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富]개천서 龍 안 나는 사회…'빈곤 탈출' 사다리가 없다

입력 2011-10-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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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재물만 좇는 사회 <하>부의 대물림

▲한국대학생연합 소속 학생들이 지난 8월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반값등록금 실현을 요구하는 기습 시위를 벌이다 경찰의 강제연행에 저항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빈익빈, 부익부.’. ‘가난은 나랏님도 해결 못한다.’, ‘가난은 대물림이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은 나지 않는다.’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노력해봐도 부자가 되기 힘들다는 자조감의 대명사들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절망감이 지속되고 있고, 부자에 대한 이미지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가난의 대물림’을 막을 수 있는 사회적 대책이 시급한 시점이다.

“여러분, 부~자되세요”라던 카드회사 광고 슬로건이 빅히트를 쳤다. 지금까지도 이 슬로건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선호하는 새해 덕담으로 통하고 있다. 해를 거치며 “부자되세요”란 말이 “돈 많이 많이 버세요”란 다소 노골적인 표현으로 변천하는 등 부자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로망 임이 틀림 없다.

◇부자, 대물림 시작은 ‘교육’= 250년의 역사를 가진 스위스의 어느 PB(프라이빗뱅크)의 비즈니스 모토는 ‘대를 이은 부(富)의 세습’이라고 한다. 대대로 내려오는 부귀와 명예를 다음 세대로 온전하게 이전시키는 것이 거액 자산가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속담에 ‘부자 3대 못 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자녀 세대에까지 부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중견 IT기업 사장 L씨는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일정한 규모 이상의 용돈은 무조건 적금통장에 넣도록 의무화했다. L씨는 자녀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적금을 해지하고 적립식 펀드로 전환토록 했다. 그는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교훈을 자녀들이 몸소 깨우친 것 같다”며 “펀드로 전환하고 보니 국가 경제, 주식시장 등에 대해 부쩍 관심이 늘었다”고 좋아했다.

전통적인 부자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자녀에 대해 경제 교육을 시키고 있다. 2세들이 자신이 물려준 부를 더 늘려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잃지 않고 오래오래 보존하게 하려는 생각에서다.

실제로 우리나라 부자들의 월평균 소비지출에서 자녀 교육비의 비중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가 최근 펴낸 ‘한국 부자 연구: 자산형성과 투자행태, 라이프스타일’ 보고서에 따르면 부자들은 한 달 평균 832만원을 소비하며 전체 소비항목 가운데 ‘자녀교육비’의 비중이 24.8%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소 관계자는 “소비여력이 충분한 부자들은 해외 유학 및 연수 등 고가의 자녀교육 방식에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성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천문학적인 재산을 지닌 대기업 오너들의 경우 대부분 아들을 해외 명문 대학에 보낸다. 경영을 승계한 최태원 SK 회장, 경영 수업이 한창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정의선 현대차 사장 등이 그렇다. 비단 이들 뿐 아니다. 주요 대기업 그룹 2~3세 치고 외국에서 유학하지 않은 재벌가 자제는 드물다.

학업이 끝나면 회사에 입사해 초고속 승진을 거치며 경영수업을 받는다. 이렇듯 ‘큰 부자’들의 경제교육은 철저한 시스템 속에서 이뤄진다.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돈의 생리를 잘 아는 경제적 인간으로 성장한다. 비슷한 연령 대의 다른 젊은이들과는 완전히 다른 교육, 이른바 ‘황제 교육’을 받는다.

◇빈곤의 대물림 ‘88만원 세대’= 등골탑에 다니기 위해 알부자족이 됐다(?). 엄청난 등록금과 얼어붙은 취업 시장으로 인해 한때 대학가에서 유행했던 말이다. 등골탑은 대학의 높은 등록금을 빗댄 말이다. 예전에는 대학 등록금을 위해 소나 논을 팔아 대학이 곧 ‘우골탑(牛骨塔)’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이제는 우골탑을 넘어 부모 등골을 뺀다고 해서 ‘등골탑’이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알부자는 원래 실속 있는 부자라는 뜻이지만 대학생들이 사용하는 ‘알부자족’은 알바로 부족한 학자금을 충당하는 학생들을 빗댄 반어적 표현이다.

교육은 부자나 가난한 자에게나 출발선을 같게 해 진정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제도라고 칭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가난한 수재’가 ‘뜨거운 아이스크림’과 같은 형용 모순이 된 지 오래다. 학벌이 신분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학벌로 뭉친 특정 집단이 돈과 권력을 독점하고, 학벌을 통해 얻은 부와 권력, 명예는 다음 세대에게 고스란히 세습된다. 학벌은 사회 계층의 수직이동을 막는 장벽이며 평생 써먹어도 닳지 않는 상징 재화다.

학벌을 통해 사회계층 수직이동을 노렸던 젊은 세대가 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살인적인 취업난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간다는 ‘88만원 세대’라는 달갑지 않은 별칭마저 붙었다.

지금의 20대는 상위 5% 만이 공기업과 대기업, 5급 공무원 같은 안정된 직장을 가질 수 있고, 나머지는 800만명을 넘어선 비정규직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현재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은 119만원. 여기에 20대가 받는 평균적인 급여 비율 74%를 곱하면 88만원이 된다.

게다가 부자 부모를 둔 극소수를 제외하면 독립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게 현실이다. 외환위기 이후 강자 만이 살아 남는 ‘승자독식’ 사회가 되면서 젊은 세대의 경제활동 참여시기는 갈수록 늦어지고 있다. 평균 학력은 높아지고 해외 어학연수와 인턴십 등 취업 준비기간은 길어지는 추세다.

서울 소재 사립대에 재학 중인 임대성 씨(남·26세)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현실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며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요즘처럼 사교육비가 대학 입학을 좌우하는 시대에는 돈 많은 집안 아들딸이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또 명문대생은 과외로 손쉽게 돈 벌어서 어학연수도 다녀와 스펙도 쌓고, 결국 좋은 직장 들어간다”면서 “그에 반해 돈 없는 집안 사람들은 대부분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게 인생의 목표가 됐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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