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잠재력]반기업 정서·정부규제가 성장 '씨앗' 갉아 먹어

입력 2011-01-12 13:17 수정 2011-01-12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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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얼마 전 분기 영업이익 5조원 돌파라는 실적을 발표하자 언론에서 이를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이 보도를 보고 나는 마음이 아팠다.”

지난해 7월28일 고려대 교우회관에서 열린 ‘고경아카데미’ 조찬강연에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한 말이다.

그는 “‘삼성전자가 5조원 영업이익이라는 기록을 달성한 것이 정작 나와 무슨 상관이 있으랴. 내 주머니는 휑하고 내가 일할 자리는 없는데’라며 비관하는 청년 실업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라고 ‘마음이 아팠던’ 이유를 설명했다. 최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며칠 뒤 사과로 무마되기는 했지만, 보수·진보를 떠나 우리나라 국민의 기업에 대한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바로 ‘반기업 정서’다.

세계인의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

“한국이 부자가 되고 싶다면 ‘배 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참는다’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남 잘되는 꼴은 못 본다’는 의미의 우리나라 속담이자, 2004년 제프리 존스 당시 주한미상공회의소 명예회장이 청와대 직원들의 학습모임에서 한 말이다. 이는 한국인 특유의 ‘시기심에 기인한 반기업 정서’를 꼬집은 것으로, 반기업 정서가 성장 잠재력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었다.

잠재 성장력를 훼손하는 것은 반기업 정서뿐만이 아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지난해 9월 2000억달러 규모의 기업 설비투자 세제혜택 방안을 발표한 것과 대조를 이루는 우리 정부의 임시투자세액 폐지·법인세 인하 철폐 움직임 등의 기업 ‘규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불법행위가 경제 성장률 1%포인트를 갉아 먹고 있다는 연구결과(한국개발연구원·2007년1월 보고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법적인 노사분규도 성장 잠재력을 저하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100년 먹거리가 될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이런 ‘걸림돌’들이 먼저 제거돼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정권의 반기업 정서 조장 = 사실 반기업 정서는 현재와 과거를 불문하고 정부가 앞장서서 조장한 면도 없지 않다. 예를 들면 현 정부도 ‘공정사회’를 부르짖고 있지만 이로 인해 기업들의 이미지는 커다랗게 멍들었다.

문제는 이미지가 크게 훼손당한 기업들 대부분이 ‘월드 플레이어’로서 수출을 통해 한국 경제 성장의 견인차로 활약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세계 무대에서 경쟁을 해야할 기업들이 국내에서 정치적인 배경에 발목을 잡혀 제대로 활동을 못하는 것은 국가의 성장 잠재력을 좀먹고, 결국 국가와 국민에게도 하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금융위기 이후 비틀거리던 한국경제호(號)를 반듯하게 일어서게 한 것에는 기업들의 역할이 컸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들이 사상 최대의 이익을 달성하자, 정치권과 고위관료를 들은 ‘양극화’, ‘웃목-아랫목’, ‘체감경기’ 등의 용어를 써가며 기업들이 돈을 쓰지 않고, 쌓아만 둔다고 질타하며 국민의 반기업 정서를 자극했다. 이때 정부는 기업이 왜 투자를 하지 않는지 현미경, 아니 돋보기를 세세히 들여다 보거나, 개선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금융위기 직후 기업들이 구조조정 등으로 어렵게 얻은 성과에 대한 격려는 오간데 없다. 정권의 이런 습성은 ‘국민들의 부자에 대한 반감’을 이용해 정권의 인기를 높이려는 ‘노림수’도 깔려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위기를 맞게 되면 성장 잠재력 확보에도 치명타다.

◇시대에 역행하는 규제 철폐 = ‘전봇대’를 뽑겠다던 정부의 약속도 역행하고 있다. 최근 3년간 34개 부처의 등록규제 건수는 2008년 5186건에서 2009년 6740건으로 되레 늘어났다. 급기야 2010년에는 7000건을 넘어 섰다. 불합리한 규제를 제거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은 온데간데 없이 오히려 규제만 늘렸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운 대목이다.

지난 20년 동안 유지해 온 임투세액 공제도 존폐 위기를 맞고 있다. 늘어난 국가채무로 세수부족이 예상되자 기업에서 세금을 더 걷겠다는 것.

이는 추자 축소나 지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투자세액 공제율을 1%포인트 내리면 다음해 설비투자가 0.35% 줄어들고, 제도 자체가 폐지되면 다음해 설비투자는 2.5%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법인세율 역시 당초 22%에서 20%로 인하키로 했다가 인하 시점을 2년 유예시키더니 현재는 이마저도 불투명해졌다.

‘포춘’지가 매년 선정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수를 2009년 기준으로 보면, 미국 140개, 일본 68개, 프랑스 40개, 독일 39개, 중국 37개, 한국 14개라는 초라한 성적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일류 기업 도약 막는 불법 노사분규 = 일본의 도요타자동차는 1953년 80일에 이르는 파업으로 심각한 인해 지경에 빠졌다. 불법 파업자 2000여명이 해고되고, 창업자가 동반 사퇴하는 등 존폐위기에까지 몰렸다.

도요타는 이 같은 혹독한 대가를 치루고서야 노사 대립관계를 극복했다. 발전적인 노사관계의 정립은 눈부신 성장세로 이어졌다. 도요타는 사태 후 54년 동안 단 한 건의 노사분규 없이 고용유지와 일자리 창출에 역점을 두면서 연매출 23조9000억원의 세계 1위 자동차 업체로 거듭났다. 낮은 수준의 법질서가 성장 잠재력을 잠식한다는 반증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노사분규에 따른 생산 및 수출 차질액이 연간 5조원을 넘어섰고, 불안한 노사관계로 2009년 국내총생산 대비 외국인직접투자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4.56%에 훨씬 못 미치는 1.08%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지난해 130억달러를 기록, 증가세로 반전하긴 했지만 2000년 153억달러보다 오히려 줄어든 것도 당연한 이치다.

민간경제연구소 한 연구원은 “기업의 투자 확대를 위해 고임금과 높은 부동산 임차비용, 노사 갈등에 따른 고비용 구조 등을 바꿔야 한다”며 “정부는 기업이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기업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관련 법과 제도 개선을 통해 방향을 제시해야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 확충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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