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이건희 vs 스티브잡스, 명품 양복과 청바지…같으면서도 다른 '성공 DNA'

입력 2012-03-26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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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애플 창업주 고 스티브 잡스
기업 총수 집안에서 태어난 A는 어린 시절부터 부유했다. 풍족한 환경에서 호기심이 많았던 A는 장난감을 선물 받으면 무조건 뜯어보고 조립하기를 즐겨했다. 나이가 들어 경영 수업을 받을 때에도 각종 기계 탐구에 심취했으며 심지어 집으로 기술자들을 불러 전문적인 설명을 듣곤 했다.

어릴 때 버려져 입양된 B는 고등학교 중퇴이자 자동차 수리공인 양아버지 영향을 많이 받았다. 중고차 수리와 자동차 설계에 익숙했던 B는 전자공학에 대한 관심이 어릴 때부터 남달랐다. 전자공학을 장난감에 활용할 줄 알았던 B는 고등학교 때 HP CEO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원하는 부품을 얻어내고 공장에서 일하는 기회까지 얻은 대범한 괴짜였다.

자라온 환경은 꽤 다르지만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성장했던 A와 B가 바로 IT업계 세계 최고 라이벌 삼성과 애플의 수장들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다.

1942년 생으로 잡스보다 13살이 많은 이 회장은 ‘부유한 가정’에서 탄탄한 경영수업을 받은 전형적인 재벌 2세다. 내성적이던 그가 지금의 탁월한 추진력과 통찰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46세에 경영승계를 받고 5년이 지난 이후다.

반면 ‘차려진 밥상’이 없었던 잡스는 어릴 때부터 자기 만의 방식으로 성장했다. 22세의 어린 나이에 창고에서 창업한 잡스는 28세 나이에 개인용 PC 업계 최초로 매출액 10억 달러를 돌파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이 회장이 경영자로서 두각을 나타낸 시점보다 거의 20년이나 젊은 나이다.

글로벌 IT업계를 좌우하는 이들은 비슷한 면도 있지만 어찌 보면 또 뿌리부터 성향까지 철저히 다른 두 사람이기도 하다. 1000만원이 넘는 고가 양복을 입는 이건희 회장과 138달러짜리 501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공식 석상에 나타나는 잡스의 패션도 차이라면 차이일까.

◇ 혁신과 창조의 신화 DNA, 스티브 잡스 = “당신은 남은 인생을 설탕 탄 물이나 팔면서 보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정말로 세상을 바꿔 볼 기회를 원합니까?”

1985년 잡스가 펩시콜라 CEO 출신인 존 스컬리를 애플에 영입하기 위해 했던 말이다. 잡스는 말 한마디로 사람의 마음 뿐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켜왔다.

1980년대 골리앗 IBM과의 싸움에서 패하고 존 스컬리 영입 이후 애플에서 쫓겨난 잡스. 하지만 애플이 1997년 다시 그를 필요로 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는 미완성 제품, 아이디어 등 ‘흙 속의 진주’를 발견해내는 혜안과 그것을 혁신과 성공으로 이끌어내는 대단한 열정이 있었다. 프리젠테이션과 함께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은 말할 것도 없다.

잡스는 이러한 능력으로 스티브 워즈니악의 회로기판을 최초의 PC 탄생으로 이끌었고 부하 직원 래스킨이 개발 중이던 매킨토시를 한 눈에 알아보고 세상에 내놓았다. 이들은 결국 잡스의 열정에 매료돼 스스로 창조의 원동력을 발동시켰던 것이다. 게다가 제품 개발이 완료될 때까지 일일이 모든 작업을 직접 주도했다.

1997년 복귀 이후에도 잡스는 아이팟 시리즈,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애플을 PC제조업체가 아닌 글로벌 IT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고객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했던 잡스는 그들의 간지러운 곳을 정확히 긁어줬다. 잡스를 ‘혁신’, ‘창조’의 대명사라 부르는 이유다.

