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크게 봤을 때 두 가지 과제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사회적으로 잘 적응하는 것을 배우는 과정, 즉 사회 속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회적 인간이 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이를 위해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을 학습합니다. 두번째는 더 '나' 다와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되어져야 할 ‘원자기’ 즉 to-be를 갖고 태어납니다. 도토리는 떡갈나무가 될 운명(gene)을 그 도토리 안에 갖고 태어나듯이, 우리 각자는 궁극적으로 실현해야 할 자기 (self)를 갖고 태어납니다. 매일 매일 우리가 벌이고 있는 고난한 삶을 감당하는 힘은 원자기 실현에의 열망입니다. 융은 이를 개성화(individualization)라고 했습니다.
사회화 (socialization)는 태어나서부터 인생의 전반부에 주로 일어나는 과정입니다. 한 아이가 태어나면 성장의 과정을 겪습니다. 신체적으로 크면서 독립되어 가고 자기정체성도 생기고 또래 집단과 학교에 편입되면서 본격적인 사회성을 경험하게 되고 인류의 정신적 문화 유산을 배우면서 인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존재가 점점 확장되어 나갑니다. 사회 속에서 가치관, 기준, 꿈, 목표를 배우고 내면화하면서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열심히 자신을 연마합니다.
그 과정이 꽤 진척이 되고 나면, 어느 날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 대해 문득 의문이 생깁니다. 이게 맞나? 이렇게 사는게 맞는 것인가? 나란 누구인가? 등의 해답 없는 질문이 생기고 그때까지 잠자고 있었던 자기를 찾고자 하는 욕구가 수면위로 올라오게 됩니다. 개성화란 고유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자,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존재로서의 나를 인식하고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개성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가능한 한 온전히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인식하지 못하던 자신의 부분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우선 생의 전반기에 지침이 되었던 행동, 가치, 사고방식, 믿음체계 등에 의문을 제기해 보는 것입니다. 너무나 자동화되어서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줄 조차 모르는 mental process를 하나 하나 탐색해보고, 이게 내 자신의 진정한 목소리인가 확인해봅니다.
사회적 이름을 떼고 순수한 내 자신을 마주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매우 생경스러울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일수록 역할이 요구하는 인격 (persona)이 강하게 형성되어 있어서 그 역할과 나를 동일시하고 있다가 역할이 끝나면 자기도 끝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역할 수행을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인생 과제지만, 그와 동시에 역할을 내려놓고 역할과 나를 분리하여 독립된 인격체로서 나를 성숙시키는 것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무슨 꽃을 피우고 싶은가? 무엇을 열망하는가? 왜 나는 이런 선택을 했던가?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자기를 알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선택함으로써 변화가 가능해집니다.
사회화와 개성화, 이 두 가지는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 보완적이기도 합니다. 내 역할 인격을 제거하자는게 아니라 원자기와 통합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리더로서의 역할을 전력을 다해 수행하되 그 근원적 힘을 내 본성의 발현에서 얻자는 것입니다. 나의 심리적 지향성,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에 대해 더욱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럼으로써 명료한 선택이 가능해지고 버려지는 것에 대해 심리적 책임을 질 수 있다면 역할도 더욱 잘 수행하게 됩니다.
'나란 누구인가'에 대한 확고함이 없이는 그 아무리 성과를 잘 내는 리더라 하더라도 그 성공은 심리적으로 매우 취약합니다, 작은 실패에도 흔들리거나 원하던 성공을 해도 불안을 느끼기 십상입니다. 다양한 역할 너머에 존재하는 본연의 자아를 만나 살찌우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은, 성공적인 성취로 이끌어가는 것 이전에 이뤄야 할 중요한 일입니다.
[필자 소개]한숙기 한스코칭 대표는 서울대학교 및 동대학원 불어교육학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대학원 석사학위를 받았다.한국일보, Korea Times에서 기자 생활을 했으며 국제코치연맹 (ICF) 인증 코치로서 대기업, 다국적 기업 경영자 및 임원 전문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