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중산층 포괄 공공임대 확대
매입·기업형 임대도 대안 부상
전세 없는 해외 주요국도 주거난
보조금·공공주택으로 부담 완화

전세 축소가 기정사실화되면서 정부도 새로운 주거 사다리 구축을 도모하고 있다. 현재로선 공공·민간 임대주택을 통해 안정적으로 거주하면서 자산을 축적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전세 제도가 없는 해외 주요국들도 주거비 상승이라는 공통 과제에 직면한 가운데 공공주택 공급과 비용 보조 등을 통해 안정을 꾀하고 있다.
17일 KB부동산에 따르면 5월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50.1%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 들어서도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세가율은 매매가격 대비 전세보증금 비율을 의미한다. 매매가격이 10억원인 아파트의 전세가격이 7억원이면 전세가율은 70%다.
전세가율은 전세를 끼고 집을 매입할 때 필요한 자기자본 규모를 보여주는 지표다. 전세가율이 낮을수록 집을 사기 위해 집주인이 직접 마련해야 하는 자금이 늘어난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2016년 70%를 웃돌아 적은 자본으로도 주택 매입이 가능했지만, 최근에는 50%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이른바 '갭투자'를 통한 자산 형성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전세보증금을 활용해 적은 자기자본으로 주택을 매입하던 경로가 좁아진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후 싱가포르 공공주택(HDB) 모델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국가가 공급하는 양질의 임대주택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전세를 활용한 갭투자 대신 안정적인 임대주택에 거주하며 자산을 축적한 뒤 주택 구매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이에 공공 중심 공급 확대를 강조하며 임대주택을 통한 주거 안정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단순히 취약계층 지원에 머물지 않고 중산층까지 포괄하는 임대주택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표적으로 무주택자가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중산층 대상 공공임대 공급 확대가 추진되고 있다. 경기도의 기본주택과 유사하게 역세권에 고품질 임대주택을 공급해 주거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내년부터 재건축 사업 과정에서 공급되는 임대주택에도 전용면적 80㎡ 안팎의 중형 평형을 도입할 계획이다. 3기 신도시에서도 신혼부부와 중산층 수요를 고려한 중형 임대주택 공급이 추진된다.
기존 주택이나 신축 주택을 LH가 매입해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급하는 매입임대주택도 확대된다. 정부는 지난해 '9·7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통해 향후 5년간 신축 매입임대주택 14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지난달에는 2027년까지 수도권에 매입임대주택 9만 가구를 공급하고 이 가운데 6만6000가구 이상을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규제지역에 집중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비아파트 공급 확대도 추진하고 있다. 빌라(연립·다세대주택), 도시형생활주택, 오피스텔 등은 상대적으로 공급 기간이 짧아 단기간에 주거 공급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기업형 임대주택 역시 대안으로 거론된다. 기업이 대규모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전문적으로 운영·관리하는 방식으로, 국내에서는 KT에스테이트와 SK디앤디 등이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임차인은 안정적인 계약과 향상된 주거 서비스를 누릴 수 있고, 정부는 민간 자본을 활용해 공급을 확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세 제도가 없는 해외 선진국들도 주거비 부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가데이터처 '2025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RIR)은 15.8% 수준이다. 반면 OECD 주요 국가들은 20% 안팎에 집중돼 있으며 핀란드·노르웨이·스웨덴 등 일부 북유럽 국가는 30% 안팎까지 올라 주거비 부담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높은 주거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각국은 청년과 무주택자를 위한 다양한 주거 지원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LH 토지주택연구원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현 정부가 주택 공급을 위해 주목하는 싱가포르의 경우 공공주택 분양과 중앙연금기금(CPF)을 연계한 저리 대출 제도를 통해 청년층의 내 집 마련을 돕는다. 특히 싱가포르의 공공주택은 99년 기한 영구 임대주택으로 사실상 내 집인데다, 위치나 전반적인 질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년 의무 거주 기간이 지난 후 매각도 가능하다.
유럽 국가 중 주거 제도가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평가받는 독일 역시 지방정부 보조금과 민간 건설사의 협력을 바탕으로 사회주택을 공급하고 안정적인 임대료 체계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프랑스와 일본은 비용 지원을 통해 주거비 부담을 직접 낮추는 방식에 무게를 두고 있다. 프랑스는 소득 수준에 따라 주거비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며, 일본은 지방자치단체별로 청년·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월세 지원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주택 구매 기회를 확대하는 정책도 눈에 띈다. 영국은 '퍼스트 홈 스킴(First Homes Scheme)'을 통해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에게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주택을 공급한다. 미국과 네덜란드에서는 민간 주도의 공유주거(Co-Living) 모델이 확산하고 있다. 저렴한 임대료와 공동 커뮤니티 공간을 결합해 청년층의 주거비 부담을 줄이고 사회적 교류까지 지원하는 방식이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거 사다리 약화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우리 정부가 전세 대책으로 추진하는 임대주택의 본질은 장기 사업인 만큼, 과도한 물량 목표에서 벗어나 성공 사업 모델을 만들고 운영하는 데 목표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