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④ 1등병이 낳은 어글리 재팬

입력 2010-08-27 11:20 수정 2010-08-2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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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일본 대해부

(편집자주: 일본이 총체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중국에 세계 2위 자리를 내준 경제는 회복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다 정국 불안까지 겹치면서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회복 시기가 예상보다 크게 늦춰질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4회에 걸쳐 일본의 정치·경제 ·증시를 분석한다)

<글 싣는 순서>

① 대권 싸움으로 멍드는 日 경제

②‘넘버3’로 전락한 日경제, 출구가 안 보인다

③ 정국 불안에 증시도 출렁...먹구름 짙어져

④ 1등병이 낳은 어글리 재팬

“세계 최대 장수국가,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9000달러 국가, 청결하고 친절한 나라”

일반인들이 흔히 갖고 있는 일본에 대한 인식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본의 내면은 장기 불황과 함께 서서히 곪아가고 있다.

2차 세계 대전 직후 전쟁의 폐허 속에서 세계 2위 경제대국에 오르기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후유증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년간의 경기 악화와 함께 일본이 케인즈식 경기부양책을 여러 번 도입하면서 정치가들은 물론 서민들조차 이런 식의 자극책에 의지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일본이 고도 성장을 이루는데 크게 기여한 규제와 산업장려책은 효력을 잃은 지 오래인데다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던 기술력에서도 더 이상 과거의 영광은 찾아볼 수 없다고 전했다.

WSJ은 이 같은 현상이 정부나 산업계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사회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사회는 그 특유의 복잡성 때문에 글로벌화에 뒤쳐지면서 지나치게 경직된 양상을 보이게 됐다고 WSJ은 설명했다. 이른바 ‘갈라파고스 증후군’이다.

갈라파고스 증후군은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제조업이 일본 시장에만 주력하기를 고집한 결과 세계 시장에서 고립되고 있는 현상을 일컫는 말로 마치 남태평양의 갈라파고스 제도가 육지로부터 고립돼 고유한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과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미국 하버드대학의 학자인 에즈라 보겔 교수가 ‘재팬 애즈 넘버원(Japan as Number one, 1등 일본)’이라는 저서를 내놓을 정도로 만연했던 1등 노이로제도 일본의 갈라파고스 증후군을 부채질했다.

이 같은 일본의 1등 노이로제는 상상도 하지 못한 사회적 폐해를 낳았다.

최근의 대표적인 예가 의문의 고령자 실종 사태다. 장수대국이라는 명성을 갖고 있는 일본에서 최근 100세 이상 고령자들의 행방이 잇따라 묘연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밝혀진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30년 전에 숨진 111세 노인의 가족들이 노령연금을 계속 받기 위해 미이라 상태로 방치하며 사망신고를 하지 않았던 것.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잇따르자 각 자치단체는 뒤늦게 100세 이상 고령자의 생존 여부를 긴급 확인하는데 급급했다.

일본은 지난해 100세 이상 노인이 4만여명으로 지난 10년간 3.5배나 늘었다며 세계 제1의 장수국이라고 떠들었지만 이는 결국 1등병이 만들어낸 일그러진 사회의 일면이다.

일본의 1등병이 만들어낸 폐해는 이뿐이 아니다.

바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의 등장이다.

지난 19일 출판된 영국 옥스포드대 출판국의 영어사전에는 ‘hikikomori’라는 단어가 새로 수록됐다.

1998년부터 출판된 옥스포드대 영어사전은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 새로운 단어를 수록하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이번이 3판째다.

20억개의 후보 가운데서 선택된 2000개의 단어는 인터넷 보급이나 금융위기, 지구온난화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 사이에 ‘hikikomori’가 포함된 것은 그만큼 히키코모리 문제가 일본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파장이 컸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사전에서는 ‘hikikomori’에 대해 “젊은 남성이 사회와의 관계를 끊는 현상”이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컴퓨터 게임에 빠져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일본인 청년이 이른바 묻지마 살인사건을 저지르는 등 히키코모리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치부되고 있다.

결국 히키코모리의 등장은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만연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 오로지 1등만을 추구해온 결과로, 그 대열에 끼지 못한 패배주의에 물든 일본 젊은이들의 자화상을 대표한다.

한편 일본의 전통 스포츠인 스모 역시 도박 스캔들로 위기를 맞고 있다.

수억 엔에 달하는 야구 도박 판돈의 일부가 폭력조직으로 흘러가면서 스모계가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100년 이상 전통을 이어오며 서민들과 희노애락을 함께한 스모가 마약과 폭행에 이어 조직폭력배까지 개입된 도박파문으로 얼룩진 사실에 서민들은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물질만능주의 가운데서 장기침체에 따른 만연한 패배주의. 일본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자리를 중국에 빼앗길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WSJ은 이런 가운데서도 일본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일본인은 충격을 받았을 때 최고의 힘을 발휘한다며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지위를 놓친데 대한 충격이 일본인들에 채찍을 가해 창조적인 에너지를 발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WSJ은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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