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김경철 부국장 겸 증권부장 "'유령'이 아닌 '악당'을 잡아라"

입력 2012-10-23 12:21 수정 2012-10-25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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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위험천만한 인사였다. 사기꾼으로 악명이 난 인물이 1934년 7월 신설되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초대 위원장으로 지명됐기 때문이다. 조셉 케네디였다. 60년대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존 케네디의 부친이다.

아버지 케네디는 양대 작전세력의 하나였던 아일랜드 부자그룹의 멤버였다. 이 작전세력은 당시 최고 인기주였던 라디오회사 RCA의 주가를 조작해 큰돈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 RCA 주가 조작은 CNN머니가 선정한 세계 13대 대형 버블 사건에 뽑힐 정도로 규모가 컸다. 구두닦이 소년이 자신에게 추천 종목을 물어보는 것을 보고 거품 붕괴를 직감했다는 케네디는 운 좋게 대공황 직전에 주식을 처분해 붕락의 화를 모면했다. 그러나 영화 제작자로 변신한 이후에도 유명 여배우와 바람을 피우는가 하면 금주령에도 주류사업을 했다는 의혹도 사고 있었다.

그런데도 루스벨트 대통령은 흔들리지 않았다. “하필이면 왜 사기꾼(crook)이냐”는 질문에 “사기꾼을 잡기 위해 사기꾼을 기용한다(takes one to catch one)”며 특유의 유머 화법으로 넘겼다.

대공황 직전의 월가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한마디로 콩가루였다. 상장기업은 물론 금융기관 오너나 임원들까지 작전세력에 가담해 내부 정보 이용과 뉴스 흘리기 등의 방식으로 떼돈을 벌었다. 승률이 높았기에 작전세력이 어떤 주식을 사들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일반 투자자가 몰려들면서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여기에 자동차주 항공주 라디오주 등 혁신적인 신기술을 앞세운 테마주가 봇물처럼 쏟아지면서 북미 대륙은 투기 광풍에 휩싸였다.

루스벨트의 도박은 통했을까? 사기 수법을 누구보다 잘 알던 케네디는 증권시장의 허점을 족집게처럼 집어내 보완해 나갔다. 이런 덕인지 불공정 거래가 줄어들면서 월가는 재빨리 신뢰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요즘 한창 기승을 부리는 악성 테마주를 잡을 수 있을까? 낙관적이지만 않다. 관계 당국의 다양한 노력에도 테마주는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통령 선거일이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지금까지도 3대 유력 후보의 우열이 분명하지 않은데다 공약까지 엇비슷해 투자자들이 속임수에 현혹되기 십상이다. 여기에 긴밀하게 의사소통하기 편리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까지 활성화된 터라 대응이 이래저래 어려워졌다.

그러나 당위성은 자명하다. 금융감독원이 지난달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6월부터 1년간 테마주 거래에서 총 1조5494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올 6월 이후 등장한 새 테마주에서도 3개월만에 670억원의 손실이 생겼다고 한다. 대부분 개인투자자인만큼 테마주는 개미 지옥으로 변한 셈이다. 반면 테마주의 대주주들은 잇따라 고점에서 보유주식을 처분해 거액의 차익을 남기고 있다.

게다가 태반이 엉터리라 사기성에 가깝다. 대통령 선거가 중심 테마이지만 그렇다고 정책에 베팅하는 것이 아니다. 대선 후보와의 친분을 따지는 인맥 엮기가 테마의 핵심이다. 인맥이란 것도 막가파식으로 연결하려는 억지가 대부분이지만 정경유착의 오랜 적폐 때문인지 여전히 통하고 있다. 한창 기승을 부렸던 16대의 행정수도 수혜주나 17대의 운하 수혜주는 작금의 황당한 테마주와 비교하면 오히려 양질이었다.

한국거래소는 다음 달부터 급등한 테마주에 대해 1일간의 거래정지를 거쳐 3일간 단일가로 매매하도록 하는 대책을 최근 발표했다. 큰 효과를 거두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엉터리 테마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케네디처럼 악당을 정조준하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다.

단순 투자자와 범법자를 두루뭉술하게 테마주로 한데 묶어 대응하면 악당들이 투자자 속으로 숨어들어 유령처럼 밑도 끝도 없이 떠돌게 된다. 이렇게 친구와 적이 구별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령을 치다 보면 선의의 투자자까지 다치는 부작용이 발생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작전세력 같은 악당을 정확하게 겨냥할 날카로운 메스도 빼들어야 한다. 아울러 최대 주주가 테마주의 주가 급등에 편승해 거액을 챙기는 도덕적 해이를 예방하기 위해 보유 지분을 처분한 후 매도 사실을 공시하는 현 제도를 공시 후 일정 시간 뒤 팔 수 있도록 전환하는 것도 고려할만하다.

우리는 불치병 같던 금권선거 풍토도 바꿨다. 민관이 합심해 최대 50배에 달하는 과태료 폭탄을 위반자에게 바로 쏟아붓는 퇴치법이 주효했다. 이제 유령이 아니라 악당을 잡아 증시를 바로 세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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