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즈음 대한민국 여성들에게서 ‘하의’가 실종되기 시작한지도 벌써 1년이 넘었지만 대한민국의 노출문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오히려 보편화했다. ‘반짝 유행’일 것이라던 관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어느 곳에서도 젊은 여성들이 다리를 드러낸 옷차림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제 핫팬츠와 미니스커트 차림은 별로 과감하지도 않다.
한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그 사회의 단면을 말해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 여성 옷차림의 노출 수위가 높아지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남자들에게 시선을 끌기 위한 것’ 정도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여성들의 옷차림의 이면에는 그들이 이루고 싶은 정체성과 우리사회가 공유하는 가치관 등이 숨겨져 있다.
◇ 남(男) 보라고?...NO, 나 보려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데이트를 하고 있다. 길을 걸어가던 두 사람의 맞은 편 꼭대기에서 또 다른 커플 한 쌍이 걸어온다. 그런데 맞은 편 남자와 여자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
이 상황에서 남자의 시선이 맞은 편 여자에게 꽂힐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반면 오르막을 오르는 여자의 경우는 어떨까.
일반적으로 여자의 시선은 남자와 정반대로 맞은 편의 잘 생긴 남자에게 향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서로 잘 생긴 이성을 쳐다보겠거니 하는 것이다. 이 추측은 틀렸다. 건국대학교 자율전공학부 김석 교수는 “여성도 맞은편 여성을 바라본다”고 말한다.
여성의 노출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그것이 남성에 대한 유혹이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하늘거리는 얇은 소재의 잠옷를 입고 침대에서 남자에게 손짓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거리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하의실종’은 유혹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노출의 목적은 자기 스스로의 만족을 찾으려는 데 있다는 게 관련 학자의 대체적인 견해다.
김 교수는 “S라인이니 팔등신이니 하는 개념이 문화적 기호로 공유되면 여성들은 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자기가 추구하려는 이미지에 부합하는 패션을 선택했을 뿐이라는 것. 남자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에 포함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노출 자체의 목적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여성의 노출은 본능도 아니다. 세계 곳곳의 오지에는 옷을 입지 않고 생활하는 원시부족 여성을 볼 수 있다. 모든 인류의 선조 역시 마찬가지로 옷을 입지 않았다. 이들에게 있어 신체 부위를 노출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 노출을 통해 이성을 유혹하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없는 셈이다. 당연히 노출에 대한 본능도 생기지 않는다.
◇ 주목받아야 생존, 자기노출 배틀로얄
노출패션이 자신을 나타내는 문화적 표현이라면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하필 ‘노출’이 선택된 이유에 대한 설명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서강대 사회학과 전상진 교수는 그 원인을 ‘주목에 대한 열망’에서 찾는다. 수많은 경쟁자 가운데 주목을 받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비교적 과감한 옷차림의 유행을 불렀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현대사회를 ‘주목사회’라고 정의했다. 그는 “과거 많은 사람들이 남에게 감시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오히려 ‘남들이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두렵게 됐다”며 “하의실종을 비롯한 노출패션이 널리 퍼진 것은 남들의 주목을 끌고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 같은 사회적 변화에 대해 다소 우려를 나타냈다. 전 교수는 “노출이라고 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결국 사회가 강요하는 미적인 기준에 동요하는 현상”이라며 “여기에 유행에 빨리 대응해야 한다는 심리가 개입하면서 경쟁적으로 변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를테면 역설적으로 ‘유행도 쫓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낙인을 피하기 위해 더 노출에 매달리게 된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김석 교수 역시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숨기지 않았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가장 빠르게 상품사회로 진입했고 그 결과 전통적 가치가 어느 문화보다도 빠르게 붕괴했다”며 “노출문화가 선택된 원인은 몸 자체가 교환이 가능한 개인의 ‘자원’ 개념으로 변질됐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부작용을 불러온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