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김경철 부국장 "‘리타이어 푸어’를 위해"

입력 2012-08-21 11:32 수정 2012-08-2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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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리타이어(Retire)란 영어 단어가 '은퇴하다'란 뜻 이외의 두 가지의 다른 의미로도 즐겨 사용되고 있다.

첫 번째는 실격이란 뜻이다. 일부 스포츠 분야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용어인데 인기 온라인 경주 게임인 카트라이더에 이 말이 자주 등장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다른 하나는 타이어(Tire)를 다시 간다(Re)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는 은퇴 이후의 새로운 길을 달리기 위한 준비나 인생 이모작의 시작으로까지 확장되기도 한다.

졸업식과 시작이란 상반된 뜻을 함께 가진 컴멘스먼트(Commencement)처럼 리타이어에도 은퇴=새 출발이란 모순화법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어 어원(Tirer)이 끌다(Draw)란 뜻이고, 웹스터처럼 권위 있는 영어사전도 차 바퀴를 간다는 등의 뜻을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면 공인된 의미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듯하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우스개처럼 등장한 이 해석은 어느새 은퇴를 새롭게 설명하는 개념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작위적인 냄새가 폴폴 나지만 그래도 앞뒤가 척척 들어맞아 귀에 쏙쏙 들어오는 데다 본격적인 은퇴 시기에 접어든 베이비 붐 세대의 심정까지 잘 대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건강, 친구 그리고 돈은 누구나 동행하고 싶은 은퇴 길의 동반자다. 특히 은퇴 후에도 40~50년을 더 살아야 하는 100세 시대가 임박하면서 경제적 준비는 시급한 과제가 됐다. 무전(無錢)장수는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기 때문이다.

이런 재앙을 막아 주던 전통적인 방화벽은 부동산과 자녀였다. 하지만 효험이 떨어지면서 대신 연금이 부상하고 있다. 국내 연금 시장은 국가가 운영하고 있는 국민연금과 퇴직금 제도를 계승한 퇴직연금,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개인연금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최근 3중 구조의 허리 격인 퇴직연금이 확 바뀌었다. 지난달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퇴직금을 의무적으로 자신 이름의 계좌로 입금받아 운영하는 개인형 퇴직연금(IRP)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한 번에 받아가던 퇴직금을 장기 연금으로 재편해 고령화 시대에 대비하려는 취지가 담겨있다. 강제 가입식인데다 추가 납부도 가능해 연금시장의 견인차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금융투자업계가 300만원을 호가하는 루이뷔통이란 수입 가방까지 내걸고 치열한 유치전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고령화 속도 면에서 세계 1위 수준이란 사실을 고려하면 이 새 퇴직 통장으로 규모나 내실 면에서 걸음마 수준인 연금 시장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에는 여전히 힘겹다.

무엇보다 지갑을 열게 할 당근이 허약하다. 새 퇴직 통장의 강점은 연간 1200만원을 추가로 낼 수 있고, 400만원의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별도의 세제 혜택이 없다. 기존의 연금펀드, 연금저축 등 개인연금과 합산해 400만원의 소득공제를 해 줄 뿐이다.

공적 연금을 줄이고 사적 연금을 키우는 게 세계적인 추세다. 정부가 어려운 살림살이 때문에 은퇴자를 위한 복지를 늘릴 수 없다면 국민 스스로 보호막을 쌓을 수 있게 돕자는 전략이다.

미국이 50세 미만 연금 가입자에 대한 소득 공제혜택을 연간 1만6500달러로 확대한 것이 이 때문이다. 50세 이상에게는 추가 혜택까지 덧붙여 준다.

한미 간 총생산 격차를 고려할 때 공제 혜택을 미국의 절반 수준이 800만원까지 높여줘야 한다는 업계의 요청을 포함해 더 적극적이고 다양한 '리타이어 푸어(Poor)'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빈곤이 한국인의 일생을 지배하고 있다. 직장이 있어도 비정규직 저임금으로 고통받는 워킹 푸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집은 있으나 집 때문에 가난하게 사는 하우스 푸어로 허덕거리다 보면 교육비에 시달려 어느새 노후 준비를 못 한 리타이어 푸어가 된다.

여기에 자영업이나 주식투자에 실패한 소호 푸어, 스탁 푸어라는 불운까지 겹치면 세상은 지옥이나 다름없다. 중산층이 신빈곤층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2009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지배하고 있는 상태가 가난이라고 가르쳤다. 두려움을 희망과 기대로 바꾸기 위해 국민과 정부, 업계 모두 지혜를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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