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가치가 달러당 사상 최고치를 또다시 위협하면서 일본 경제 전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엔화 가치는 27일(현지시간) 오전 한 때 도쿄외환시장에서 달러당 77.78엔까지 올라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국의 재정위기를 배경으로 투기 세력들이 달러를 팔고 엔을 사면서 엔화 가치가 겉잡을 수 없이 치솟고 있다. 월말을 맞아 수출기업들이 수중의 외화를 엔으로 교환하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엔고 요인이 되고 있다.
엔화 가치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3월17일 기록한 사상 최고치(달러당 76.25엔)에는 못 미치지만 주요 7개국(G7)이 공조 개입한 18일 이후 최고치를 4거래일 연속 갈아치웠다. 전문가들은 28일 중 엔·달러 환율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문제는 엔화 강세는 일본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수출기업들의 해외 이전을 부채질한다는 점이다. 기업들의 상정환율은 달러당 82.59엔이 마지노선이다. 엔화 강세가 지속되면서 한국과 대만 등 해외로 생산 기지를 옮기려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일본은행의 가메자키 나가토시 심의위원은 “계속되는 엔고는 가뜩이나 높은 법인세율과 전력난으로 힘겨워하는 기업의 해외 이전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요사노 가오루 경제재정상 역시 “급격한 엔화 강세는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해외 의존도 높은 일본 기업들의 계획을 방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계에서는 당국의 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게이단렌(경제단체연합)의 요네쿠라 히로마사 회장은 26일 “최근의 엔고는 미국의 디폴트 우려에 따라 달러 매도에서 촉발된 만큼 미국과 일본 등 G7 국가들이 글로벌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공동으로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은 27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시장을 계속 주시할 것”이라며 엔고 동향을 경계했다.
크레디트스위스의 후카야 고지 수석 통화 투자전략가는 “현재 엔고 수준은 개입하기에 적합한 시기”라고 제언했다.
그는 “미국의 채무한도 증액 기한까지 앞으로 1주일 남았지만 여전히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아 달러는 계속 하락할 것”이라며 “일본 당국은 엔 매도를 통한 시장 개입을 꺼리고 있지만 이 즈음에서 당국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시장조사업체인 데이코쿠데이터뱅크 조사에서는 엔고때문에 파산한 기업은 올 상반기(1~6월) 24사에 이르렀다. 이는 전년 동기보다 20% 늘어난 수준이다. 데이코쿠데이터뱅크는 7월 들어서도 엔고로 인해 파산한 기업은 계속 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