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cine 해부학]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그린 양면성의 진실

입력 2012-07-18 14:57 수정 2012-07-1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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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공개된 ‘배트맨 비긴즈’ 이전까지 코믹스 원작 영화는 단순한 히어로물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마블코믹스-DC코믹스의 양대 그래픽 노블사가 버티는 할리우드 히어로 무비는 그래서 뻔한 전개부터 결말부의 해피엔딩까지 장르적 일관성에 충실했다. 일종의 ‘히어로 무비는 이래야 한다’는 전형성이 강조돼 왔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배트맨’의 조우는 이 같은 전형성에 반기를 들었다. 그 시작이 앞서 언급한 ‘배트맨 비긴즈’다.

고 히스 레저가 탄생시킨 조커의 혼돈스런 광기가 가득한‘다크 나이트’(2008)이후 4년 만에 개봉한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예상대로 전 세계 극장가를 초토화시키고 있다. 지난 16일 언론 공개 후 19일 본 개봉까지 영화에 대한 평은 극찬을 넘어선 극찬 일색이다.

‘교향곡’ ‘철학적 메시지’ ‘장중한 마침표’ 등 웬만한 수식어는 총동원되고 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접근할 수 있겠지만,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 대한 비판 여론은 오히려 생각 없는 안티로 취급될 분위기다. 바꿔 말하면 영화의 완성도는 단 한 단어. 무결점이다.

‘메이드 인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가 이처럼 걸작을 넘어 명작 반열에 올라선 것은 2008년 ‘다크 나이트’부터다. 이는 반대로 시리즈의 시작인 ‘배트맨 비긴즈’가 “왜?”라는 캐릭터의 기원에 집중해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에 반감을 깔고 갖기 때문이다.

놀란은 기본적으로 시리즈 전체의 주인공을 ‘배트맨’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캐릭터의 집중이라기 보단 현실적 요소에 기반을 둔 설정의 미학으로 ‘배트맨’을 풀어 왔다. ‘비긴즈’를 넘어 ‘조커’의 영화로 불린 ‘다크 나이트’가 제목처럼 조커와 배트맨을 선과 악 양면의 극단으로 바라봤다면, 마지막 ‘라이즈’에선 극단의 벽에 부딪친 배트맨의 각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각성을 일깨우는 촉매제는 공교롭게도 배트맨이 그토록 지우려하던 악이다. ‘비긴즈’의 듀카드, ‘다크 나이트’의 조커에 이어 ‘라이즈’에 등장한 악은 베인이다. 베인은 놀란 이전의 배트맨 시리즈 최고 망작으로 남은 ‘배트맨 4’에 잠깐 등장했던 캐릭터다. 하지만 실제 코믹스 속 베인은 지략과 완력에서 사상 최강의 적으로 묘사된다. 배트맨의 정체를 아는 유일한 적이자 그의 허리를 꺾을 정도의 힘 대결은 마초적 카타르시즘 기준에서 접근하더라도 가장 원초적이며 막강하다. 이번 영화에서도 배트맨과 벌이는 맨손 격투 대결은 웬만한 블록버스터 액션 시퀀스의 그것을 능가한다. 놀란의 3부작 이전 시리즈를 포함한 악당들 가운데서도 코믹스 속 묘사에 가장 가깝다. 보는 이들의 아드레날린을 증폭시킬 정도다.

베인에 대한 해석은 이번 ‘라이즈’의 가장 주안점이다. 원인은 다르지만 배트맨과 마찬가지로 가면을 쓰고 눈빛과 목소리만으로 감정을 전달한다. 웨인이 박쥐에 대한 트라우마를 앓았듯, 베인 역시 설명은 없지만 비슷한 설정을 감지할 수 있다.

이 같은 설정은 ‘라이즈’에서 그리는 베인의 극단적 행동 양식에서 추측 가능하다. 전작의 조커가 배트맨과 고담시의 ‘멘탈 붕괴’를 노렸다면, 베인은 ‘멘탈’을 넘어 육체와 사회 전체의 시스템 붕괴를 시도한다. 혁명에 가까운 악의 실천 방식은 극중 흥미로운 장면으로도 그려진다. 놀란이 참고한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와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는 ‘라이즈’ 전반에 깔리면서 베인의 활동 자양분이 된다. 그 정점은 시리즈 전편에 등장하는 ‘허수아비’ 닥터 크레인 주도의 재판장 시퀀스에서 그려진 일종의 체재 전복 묘사로 귀결된다. 해당 시퀀스 앞서 등장한 월스트리트 폭동 장면은 올해 초 전 세계 경제를 강타한 반 월가 시위 잔상에 오버랩 된다. 고담시 붕괴에 따른 계급투쟁 전면전이 ‘라이즈’의 절정 부위에 이르러 베인과 배트맨의 맨투맨 대결로 압축됨은 놀란 감독의 노림수다. 그 압축의 이면에 자리한 반전의 묘미를 극대화 하기 위한 장치다.

그 반전의 묘미가 바로 배트맨의 근원적 존재론을 얘기하고픈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의 핵심이다. ‘라이즈’를 통해 고담이 필요로 하는 배트맨과 그 상실에서 오는 상충의 파열음, 그리고 시리즈를 관통하는 선악의 존재는 어쩌면 양비론에 가깝다는 해석을 할 수 있도록 관객들의 선입견을 조종한다. 결말부의 열린 스토리는 그래서 새로운 시작을 기대케 하며 놀란 감독이 탄생시킨 히어로물의 마침표를 찍지 못하게 한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단순한 관점에서 보자면 히어로물의 최대 단점인 현실성 결여를 장점의 극대화로 이끌어낸 상당히 독특한 케이스의 영화다. 양대 코믹스 캐릭터 가운데 양면성의 본질이 가장 큰 배트맨이기에 이 같은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꽤 뚫은 놀란 감독의 통찰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것도 어쩌면 관객 입장에선 당연할 수 밖에 없다.

‘라이즈’는 164분의 러닝타임 중 아이맥스 촬영분만 72분에 달한다. 극중 CG를 의심케 하는 장면 대부분이 실사 촬영으로 진행됐다. 놀란은 3D시대에 아날로그의 힘을 고집하는 몇 안되는 스크린 보수주의자다.

뚜껑은 열렸다. 분명 영화 역사가 새로 쓰일 것이다. 원작 팬들이라면 그 역사의 주인공이 단연코 놀란의 배트맨이기를 원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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