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개천에서 더이상 龍 안 난다

입력 2012-03-08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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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대물림-돈 잘버는 부모가 사교육 많이 시켜…그 자녀가 다시 고소득자 돼

20~30년 전 대한민국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였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의지와 노력만으로 명문대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 빈곤에 허덕이던 시절이지만 자녀의 학구열 여하에 따라 인간승리가 가능했고 실제 그러한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2012년 현재, 명문대 입학생은 물론 과거 자수성가의 대명사였던 고시 합격자 중에도 저소득층 출신을 찾기란 쉽지 않다.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라고 말하는 명문대 수석 합격자 이야기는 신화 속에나 나올법한 이야기가 됐다.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학력위주의 경쟁체제로 사회구조가 바뀌는 과정에서 발생한 소득의 양극화는 자연스럽게 교육 격차를 불렀다. 교육현장의 과도한 학력경쟁은 대한민국을 사교육 천국으로 만들었고 돈이 성적과 학력, 스펙을 결정짓는 시대가 됐다. 이러한 사교육에 의한 성공이 부의 대물림을 보장하는 악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교육비 투자 정도에 따라 자녀교육의 성패가 결정되는 세상에서 돈 없이 성공적인 자녀교육이란 거의 불가능하다. 여기에 고교다양화정책, 입학사정관제 등 교육 정책들도 부유층과 그 자녀들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흘러가고 있다.

“자녀교육은 마음만으로는 안 된다. 투자한 만큼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부모가 얼마나 투자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게 지금의 교육 현실이다.”(서울대 학부모)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안민석 의원(민주통합당)이 최근 한국장학재단르로부터 제공받아 공개한 ‘2012학년도 국가장학금 신청자 소득분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등 상위권 대학 학생들의 40% 가량이 소득 상위 10% 안에 드는 최고소득층의 자녀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소득 하위 10%에 속하는 최저소득층 자녀의 비율은 4년제 대학 평균을 크게 밑돌았다.

서울대(36.7%), 연세대(35.1%), 고려대(37.8%), 카이스트(37.3%), 포항공대(37.9%), 이화여대(43.8%) 등 상위권 대학 국가장학금 신청자의 35~44%가 10분위(소득 상위 10%·월평균 가구소득 923만원)에 속하는 최고소득층 가정 자녀들이었다. 전국 4년제 대학 평균 10분위 비율(21.2%)의 1.5~2배에 이르는 수치다.

올해 전체 대학생의 83%가 국가장학금을 신청했고 소득이 많을수록 장학금 신청에 소극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 대학의 최고소득층 자녀 비율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상위 10개 대학의 소득 하위 10%(기초생활수급권자와 1분위, 월평균 가구소득 76만원) 자녀 비율은 8.7%로 4년제 대학 평균(12.9%)에 크게 못 미쳤다. 이화여대(7.0%)와 포항공대(7.4%)는 절반 수준에 그쳤고 국립대인 서울교대(7.6%)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하위 10% 비율이 평균보다 높은 대학은 한 곳도 없었으며 연세대(11.4%)가 그나마 평균에 가장 근접했다.

이러한 양상은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특목고에서도 나타난다. 특목고의 경우 재학생들의 부모 소득이 일반고교 등과 비교해 대체로 높다.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의 ‘고교유형별 학생집단의 특성 연구’ 의 학교별 부모 소득에 따르면 자율고와 특목고는 ‘월 평균 500만원 초과’가 각각 41.85%와 50.41%로 가장 많다. 반면 일반고는 ‘351만~500만원’이 29.98%로 가장 많았고 특성화고는 ‘200만원 이하’가 57.03%였다.

서울대의 경우 지난해 합격자 중 서울의 일반고 출신 중에서 강남·서초·송파 3구 출신이 무려 42.5%인데 반해 구로·금천·마포 3구 출신은 불과 2.7%였다.

서울대 학생들의 부모 직업 변화(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 분석)를 보면 2010년 서울대 신입생 아버지 직업은 부유층으로 불리는 전문직이 21.3%, 경영관리직이 14.6%에 달했다. 또 안정적으로 사교육 뒷받침이 가능한 교직자와 사무직이 각각 8.9%와 28.9%였다. 중산층 이상 가정 출신 자녀가 75%를 넘은 것이다. 반면 판매, 서비스업 12.7%를 제외한 기술직 4.3%, 농수축산업 0.7% 등 서민층 자녀는 7.7%에 불과했다.

1998년 전체 입학생 중 아버지가 농어민인 입학생 비율이 4.7%인 점을 감안하면 12년 만에 6∼7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농촌 지역의 급속한 고령화로 수험생 자체가 줄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0.7%라는 수치는 무직자·전업주부·정년퇴직자 등 사실상 직업이 없는 사람을 제외하면 전 직업군 가운데 가장 낮다.

아버지의 교육 수준을 기준으로 계층 상승 가능성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2010년 서울대 신입생 중 아버지의 학력이 고졸인 학생은 전체의 16.7%로 대졸(53.0%) 및 대학원졸(28.8%)보다 훨씬 적었다. 신입생 부모 학력을 처음 조사한 2004년에는 아버지가 고졸인 학생이 전체의 24.1%였지만 2005년 22.5%, 2007년 19.1%, 2009년 16.0%로 매년 줄었다.

소득이 많은 부모가 자녀에게 사교육을 많이 시키게 되고 그 자녀가 다시 고소득자가 되는, 즉 교육을 통한 부의 대물림이 확대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사교육 열풍을 감안할 때 이런 현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고착화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A 입시학원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잘살든 못살든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관심은 매우 높다”면서 “하지만 이러한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의도 마음만 가지고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치맛바람도 여유 있는 집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육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고 입시제도 역시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며 “여기에 얼마나 발빠르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명문대 입학의 성패가 결정되는데 있는 집들, 즉 부유층이 그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신명호 사회투자지원재단 사회적경제연구소장은 “개인의 교육성취가 가정 배경에 좌우되지 않도록 교육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사회경제적 평등을 먼저 달성해야 교육도 평등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제도 측면에서도 소위 경쟁력과 수월성을 강조하는 현재의 교육정책이 수정돼야 한다”며 “이는 현 교육체제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저학력 노동자와 저소득층 자녀들의 계층상승 가능성을 더욱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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