다는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됐다”고 언급했다.

기업들의 제품 출시 중단과 마케팅 중단은 이 같은 인식이 가장 큰 배경이 됐다. 또 여느 때 같았다면 기업들은 국가적 사안에 앞장서서 자신의 사업 분야에서 돕는 행동에 나섰을 것이지만 이번엔 달랐다.

한 전자업체는 세월호 관련 피해자와 학생을 대상으로 휴대폰을 무상으로 수리하고 데이터를 복구해주는 일에 나섰지만, 취재에 들어가자 알려지기를 극구 사양했다. 대다수 유통업체들도 팽목항에 설치된 실종자가족 대책본부에 구호품을 보냈으나 이들 역시 회사명을 써주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남양유업과 라면상무 사건에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사회적 파급력을 경험한 만큼 ‘기업이 참사를 이용한다’는 자칫 잘못된 세간의 시선이 나올까 두려운 탓이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격언도 있지만, 기업이 응당해야 할 사회적 역할에 대해 알려지기를 꺼린다면 이는 그리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기업은 재화를 벌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는 집단이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 역시 기업 본연의 목적에 부합하는 면이 있다. 기업 브랜드에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 소비자가 해당 기업의 제품을 구입하는 것을 착한 소비로 인식시킨다는 속내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최근의 분위기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 수행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때 일수록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하지만, 상황이 역설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사고 수습이 채 되지 않은 상황이라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잠시 잊고 있었던 본연의 자리에 서서히 눈을 돌릴 때다. 각 분야의 경제활동이 지나치게 장기간 위축된다면 그 고통은 사회 전체 구성원들이 함께 지게 된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경제 관련 부처들은 내수를 끌어올려 경제환경을 복구할 방안을 신중하게 꺼내야 할 때다. 기업들도 눈치만 보지 말고 기업의 활동을 재개해야 하며, 사회적 역할도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이 같은 ‘제자리 찾기’에 대한 세간의 눈길은 더 너그러워져야 한다. 슬픔과 분노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에너지로 전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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