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산업계, 갈라파고스 증후군을 벗어라

입력 2010-06-0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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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상주의 심화, 국제 시장에서 낙오 위기

"콧대를 낮춰라. 더 이상 일본은 최고가 아니다”

"외관도 신경 써라. 기술력만으로 승부할 시기는 끝났다”

"새 분야를 공략하라. 더 이상 설 곳이 없다”

‘모노즈쿠리(장인정신이 깃든 제품 만들기)’와 ‘친환경’을 경쟁력으로 세계 시장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했던 일본이 한국 등 신흥 메이커들에 그 자리를 내어주면서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본 산업계는 한때 TV와 LED, 하이브리드 차, 태양전지 등 혁신 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수도 없이 거머 쥐었다. 그러나 기술력을 과신한 나머지 시대에 뒤떨어진 제품과 신흥 메이커들의 대두를 등한시하면서 자신들의 특기 영역에서조차 낙오자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최신호에서 일본 제조업계의 현주소를 평가하고 치열한 글로벌 경쟁 가운데서 일본의 제조업계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향을 제시했다.

닛케이비즈니스에 따르면 지난달 11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개막한 국제건축ㆍ조명박람회 ‘라이팅+빌딩 2010’에서 대세는 ‘LED’였다. 2008년 박람회 때만해도 회장을 가득 매웠던 백열전구는 뒷전으로 밀려난 것이다. 백열전구 일색이었던 일본 기업들은 잔뚝 주눅이 들었다.

한편 프랑스 파리의 대형 가전판매점 달티의 중앙에는 삼성전자의 LCD TV가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소니나 파나소닉의 제품이 있어야 할 자리였다.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백라이트에 기존 형광관이 아닌 LED를 사용한 ‘LED TV’라는 점이었다.

이 같은 판도 변화는 수치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났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치의 조사 결과, 2009년 세계 TV 출하는 삼성전자가 전년 대비 0.2% 증가한 23.3%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LG전자는 전년보다 2% 늘어난 12.4%로 TV의 대명사로 불리던 소니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최상위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백라이트에 LED를 채용해 화면을 슬림화하고 절전 성능을 높인 것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조연으로 밀려난 것은 가전업계만이 아니다.

중국 신흥 자동차 메이커인 BYD는 지난 3월 31일부터 충전식 하이브리드 차를 일반에 판매하기 시작했고 올해 안에 전기차도 출시할 예정이다. 미국 벤처업체인 테슬라도 지난달부터 고속 전기차 '로드스터'를 일본에서 판매키로 했다.

미쓰비시가 겨우 일반에 전기차를 선보이고 닛산이 올해 12월 전기차를 본격 출시할 예정인 가운데 BYD와 테슬라의 반격은 일본 메이커에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일본 기업들은 강점인 신에너지 영역에서도 밀려나고 있다.

태양전지의 경우 2005년 세계 시장 점유율은 5위권에 일본 기업이 4개나 들 정도였다. 그러나 신흥업체들이 급부상하면서 2008년 상위 5위권에 이름을 올린 일본 기업은 샤프 하나뿐이었다.

1973년 제1차 석유쇼크 여파로 절전제품의 새 역사를 쓰고 거기다 모노즈쿠리 정신까지 더해지면서 세계시장에서 부러울 것 없던 일본 제조업의 명성이 설 곳을 잃고 있다.

닛케이비즈니스는 이에 대한 가장 큰 이유를 일본 산업계의 ‘갈라파고스 증후군’에서 찾았다.

갈라파고스 증후군은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제조업이 일본 시장에만 주력하기를 고집한 결과 세계 시장에서 고립되고 있는 현상을 일컫는 말로 마치 남태평양의 갈라파고스 제도가 육지로부터 고립돼 고유한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과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닛케이비즈니스는 '세계 최초' '최첨단'이라는 자만심에 사로잡혀 일본 산업계도 갈라파고스 증후군이 만연해 있다며 기업의 예를 들어 몇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닛케이비즈니스에 따르면 일본 최대 급탕기 메이커인 린나이의 경우 고정관념을 버리고 철저한 현지화로 세계 시장 진출에 성공했다.

린나이는 2009년 3월 매출 가운데 해외 시장 비중이 34.6%였다. 미국과 호주 한국 중국에서 순간식급탕기 판매가 호조를 보인 덕분이었다.

그러나 린나이가 첫 출발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해외 고객들은 급탕기가 작아 물이 잘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과 순간식급탕기가 도입되면 가스 판매량이 줄 것이라는 가스회사의 반발에 부딪쳤다.

일본에서 인기높은 순간식급탕기가 해외에서 찬밥신세가 되자 린나이는 일본에서의 방식을 과감하게 접었다. 제품 판매는 가스회사가 아닌 수도배관공사 업체에 맡기고 시공업자와 서비스 사원에 대한 교육에 주력했다.

그 결과 기존의 저장식급탕기보다 에너지 효율은 25% 정도 개선됐고 연료비는 전기탱크식에 비해 연간 270달러 정도, 가스탱크식에 비해서는 60달러 정도 낮출 수 있었다.

한편 닛케이비즈니스는 기술력만을 중시하는 일본 제조업체에 외관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파나소닉의 경우 칠전팔기 끝에 냉장고 세탁기 등 백색가전의 유럽 진출에 성공했다. 파나소닉의 애를 태운 것은 시대와 동떨어진 디자인이었다.

지난 2007년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해 프랑스 유통체인 바이어에 품평을 의뢰했을 당시 절전 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기능과 디자인 면에서는 "싸보인다”는 혹평을 받았다.

수 차례의 시행착오와 시장조사를 거친 파나소닉은 2009년 3월 출시한 제품이 혹평이 아닌 호평을 받고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지난해 유럽 조명시장에 첫 발을 내디딘 도시바는 현재 제로에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20%로 끌어올린다는 당찬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도시바는 조명시장에서 브랜드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문전박대 당한 설움을 딛고 현지를 기반으로 한 영업을 강화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도시바는 유럽 조명시장에서 지명도를 높이기 위해 조명 전문업체인 필립스 출신 간부를 기용해 영업체제를 강화했다. 또 시장조사를 실시해 유럽 시장 전용 제품을 출시하는 등 유럽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추는데 주력했다.

그 결과 올 3월에 몇번이나 퇴짜를 놨던 전기자재 대기업 렉셀과 거래를 트는데 성공했다.

닛케이비즈니스는 기술은 수치화할 수 있지만 디자인이나 정서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에 현지의 기호나 시장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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