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의 삼성 25년]상-이건희 경영론, 위기때마다 승부수…초일류기업의 꿈 현실로

입력 2012-11-20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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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1월 19일 삼성은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했다. 향년 78세를 일기로 삼성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이 별세하자 사장단들은 이건희 부회장을 제2대 삼성그룹 회장으로 추대했고, ‘삼성의 이건희 시대’가 시작됐다.

“책임경영과 공존공영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 사업보국, 인재제일, 합리추구의 경영이념을 실현해 나갈 것입니다. 미래 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90년대까지는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입니다.”

12월 1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신임 회장 취임식에서 이건희 회장은 삼성에 가장 먼저 입사한 최관식 당시 삼성중공업 사장에게 사기(社旗)를 넘겨받고 힘차게 흔들었다. 그의 나이 45세였다.

이건희 회장의 추대는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다. 호암은 타계 16년 전인 1971년에 “장남 맹희는 경영에 뜻이 없고, 차남 창희는 많은 기업을 하기 싫어한다. 3남 건희도 당초에는 사양했으나, 마지막에는 ‘역량은 부족하나 맡아보겠다’는 뜻을 가져주었다. 삼성그룹의 후계자는 건희로 정한 만큼 건희를 중심으로 삼성을 이끌어갈 것이다”라는 유언장을 작성했다.

호암의 선택은 옳았을까. 이 회장이 지금도 현장에서 활발하게 경영활동을 펼치고 있는 만큼, 판단은 아직 이르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은 삼성을 맡은 지난 25년 동안, 1936년 협동정미소로 시작한 삼성을 글로벌 시장을 평정한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특히 삼성의 성장뿐 아니라, 국가경제 발전과 국가 브랜드 확립까지 이뤄내 대한민국의 국운을 바꾼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 급변하는 시대, 위기 경영론으로 돌파 = 이건희 회장은 ‘위기 경영론’의 창안자다. 삼성그룹 회장 취임 이래 5년마다 그만의 위기론을 제시하면서 삼성의 변화를 주도했다.

이 회장은 취임한 지 3개월, 삼성 창립 50주년을 맞은 자리에서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그는 자율경영, 기술중시, 인간존중 등을 제2의 창업정신으로 내세웠으며 그 원칙은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동시에 이 회장이 착수한 것은 삼성의 체질을 바꾸는 일이었다. 그는 톱 다운(top-down) 방식, 즉 위에서 지시하고 밑에서 일하는 경영방식을 뜯어 고치기 시작했다.

사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을 맡았던 80년대 후반은 새로운 글로벌 환경이 시작된 때였다. 소련체제의 붕괴와 중국의 개방으로 기업의 활동 무대가 전세계로 확장됐고, 아날로그 시대는 디지털 시대로 전환되고 있었다. 과거의 방법과 체제로는 새로운 글로벌 시대에 대응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이 회장의 위기 경영론의 시작이 됐다.

그러나 삼성이 근본적인 수술에 나선 하나의 사건은 삼성전자의 일본 현지법인 기술고문이 기술개발 수준부터, 경영자의 자세, 직원들의 근무태도에 관한 것까지 삼성의 문제점을 뼈아프게 지적한 것이었다. 또 삼성전자 디자인센터에서 근무하던 산업디자인 고문 후쿠다의 보고서를 사업본부장이 묵살한 사건도 큰 계기가 됐다. 이 회장은 프랑크푸르트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그 보고서를 읽고 격노했다. 여기에 이 회장은 지난 1981년 이후 자신이 각사로 별도 지시한 284쪽 분량의 지시문이 대부분 실행되지 않고 있고, 상당수가 실종된 것을 알고 통탄했다. “이대로는 안된다.”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이 나온 계기다.

◇ 新경영으로 新삼성 만들다 = 1993년 이건희 회장은 2월부터 8월 초까지 로스앤젤레스(LA)·도쿄· 프랑크푸르트·오사카 등 해외 현지에서 사장단과 임원을 포함해 참가 인원만 총 1800여명에 달하는 대규모 회의를 이어나갔다. 당시 회의는 짧게는 8시간, 길게는 16시간의 마라톤 회의로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신경영이다. 1993년 2월 LA에서는 전세계 주요 업체들의 전자제품과 삼성의 제품을 비교 평가했다. 특히 미국에서 삼성제품의 평가가 극히 낮은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위기감을 갖을 것을 주문했다. 같은해 3월과 6월에는 장소를 도쿄로 옮겼다. 전자제품의 메카인 아키하바라를 거닐며 변화하는 시장 상황을 파악하고, 일본 경쟁력의 원천인 사회 인프라에 대해 알아봤다. 특히 일본 기업들의 일하는 방식, 즉 과거의 시행착오도 기업의 재산으로 가져가야 하며, 양보다는 질로 승부하는 삼성을 만들 것을 결의했다.

6월 도쿄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한 이건희 회장은 신용과 이미지를 파는 글로벌 시대에 품질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단 한 개의 불량 제품을 만드는 것은 회사를 좀먹는 암적 존재이자 경영의 범죄행위”라고 역설했다. ‘삼성 제품의 품질은 곧 삼성의 얼굴’이라는 선언이었다. 이 회의에서 나온 내용을 근간으로 삼성의 신경영 체제가 정립됐고, 1993년 9월 ‘삼성 신경영-나부터 변해야 한다’를 발행해 신경영 철학을 정리했다.

신경영의 기본은 사람이다. 임직원 각자가 인간미와 도덕성을 갖고 ‘나부터 변화하겠다’는 의지의 선언이다. 이를 통해 품질위주 경영, 정보화 경쟁력을 바탕으로 국제화와 복합화를 이룩해 궁극적으로 안류사회에 공헌하는 초일류 기업이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이 회장은 품질위주 경영을 위해 “불량 3번 내면 퇴직하겠다는 각오를 하라”, ‘수량은 0라도 좋으니 품질은 100으로 하라”, “불량은 악의 근원” 등의 파격적인 발언을 하며 한국 기업의 풍토를 바꾸는 파도를 만들었다.

◇ 머뭇거릴 시간 없다 … 위기론은 진행형 = 신경영 뒤에도 양적성장 중시, 타성에 젖은 기업 문화에 대한 이건희 회장의 질책은 이어졌다. 품질 불량이 발생한 무선전화기와 팩스 등을 모두 폐기처분하라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이는 삼성이 파브, 애니콜, 갤럭시 등의 월드베스트 상품을 만드는 근간이 됐음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이 회장의 개혁의지는 철저한 현실 인식과 절박한 위기의식에서 시작됐다. 이는 전세계적 제품 트렌드와 경영환경의 지각변화 시점을 감각적으로 먼저 알아챘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누구보다 앞선 행동으로 결과를 이끌어 냈다.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삼성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이자 전세계가 인정하는 브랜드가 됐다.

1993년 모든 것을 ‘바꾸자’는 신경영부터 1998년 IMF를 맞자 위기 타개를 위해 과감히 구조조정에 나선다는 ‘버리자’, 2002년 5년 후 10년 후 무엇이 삼성을 먹여살릴 것인지 ‘찾아라’까지 그의 이어진 위기론은 지금도 성공의 진행형으로 자리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일선에 복귀한 이 회장은 “10년 내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는 이건희 회장의 외침이 향후 10년, 100년의 또 다른 ‘新삼성’을 만들 것임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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