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통신은 당연한 관심이지만 보다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잡스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가 전세계 소비자의 일상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회적ㆍ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라는 점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통신의 그의 공적은 전기를 발명한 토머스 에디슨과 맞먹는 것이라고 추켜세웠다.
잡지 ‘잉크’는 1981년 잡스를 가리켜 “이 인물은 비즈니스를 영원히 바꿔버렸다”고 선언했다.
통신에 따르면 잡스가 1986년 당시 CEO였던 존 스컬리와의 권력 싸움에서 지고 애플을 떠났을 때도 회사는 무너지지 않았다.
스컬리는 지난해 웹사이트 ‘컬트오브맥’과의 인터뷰에서 “잡스가 없어도 애플이 몇 년간 잘 나갔던 것은 그의 비전의 힘 덕분”이라고 인정했다.
스컬리는 “내가 재임 중에 완수한 모든 일에 대해 정말로 공적을 인정받아야 하는 것은 잡스”라며 “내가 한 것은 그의 철학에 따르는 것 뿐이었다”고 고백했다.
잡스가 1997년 CEO에 취임했을 당시, 애플은 조만간 파산설이 나도는 등 벼랑 끝 신세였다. 잡스는 그런 애플을 데스크탑형 PC인 ‘iMac(아이맥)’로 회생의 길을 열어줬다.
통신은 잡스의 영향력을 가장 잘 이해하려면 휴대형 음악 재생기 ‘아이팟’이 등장하기 전인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당시 음악이나 영화는 전문점에서 사거나 빌리는 것이 전부였고, 휴대전화는 오로지 통화가 목적, 인터넷 서핑은 컴퓨터로만 가능했다.
그러나 잡스가 차례차례 선보인 아이팟과 콘텐츠 다운로드 사이트인 ‘아이튠스 뮤직스토어’, 휴대전화 ‘아이폰’은 놀라울 정도로 짧은 기간에 관련 업계와 그 배후에 있는 미디어 업계를 패자로 전락시켰다.
여기다 지난해는 태블릿PC ‘아이패드’ 출시로 스마트 기기의 방점을 찍었다.
통신은 잡스를 빌 게이츠 마이크로 소프트(MS) 공동 창업자나 잭 웰치 제너럴 일렉트릭 CEO와 비교하는 것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잡스의 공적은 토머스 에디슨이나 헨리 포드 등 당대 최고의 발명가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것.
스컬리 전 애플 CEO는 잡스의 특유의 완벽주의로 미칠 것 같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다소 미치게 되더라도 상대가 그 정도로 바른 사람이라면 전혀 상관없다”며 잡스의 인격을 묘사했다.
잡스는 애플의 CEO직을 티머시 쿡 최고운영책임자(COO)에게 맡기고 병가에 들어갔다. 일각에서는 잡스가 신경내분비암을 치료하기 스위스로 갔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