◇ 패스트 팔로워에서 퍼스트 무버가 된 이건희 =이건희 회장은 ‘창조와 혁신’ 면에서는 잡스보다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삼성그룹 승계자라는 출발점이 창고에서 시작했던 잡스와는 너무나도 달랐던 점 역시 배제할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이 회장은 순한 양에서 야수로 돌변했다. 삼성그룹 총수로 취임한 지 5년이 지난 1993년 그의 매서운 통찰력과 판단력, 이를 바탕으로 한 추진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 평소 말 수가 적었던 이건희 회장이 삼성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일갈을 터뜨렸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 방침을 선포한 그는 속도와 양이 아닌 질로 승부하는 ‘품질의 명품화’를 강조했다.

휴대폰 시장에서 애니콜 반응이 좋지 않자 1995년 불량품으로 여겨지는 15만대를 삼성전자 구미 사업장 2000여명의 임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모두 불태워버렸다. 그 이후 국내 4위였던 휴대폰 시장 점유율이 1위로 올라섰다. 2007년에는 모토로라를 제치고 노키아에 이어 세계 휴대폰 시장 2위에 올랐다.

반도체 부문 역시 조직개편을 마다 않고 남들 보다 앞선 결과 2014년에는 부동의 1위 ‘인텔’을 뛰어넘어 세계 시장 1위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과정은 다르지만 휴대폰을 기점으로 2012년 현재 삼성과 애플은 세계 최고의 라이벌 관계로 굳혀지고 있다. 전 세계를 열광시킨 애플을 견제할 만큼 삼성도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

◇ 왕들의 부재…잡스 없는 애플·이건희 없는 삼성? = 삼성과 애플의 라이벌 관계에 관심을 쏟는 이들 중에는 ‘이건희 회장 이후’의 상황을 예측해 본다. 승승장구하던 애플이 잡스의 부재로 삼성에 덜미를 잡혔 듯 삼성도 언젠가는 ‘이건희 부재 시대’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애플과 삼성에 있어 스티브 잡스와 이건희의 영향력과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스티브 잡스를 떠나보낸 애플은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고, 독단적이고 괴팍한 잡스의 카리스마와 열정을 잊지못해 지난 1997년 그를 복귀시켰다.

실제로 애플이 잡스를 쫓아낸 후 얻은 성과는 별로 없었다. 1987년 당시 존 스컬리는 과거 잡스의 경영에 대해 “정신 나간 계획이었다”며 독설을 내뿜었지만 결국 1990년대 초 애플의 시장점유율과 수익은 끝없이 하락했다. 매킨토시 역시 IBM의 그늘에 가려 움츠러들 수 밖에 없었다. 잡스가 귀환한 후 애플은 부모 없던 아이 마냥 매달렸고 잡스는 신의 손으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야 말로 ‘왕의 귀환’이었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모두 출시함과 동시에 대 혁명을 불러일으켰고 출시 첫날 애플 매장에 늘어진 수백만 명의 인파는 익숙한 모습이 돼 버렸다.

그러나 잡스가 다시 떠났다. 애플에게는 커다란 핸디캡일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별 탈 없이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 ‘그래도 애플’이라는 말도 실감난다. 갑자기 휘청거리지는 않지만, 삼성에게 추격을 허용하는 등 스티브 잡스의 마력이 많이 빠진 것도 사실이다.

삼성은 어떨까. 잡스 만큼의 혁신과 변화에 대한 실천성이 2% 정도 부족할 지는 몰라도 이건희 회장을 대신할 인물은 대한민국에 아직 없다는 의견이 강하다. 3세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변수는 있지만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이 회장도 ‘잠깐 동안의’ 부재가 있었지만 잡스의 부재와는 달랐다. 잡스는 회사 경영 악화로 물러났지만, 이 회장은 지난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 수사로 조세포탈 및 배임 등의 혐의가 인정돼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23개월 간의 이건희 회장 부재에 대해 삼성 경영진들은 ‘총수 부재’ 문제를 끊임없이 토로했다. 위험 수위가 높은 중장기 사업의 방향, 대규모 투자에 대한 그 어떤 결정도 내리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복귀했고 2년이 지나면서 삼성은 예전의 힘을 되찾았다. 수십조 원이 드는 장기 투자 사업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는 이 회장의 판단력과 집념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건희 회장 이후’ 삼성이 글로벌 강자의 면모를 유지할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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