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이 뭐길래"… 고개 숙인 고졸 직장인들

입력 2011-09-06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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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끌어안기 나선 정부ㆍ대기업… 하지만 "글쎄" 부정적 인식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 어느 국가와 비교해도 단연 수위에 꼽힌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의 교육열에 대해 공식 연설 도중 직접 언급했을 정도다.

실제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좋은 대학’을 어렸을 때부터 거듭 강조한다. ‘좋은 대학을 가야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현재 각종 학원 등으로 힘겨워하는 학생들은 궁극적으론 좋은 직장을 위해서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대학교를 나오지 않은, 이른 바 ‘고졸 직장인’들은 우리 사회에선 성공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일까. 이와 함께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좋은 직장’으로의 이직도 힘들까. 과거에 비해 학벌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바뀌고는 있지만 아직도 멀었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 많은 고졸 직장인들은 ‘꿈같은 얘기’라고 말한다. 때문에 자포자기하는 고졸 직장인들이 현재 우리 사회에 많다.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고 다시 대학에 진학하는 이유다.

재능이 있음에도 학벌이란 벽에 부딪혀 빛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많을 수록 우리 사회로서도 손해인 건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를 필두로 바뀌고 있는 고졸 직장인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대기업들 역시 고졸 채용을 늘리고, 대졸과 차별을 철폐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고졸 직장인들이 기를 펼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학벌의 벽에 부딪힌 우리나라 고졸 직장인들에 대해 살펴봤다.

◇고졸 직장인들 “학력이 걸림돌”= 대학에 대한 뜻이 없어 고등학교 졸업 이후 바로 사회생활에 뛰어들었다는 김모(30)씨. 고교 졸업 당시에는 좋은 직장을 위해 몇백만원을 호가하는 등록금을 내며 대학을 다닐 생각이 없었단다.

하지만 김씨는 최근 생각을 바꿨다. 우리 사회에서의 노골적인 고졸 차별 때문이다. 과거 공연 기획일을 했던 김씨는 다른 분야 중소기업으로의 이직을 꾀했으나 학력이 걸림돌이 됐다고 얘기한다. 때문에 현재 김씨는 이직을 포기하고, 회계 관련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김씨는 “당초 마케팅업체에 이직하려고 수없이 많은 이력서를 제출했으나 서류통과가 쉽지 않았다”며 “결국 하고자 하는 일을 바꿔 자격증으로 관련 회사에서 근무할 수 있는 회계 관련 분야로 진로를 바꿨다”고 말했다.

김씨가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직을 결심한 지난 2008년부터 노동부 주관 취업캠프에 들어가 취업 관련 컨설팅도 받고, 영어 및 일본어 등 외국어시험 점수도 높이는 등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김씨가 이력서를 쓸 수 있는 곳조차 제한적이었다. 자격 요건이 ‘대졸’로 한정돼 있기 때문. 김씨가 들어갈 수 있는 곳들은 공장 생산직 혹은 파트타임 경리일 뿐이었다.

김씨는 “내 능력으로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회사라고 생각해 고졸이지만 대졸 채용직에 이력서도 많이 내봤다”며 “하지만 이는 나 만의 자신감일 뿐이었다”고 씁쓸함을 내비쳤다.

이 같은 고졸 직장인들의 애환은 비단 김씨 만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고졸 직장인들 10명 가운데 7명 이상이 학벌 때문에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포털 커리어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졸 직장인 75.3%는 학력이 직장 및 사회생활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며, 이들 중 65.4%는 대학진학을 희망하거나 재학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걸림돌의 종류로는 김씨와 같이 ‘직종 선택이나 이직에 제약이 많다’는 의견이 전체의 51.0%를 차지, 1위를 차지했다.

◇정부와 대기업들 ‘고졸 끌어안기’ 나서= 정부와 대기업들은 이 같은 학벌 우선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고졸 채용을 늘리고 차별을 없애려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7월 한 시중은행을 방문, ‘고졸 채용 확대’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현한 이후 부터다. 대형 은행들을 중심으로 고졸 채용 확대 바람이 불었고 이것이 재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30대 대기업 중 고졸 채용 확대 계획을 발표한 곳이 삼성전자, LG, 포스코, 현대중공업 등 10여 곳에 달한다.

실제 SK그룹은 올 하반기 사상 최대인 5000명을 채용하는 가운데, 고졸 직원들을 1000명 이상 채용할 계획이다. 이는 전체 채용규모의 20%에 해당한다.

하지만 고졸 직장인들은 채용 뿐만 아니라 직장 내 차별 역시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커리어 설문조사 결과 고졸 직장인의 27.7%가 ‘학력에 따른 직장 내 차별이 심하다’고 응답할 정도다. 운좋게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도 대우 등 여러 부분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차별을 느낀다는 얘기다.

고졸 직장인들의 이 같은 우려에 최근 한 대기업이 파격적인 고졸 육성 계획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조선사인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말 채용하는 고졸 정규직 직원부터 7년간(남자 기준, 군복무 기간 포함)의 자체 교육프로그램을 거치면, 월급, 승진, 연수 등 대졸 신입 사원과 동등한 대우를 해준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고졸 직원들을 차별하지 않고 전문가로 육성하겠다는 의도다.

공기업에서도 이 같은 고졸 차별 철폐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내년부터 공기업이나 국민연급공단 등 준정부기관에 입사하는 고졸 학력자들은 입사 4년 후 급여나 승진에서 대졸 직원과 동등한 자격을 가질 수 있다. 고졸 채용 확대 만으로 이뤄졌던 고졸 끌어안기가 이제 차별 철폐 등으로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고졸 직장인들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채용 확대 및 대우 개선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문제인 사회적 인식 전환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커리어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고졸학력자의 취업활성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학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이 절반에 가까운 49.0%에 달했다.

현재 무직인 한 고졸 학력 취업 준비생은 “사회에서 이 같은 문제제기와 분위기 조성은 긍정적이라고 보지만 여전히 고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뒤떨어졌다”면서 “아직도 우리나라에선 고졸이라고 하면 뭔가 뒤떨어졌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또 일부 고졸 직장인들은 최근 고졸 채용 확산 분위기가 장기적이 아닌, 정부의 입김에 못 이겨 끌려가는 재계의 ‘시늉’ 정도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모 양말제조업체에서 근무 중인 고졸 직장인 황모(29)씨는 “최근 정부에서 고졸 채용에 관한 얘기를 자주 해서 대기업들이 이를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것 같다”면서 “실제 고졸 채용을 확대하려면 대기업들보다 중소기업부터 동참해야 파급력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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