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cine 해부학] '범죄와의 전쟁' 속 1980년대는 '폭력의 시대'

입력 2012-01-26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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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의 정직함은 곧 우매함이다. 시대적 흐름과 사회 통념상 그 당시는 먹고 먹히며 물고 물리는 약육강식이 지배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닌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는 정글 속 법칙 꼭지점을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의 전성시대’는 말한다. 영화에는 강한 자와 더 강한 자의 싸움이 존재한다. 따지고 보면 느와르적 요소의 겉치레가 강조된 ‘올드보이’의 기시감이 떠오른다. 배우 중첩성이 갖는 시각적 익숙함과 괴물로 점차 변해가는 주인공 익현(최민식)의 자기파괴가 ‘올드보이’와의 교집합으로 떠오른다. 최민식의 원맨쇼가 또 다시 불을 뿜을 것이란 예측이 가능하다.

영화로 들어가 보자. 타이틀 ‘범죄와의 전쟁’은 1980년대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선포한 범죄 소탕작전 실제명이다. 타이틀이 극 전체의 시대적 배경이라면 부제 ‘나쁜놈들의 전성시대’가 주제이자 본질이며 핵심이다. 힘이 지배하는 뒷골목 룰 속에서 누가 더 나쁜 놈이고, 또 더 나빠지기 위해 경쟁적으로 자신을 더럽히는 과정은 133분 동안 스크린을 채운다. 그 시간이 지나면 영화는 관객들에게 “강함이 정의인가, 아니면 정의가 곧 강함을 지배하는가”를 묻는다.

영화 속 익현은 그 질문에 대한 실체이자 해답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만들어낸 해답은 이른바 ‘잔머리가 만들어낸 허상’이다. 그 허상이 냉소로 뒤바뀌는 곳곳의 영화적 장치는 배경과 결합돼 팩트와 픽션의 경계선마저 허물어 버린다. 마치 그 시절 우리네 아버지들의 모습이 그러했고, 익현의 간교함이 가족의 틀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필요적 선택이었다고 설득한다.

그럼 필요적 선택은 무엇인가. 단순하게도 ‘맥(脈)’으로 이어진 대한민국의 고질적 병폐 구조를 말한다. 수많은 비리를 저지른 세관 공무원 최익현이 건달도 그렇다고 일반인도 아닌 ‘반달’이란 친사회적 괴물로 변해가고, 그가 걷고 있는 아스팔트길은 당시 시대상을 관통하는 하나의 생존법이다. 비리 적발에 걸려든 익현이 우연히 필로폰을 손에 넣은 뒤 동료의 소개로 조직 폭력배 최형배(하정우)를 만나는 장면은 생존과 괴물 탈피의 시작이다. 형배가 먼 친척임을 알게 된 익현은 각종 사업의 인허가를 자신이 맡겠다며 동업을 제안한다. 익현의 인맥과, 형배의 주먹은 두 사람을 곧장 전국구 거물로 발돋움시키며 당시 정권의 표적이 된 ‘범죄’ 그 자체가 된다.

이후의 과정은 익현의 선택을 따른다. 선택은 단순하다. 이익으로만 손을 뻗으면 그만이다. 이미 공무원 시절부터 조직 속 생존에 본능적으로 발달해 버린 ‘촉’이 그를 철저한 기회주의자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 한 가지 집고 넘어가 보자. 부산지역 최대 폭력 조직을 넘어 대한민국을 떡 주무르듯 손아귀에 움쳐 쥔 최익현의 ‘수’가 결국 ‘맥’이었다니. 이 부분에서 연출을 맡은 윤종빈 감독은 앞서 언급한 우리사회 병폐인 이 점을 냉소적 시선으로 제압한다. 최익현이 손에 쥐고 흔든 맥의 실체가 그의 양복 안주머니 수첩 하나였단 사실은 1980년대 이중성이자 자기모순이다. ‘범죄와의 전쟁’을 이끌던 검사마저 그 수첩의 위력에 굴복해 기득권에 발을 들여 놓는 장면은 그 같은 사실을 반증한다.

그럼에도 ‘범죄와의 전쟁’을 수작으로 부르기 아쉬운 점은 ‘최민식’이란 배우 동력 하나에 의지한 추진력 때문이다.

최민식이 연기한 최익현은 상황에 따라 무한자기 복제를 반복하는 인물이다. 죽음을 직면한 상황에서도 그는 바늘구멍 하나의 틈을 보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탈출구를 만들어 낸다. 그 과정에서 위선과 가식을 넘나들며 ‘누구의 친구’ 때론 ‘누구의 삼촌’ 나아가 ‘사돈의 8촌’ 등으로 변신한다. 결국 반복된 거짓을 통제하지 못한 중독체가 된다. 요지는 최익현이 내세운 ‘맥’과 ‘거짓’ 그리고 ‘통제력 상실’을 얼마만큼 정교하게 그리느냐다. 또 상업 영화의 필수요소인 극적 긴장감을 어떻게 녹여내느냐에도 달렸다.

나아가 ‘범죄와의 전쟁’은 하정우란 걸출한 배우를 최민식의 대척점에 세워뒀음에도, 풀어내는 과정에서 정교하지도 긴장감도 없는 단순 줄기로 마감했다. 아주 간단하게는 최익현이란 로비스트의 일대기 극 전개에 올인한 모양새로 마감 지었다.

기자 간담회를 통해 윤 감독이 말한 ‘아버지 시대’의 추억도 선뜻 공감하기 힘들다. ‘범죄와의 전쟁’은 최익현이란 인물 중심의 흐름이 강하다. 조폭의 주먹과 국가의 공권력, 그리고 그 사이를 넘나드는 로비스트 최익현의 보이지 않는 ‘처세의 폭력’. 이 세 가지 힘의 교집합이 최익현이며, ‘범죄와의 전쟁’이 아닌 ‘나쁜놈들의 전성시대’가 더 어울리는 이유의 가장 큰 ‘맥’이다. 결국 아버지의 얘기가 아닌 ‘폭력의 본질’로 스토리 전체를 이끈다. 때문에 결말부 시퀸스가 너무도 동떨어진 느낌이다.

최민식의 연기는 두 말할 나위 없는 몰입도를 준다. 하정우는 최민식과의 기싸움에서 전혀 밀리는 기색이 없지만 강렬한 여운 대비 존재감이 아쉽다.

‘용서받지 못한 자’ ‘비스티 보이즈’를 연출한 윤종빈 감독의 신작이다. 다음 달 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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