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축구대표팀의 경기장 밖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월드컵 때마다 선수단을 따라다니며 언론의 관심을 받았던 선수 가족과 연인들이 이번 대회에서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다. 미국 내 장거리 이동과 긴 대회 기간, 체류 비용이 부담으로 작용한 데다 사생활 노출을 꺼리는 선수 가족이 늘어난 영향이다.
15일(한국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토마스 투헬 감독이 이끄는 잉글랜드 대표팀은 크로아티아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를 앞두고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조별리그 기간 가족과 만날 수 있는 선수는 전체 선수단의 절반가량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상당수 선수 가족은 대회 초반부터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 관계자들은 선수 가족 동행 규모가 줄어든 배경으로 복잡한 이동 동선과 긴 대회 기간, 비용 부담을 꼽았다. 4년 전 카타르 월드컵과는 상황이 다르다. 당시 상당수 선수 가족은 12월 한 달 동안 두바이에 머물거나 도하 외곽의 크루즈 객실을 빌려 대회를 함께했다. 개최지가 상대적으로 좁아 이동 부담도 크지 않았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은 개최 범위가 훨씬 넓다. 잉글랜드의 조별리그 경기도 댈러스ㆍ보스턴ㆍ뉴욕 뉴저지 스타디움 등 여러 곳에서 열린다. 가족들이 한 도시에 머물며 선수단을 따라다니기 어렵고, 항공편과 숙박비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있는 가족에게는 일정 조율도 쉽지 않다.
대표팀 출국 뒤 미국에 들어간 가족 선발대는 마이애미에 거점을 뒀다. 잉글랜드 대표팀이 플로리다주 팜비치 가든스에서 사전 훈련 캠프를 운영하는 동안 선수들의 쉬는 날에 맞춰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조별리그 기간에도 가족들은 대표팀 베이스캠프가 있는 캔자스시티에 상주하기보다 플로리다에 머물다가 경기 당일 개최 도시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가디언은 잉글랜드가 조별리그를 통과해 토너먼트에 진출하면 더 많은 가족이 미국을 찾을 것으로 전망했다. 가족 동행이 당연한 일이 아니라 일정과 비용, 자녀 문제를 함께 따져야 하는 선택지가 된 셈이다.

투헬 감독은 선수들이 경기 직후 경기장에서 가족과 잠시 만나는 것은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전임 개러스 사우스게이트 감독 체제에서도 경기 뒤 가족 만남은 허용됐다. 다만 투헬 감독은 카타르 월드컵 때와 달리 경기 다음 날 가족을 다시 만나는 것은 제한할 방침이다.
이 결정도 선수 가족들이 캔자스시티에 오래 머물지 않고 마이애미로 돌아가는 이유 중 하나다. 선수들은 경기 뒤 캔자스시티 스워프 사커 빌리지에 마련된 대표팀 베이스캠프로 복귀한다. 경기 다음 날에는 가족과 따로 시간을 보내기보다 회복과 훈련 일정에 집중한다.
현대 축구에서 대회 운영은 경기력 관리에만 머물지 않는다. 장거리 이동, 휴식 시간, 가족 면회, 사생활 노출까지 선수단 관리의 일부가 됐다. 투헬 감독은 가족과의 접촉을 완전히 막지는 않되, 경기 준비와 회복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조정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분위기는 2006년 독일 월드컵 때와 뚜렷하게 대비된다. 당시 잉글랜드 선수들의 아내와 여자친구를 뜻하는 ‘왝스(WAGsㆍWives and Girlfriends)’는 영국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독일 휴양 도시 바덴바덴은 선수 가족과 연인을 따라다니는 사진기자들로 붐볐다.
빅토리아 베컴과 셰릴 콜, 콜린 루니 등은 잉글랜드 대표팀 경기만큼 자주 보도됐다. 이들의 외출과 쇼핑 등의 이야기는 대회 밖 화제가 됐다. 일부 일화는 과장됐을 가능성이 있지만, 당시 선수 가족과 연인이 월드컵 보도의 주요 소재였던 것은 분명하다.
20년이 지난 이번 대회에서는 선수 가족과 연인이 대중의 시선을 적극적으로 끌지 않는다. 해리 케인(바이에른 뮌헨)의 아내 케이티 굿랜드는 케인의 선수 생활 내내 비교적 조용한 행보를 보여 왔다. 이런 태도는 잉글랜드 선수단 전반에서도 나타난다.
선수 파트너들의 생활 방식도 달라졌다. 부카요 사카(아스널)의 여자친구 톨라미 벤슨은 광고 분야에서 일한다. 에베레치 에제(아스널)의 아내 나이마 코빈은 중환자실 간호사다. 엘리엇 앤더슨(노팅엄 포레스트)의 여자친구는 법률 보조원으로 일하고, 리스 제임스(첼시)의 파트너 미아 플로런스 매클레나건은 법학 학위를 마쳤다.
과거에는 선수 가족이 스타 선수 못지않은 볼거리로 소비됐다. 이제는 각자의 직업과 사생활을 가진 개인으로 남으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대회가 길어지고 이동 비용이 커진 현실도 이런 변화를 앞당겼다.
북중미 월드컵의 잉글랜드 캠프는 축구장 밖에서도 달라진 시대를 보여준다. 선수 가족은 더 신중하게 이동하고, 감독은 가족 만남을 세밀하게 조정한다. 언론의 관심도 과거처럼 선수 연인의 일거수일투족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월드컵은 여전히 거대한 스포츠 행사지만, 그 주변 문화는 더 조용하고 현실적인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