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룰라와 民貴君輕

입력 2011-01-03 11:00 수정 2011-01-03 14:28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방형국 부국장 겸 경제부장
직업병인지 몰라도 언어에 민감한 편이다.

예컨데 “2011년엔 모든 가정에 평화와 행복이 흘러 넘치기를 기원합니다”라는 좋은 뜻의 문장을 놓고도 ‘흘러 넘치기를’ 이 부분이 눈에 거슬려 고민을 거듭한다.“2011년에도 가정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라고 쓴 문장이 좋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過猶不及)는 어려운 말을 인용할 것도 없이‘흘러 넘쳐’ 지나친 것보다는, ‘가득해서’ 그저 보기에 좋은 것이 뒤탈이 없을 것 같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에서다.

흔히들 채우기 보다 비우기가 더 어렵고, 올라가기 보다 내려오기가 더 힘들다고도 말한다. 등산만 해도, 올라갈 때 다치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등산을 마치고 내려올 때 방심하다, 또는 뛰어내려 오다 넘어지거나, 발목을 상하는 사고를 당하는 사례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는 폐품 등을 처리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환경 미화원들과 자리를 함께 하는 것으로 집권 8년의 임기를 마치고, 다시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왔다. 그는 루이스 아니시우 룰라 사 시우바 브라질 전 대통령이다. 노동계를 대표하는 좌파 성향의 인물로 빚더미와 경제위기로 상징됐던 브라질을 세계경제 8대 강국의 반석 위에 올려 놓은 것도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그가 남긴 것은 역시 ‘아름다운 뒷 모습’이었다.

그가 8년 전 처음 대권을 잡았을 때 브라질 재계는 물론 전 세계가 걱정했다. 반시장 정책을 쓸 것으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가난한 노동계급 출신에 노동운동으로 뼈가 굵은 그였기에 재계 등이 우려의 눈길을 보내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시장 친화정책으로 ‘파이를 키우는’ 룰라式 실용정책으로 브라질 경제에 ‘삼바신화’를 이룩해 냈다.

그의 업적은 눈부시다. 2100만명을 빈곤에서 탈출시키고, 3600만명의 새로운 중산층을 만들어 냈다. 취임전 국민소득은 7200달러에서 1만500달러 수준으로 올라갔고, 실업률은 12.3%에서 5.7%로, 물가상승률은 12.5%에서 5.8%로 절반 이하로 내려갔다.

노동계가 룰라의 친시장, 친기업정책에 반발하자 룰라는 짧은 한마디로 노동계의 반발을 잠재웠다. “노동자만을 위했을 때 대통령이 될 수 있었지만, 이제 대통령이 됐다. 나의 어깨에는 노동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브라질 국민 전체가 있다.”

퇴임 직전 지지율 87%로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룰라 전 대통령은 그의 뒤를 잇는 호세포 대통령 취임식이 끝나는 대로 고향 상베르나르로도캄포로 ‘평범한 시민’으로 귀향할 예정이다. 그의 이 같은 성공에는 ‘투사’에서 ‘국민을 떠받드는 대통령’으로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가능했다. 룰라의 ‘아름다운 퇴장’으로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퇴장을 곱씹어 본다.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여주는 대통령이 있었는가.

대학교수들이 2011년 새해의 사자성어로 ‘민귀군경’(民貴君輕)을 꼽았다. 이 사자성어는 맹자 ‘진심’편에서 “백성이 존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고 말한데서 유래했다 한다. 교수들이 ‘民貴君輕’을 새해의 사자성어로 정한 것은 아마도 지난해 2011년 예산안의 날치기 통과를 비롯해 정치권과 기득권 관권 등 힘 있는 자들의 오만을 보고 새해에는 ‘백성을 존중하는 정치’가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을 위한 예산은 깎아버리거나, 아예 삭제한 반면 힘 있는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은 기하급수로 늘리고 퍼준 것에 대한 분노의 표시라며 지나친 해석일까.

가난하고 할벗은 자들의 예산을 빼앗은 것은 약자를 핍박한 것을 넘어 도둑질만도 못한 짓이다. 서울 G20 정상회의를 성공리에 치렀다고, 대한민국이 국제절서의 순종자가 아니라 창조자가 됐다고, 국가의 격이 올라갔다고 떠들던 차에 우리나라 국회에서 벌어진 약자에 대한 핍박행위를 이 사회의 지성 교수들이 준엄하게 꾸짖은 것이다.

룰라가 바로 ‘民貴君輕’을 몸소 실천한 지도자가 아닌가 싶다. 자신을 낮추며, 가벼이 여기고, 백성은 올리고, 귀히 여김으로서 스스로 민귀군경의 본보기가 된 것이다. 또 한번 대통령이 되달라는 국민의 뜻을 따르지 않은 것은 스스로 지나치지 않음이요, 자중자애함을 이를 것이다.

이투데이 독자들께서도 2011년 끝이 아름다운 한해가 되기를 기원하며.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충전 불편한 전기차…그래도 10명 중 7명 "재구매한다" [데이터클립]
  • "'최강야구'도 이걸로 봐요"…숏폼의 인기, 영원할까? [이슈크래커]
  • 신식 선수핑 기지?…공개된 푸바오 방사장 '충격'
  • 육군 훈련병 사망…완전군장 달리기시킨 중대장 신상 확산
  • 박병호, KT 떠난다 '방출 요구'…곧 웨이버 공시 요청할 듯
  • 북한 “정찰 위성 발사 실패”…일본 한때 대피령·미국 “발사 규탄”
  • 세계 6위 AI국 韓 ‘위태’...日에, 인력‧기반시설‧운영환경 뒤처져
  • 4연승으로 치고 올라온 LG, '뛰는 야구'로 SSG 김광현 맞상대 [프로야구 28일 경기 일정]
  • 오늘의 상승종목

  • 05.28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4,659,000
    • -2.05%
    • 이더리움
    • 5,295,000
    • -2.27%
    • 비트코인 캐시
    • 649,000
    • -4.77%
    • 리플
    • 731
    • -1.35%
    • 솔라나
    • 234,300
    • -0.47%
    • 에이다
    • 633
    • -2.16%
    • 이오스
    • 1,122
    • -3.77%
    • 트론
    • 154
    • +0%
    • 스텔라루멘
    • 150
    • -1.96%
    • 비트코인에스브이
    • 87,000
    • -1.86%
    • 체인링크
    • 25,600
    • -0.47%
    • 샌드박스
    • 617
    • -2.99%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