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이들의 역습]나 담배 피운다…흡연구역은 왜 안 만드나

입력 2012-04-12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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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도 거리도 담배피울 곳 없어…금연열풍 인정하지만 "흡연권 침해"

우리는 당신들이 싫어하는 흡연자다. 사람들은 우리 옆에 있기만 해도 담배냄새가 난다며 폐암에 걸리는 줄 알지. 우리가 멀리서 멀리서 담배를 꺼내 무는 모습만 봐도 표정을 찡그리기도 하더라. 오해하지마 그거 다 일부 매너 없는 흡연자들이 그렇게 만든 거야.

세상은 왜 담배 피우는 사람을 싫어하는가. 우리도 당신들과 다투고 싶지 않아.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 돼. 우리가 매년 내는 세금이 얼만데 이 정도 냈으면 흡연구역 만들어 줘도 되잖아. 독일에서는 흡연자들만 타는 버스가 있다던데 그런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여자친구는 꼭 공원 같은 금연장소에서 만나자고 하더라. 맛있는 것 사달라고 가는 식당은 왜 빌딩 높은 층이나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지. 계단이나 비상구로 향할 수밖에 없어.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 표정이 동병산련이야. 중간마다 흡연구역 좀 설치해 주면 몰래 피우지 않아도 되잖아.

그리고 아무데서나 담배 피우고, 아무데나 꽁초 버리고, 바닥에 침 뱉는 흡연자들. 당신들 때문에 선량한 우리까지 욕 먹어. 반경 20미터 내에 어린 아이가 있으면 담배 피지 마. 걸어가면서 연기 내뿜으면 그거 다 뒷사람에게 가. 벌금 물고 싶어? 지킬 건 지키면서 요구할 건 요구하자고.

“사무실이 23층인데 담배를 피우려면 건물을 나와야 한다. 업무시간에는 피울 수가 없어서 점심 후 줄담배 3~4개비를 한 번에 피운다. 이렇다 보니까 비상구에서 피우는 사람들도 있다. 흡연실 한 곳만 있다면 저지르지 않을 불법이다. 어떻게 수십 층 건물에 흡연실 한 곳 만들어 두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회사원 김병훈(33·남))

“전에는 집에서 피웠는데 이후에는 가족들 건강을 생각해 스스로 베란다에서 피웠다. 그런데 윗집에서 담배연기가 자신의 집으로 들어온다며 항의가 들어왔다. 그 뒤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가 건물 밖에서 피웠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이웃이 담배냄새를 풍긴다고 항의했다. 나중에 부녀회에서 ‘금연단지’를 만든다며 재떨이도 치웠다. 이쯤 되니 화가 났다.” (서울 마포구 원 모(42·남)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금연 분위기에 흡연자들의 불만도 점점 커지고 있다. 많은 흡연자는 금연열풍 자체에는 찬성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흡연자들의 권리가 지나치게 무시당하고 있다며 불만을 보이고 있다. 관련 단체와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정밀한 검토 없이 필요 이상의 규제를 밀어붙이는 측면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금연구역 제정에 한창이다. 서울의 경우 지난해 총 321곳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했다. 이후 올해는 자치구가 관리하는 도시공원 1910곳, 2013년에는 가로변 버스정류소 5715곳, 2014년에는 학교정화구역 1305곳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예정이다. 2014년까지 총 9251곳이 금연구역이 된다. 서울시 총 면적 5분의 1이다. 흡연자는 그야말로 설 땅이 없어진다.

최근에는 강남대로의 금연구역 지정으로 흡연권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관할 자치구인 서초구와 강남구는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대로에서 간접흡연 피해가 많고 시민들 대부분이 찬성하기 때문에 금연구역을 지정했다”는 입장이다. 반면 담배소비자협회 등 흡연자들은 금연구역 지정에는 찬성하면서도 별도 흡연구역이 마련되지 않아 ‘흡연권’을 침해당했다고 말한다.

우리보다 앞서 금연 거리를 지정한 해외의 경우 별도의 흡연 공간을 마련해 흡연권을 보장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신주쿠 등 도심의 금연거리마다 흡연구역을 별도로 마련해 눈에 잘 보이는 표지판 등으로 안내한다. 각종 간접흡연 방지 정책에 앞장섰던 독일에서는 ‘흡연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흡연자 승객들은 이 버스에서 마음껏 담배를 피울 수 있다.

서울시와 각 자치구의 조사결과 시민 10명 가운데 9명은 금연구역 지정에 따른 후속대책으로 ‘별도의 흡연공간 마련’을 꼽았다. 하지만 서울시에 별도의 흡연시설이 설치된 건물은 전무하다. 자치구들은 “돈이 없다”며 흡연시설물 설치에 소극적이다. 서울시도 애초 금연공원에 흡연시설물을 만들기로 했던 계획을 지난해 말 취소했다.

하지만 돈이 없다는 얘기에는 설득력이 없다는 게 담배소비자협회의 주장이다. 흡연자가 담뱃값으로 내는 세금을 감안하면 재원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담배에 붙는 세금은 국민건강진흥기금, 담배소비세, 지방교육세, 폐기물부담금, 부가가치세 등 한 갑 당 1520원에 달한다. 전체적으로는 연간 총 10조원에 가깝다. “흡연자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한다”는 볼멘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금연거리 지정 등 한 방향으로만 추진되는 금연정책에는 법리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성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흡연권은 개인의 기본권이며 이는 행복 추구권과 연결되기 때문에 법률로 규제할 때에는 신중해야 한다”며 “흡연자와 비흡연자, 다양한 주체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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