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해운 강국 대한민국의 대표 기술기관인 한국선급(KR)이 인공지능(AI)을 앞세워 대전환에 나선다.
선박 검사와 인증 업무를 수행하는 전통적 선급(Classification Society)의 역할을 넘어 AI 기반 데이터 플랫폼 기관으로 진화하겠다는 선언이다.
한국선급은 9일 부산 본사에서 한국마이크로소프트와 'AI·AX 기반 디지털 선급 및 조선해양 혁신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약은 단순한 디지털화(DX)를 넘어 조선해양 산업 전반의 AI 전환(AX)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양 기관은 △AI·데이터 중심 선급 업무 혁신 △조선해양 산업 AI 전환 △AI 기반 선박 데이터센터 구축 △신규 디지털 서비스 및 비즈니스 모델 개발 등을 공동 추진하기로 했다.
이번 협력은 지난 2023년 체결된 디지털 선급 전환 협약의 후속 단계다.
당시 클라우드 전환과 협업 플랫폼 구축이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생성형 AI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체계를 선급 업무 전반에 적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약을 한국선급이 단순 인증기관을 넘어 조선해양 산업의 데이터 허브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로 평가하고 있다.
실제 선박 한 척에서는 운항 데이터와 엔진 정보, 탄소배출량, 연료 소비량, 항해 정보 등 방대한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생성된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 강화와 자율운항 선박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앞으로는 선박 자체보다 데이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선급은 이를 위해 자체적으로 수립한 ‘AI Grand Plan’을 바탕으로 생성형 AI 활용을 확대할 계획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AI 플랫폼과 Copilot 기술을 활용해 선급 업무 자동화는 물론 검사·심사·기술서비스의 지능화를 추진한다.
특히 AI Agent 개발을 통해 반복적 행정 업무를 줄이고 기술 검토와 인증 과정의 정확성과 생산성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주목되는 부분은 ‘AI 기반 선박 데이터센터’ 구축이다.
한국선급은 선박 운항 데이터와 해상 환경 데이터를 통합 분석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해 조선소와 해운사, 기자재 업체들이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디지털 서비스를 개발할 계획이다.
조선업계에서는 향후 선박 설계 최적화와 탄소중립 대응, 예지정비(Predictive Maintenance), 자율운항 기술 등 미래 선박 산업의 핵심 경쟁력이 데이터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부산이 세계적인 조선·해양산업 집적지라는 점도 주목된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삼성중공업을 비롯한 국내 조선산업 생태계와 한국선급, 한국해양진흥공사,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등 해양기관들이 집적된 부산이 AI 기반 조선해양 산업 전환의 중심지로 부상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영석 한국선급 회장은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력을 통해 AI 기술을 선급 업무와 검사·기술서비스 전반에 접목함으로써 디지털 선급 전환을 가속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AI 중심 선박 데이터센터 구축과 신규 디지털 서비스 창출을 통해 조선해양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조원우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대표는 “신뢰할 수 있는 AI와 클라우드 기술을 기반으로 국내 산업의 AI 전환을 지원하고 있다”며 “한국선급이 생성형 AI와 데이터 기반 혁신을 통해 조선해양 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선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조선업계에서는 이번 협약을 두고 단순한 기술 제휴가 아니라 "선박을 만드는 산업에서 데이터를 만드는 산업으로의 전환"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고 있다.
부산에 본사를 둔 한국선급이 AI 시대 조선해양 산업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