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의 영감을 줬던 우상과의 꿈꿔왔던 만남. 찡한 울림의 장면을 그리며 기대감도 상당했는데요. 하지만 그만큼 실망의 골도 깊었습니다. 감동으로 남아야 할 팬심은 예상치 못한 논란으로 번졌죠.
13일 방송된 MBC 장수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이하 나혼산)는 오랜만에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았는데요. 무지개 모임의 터줏대감인 기안84가 자신의 평생 우상이자 일본 공포 만화의 거장인 이토 준지를 만나기 위해 도쿄를 찾았기 때문이죠. 동료 방송인 강남의 도움으로 성사된 만남에서 기안84가 보인 설렘과 존경심은 시청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됐고 해당 회차는 분당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방송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예상치 못한 비판이 이어졌죠. 논란의 중심에는 기안84가 방문한 일본 대형 출판사 ‘소학관(쇼가쿠칸)’이 있었습니다. 방송에서는 해당 출판사를 ‘도라에몽’, ‘이누야샤’, ‘명탐정 코난’ 등 유명 만화를 배출한 일본의 대표적 출판사로 소개하며 건물 외관과 내부를 여러 차례 비췄는데요.
문제는 시점이었죠. 일본에서는 소학관의 아동 성범죄 은폐 의혹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 불거진 상황이었습니다.

소학관 논란의 발단은 플랫폼 작가 사건이었는데요. 소학관에서 작품을 연재하던 야마모토 쇼이치는 과거 아동매춘·아동포르노금지법 위반 사건으로 2020년 체포된 인물입니다. 2016년부터 약 4년간 미성년 제자를 상대로 지속적인 성착취를 가한 혐의인데요. 이후 2022년 해당 작가가 다른 필명인 ‘이치로 하지메’로 플랫폼에 복귀해 활동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일본에서 큰 파문이 일었죠.
이 사실은 최근 피해자 측 폭로와 민사 재판 과정에서 알려지며 사회적 논란으로 번졌는데요. 독자들 사이에서는 불매 움직임이 일었고 일부 작가들도 플랫폼의 운영 방식과 윤리 문제를 지적하며 작품 공개 중단이나 철수 가능성을 언급했죠. ‘원펀맨’의 작가 ONE 등 일부 작가들은 해당 플랫폼에서 작품을 내리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소학관은 공식 입장을 통해 편집부 대응과 관리 체계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사과에 나섰죠. 사건 경위와 내부 책임을 조사하기 위한 외부 조사위원회 설치 등을 발표했는데요. 하지만 “작가가 가명을 쓴 사실은 몰랐다”는 식의 꼬리 자르기식 해명이 불을 붙였고요. 소학관의 담당 편집자가 합의 자리에 직접 동석해 합의금을 제시했다는 피해자의 폭로로 분위기는 더 싸늘해져 갔죠.
이런 가운데 ‘나혼산’ 속 소학관 풍경이 세상 다른 분위기로 논란이 된 겁니다.

방송에서 사용된 자료 화면 역시 논란을 키웠는데요. 제작진은 화면 위로 “‘도라에몽’, ‘이누야샤’, ‘명탐정 코난’ 등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유명 만화를 배출한 일본의 대표적이고 유서 깊은 출판사”라는 긍정적인 자막을 달았습니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는데요. 출판사의 대표 작품을 소개하는 자료 화면에서 극장판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절해의 탐정’의 일본 포스터가 그대로 방송에 등장했기 때문이죠. 이 작품은 해상자위대 이지스함을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인데요. 과거 국내에서는 욱일기 등장과 자위대 묘사 문제로 논란이 제기된 바 있으며 한국에서는 정식 극장 개봉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 논란이 이어지던 출판사와 국내에서 역사적 민감성이 거론된 콘텐츠가 동시에 노출되면서 제작진의 사전 검증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이어졌죠.

시청자들의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제작진은 VOD와 OTT 다시보기 영상에서 소학관 관련 장면과 자료 화면 일부를 수정했습니다.
출판사 건물 외관과 소개 자막, 코난 포스터 등이 삭제되거나 다른 장면으로 대체됐는데요. 다만 이 과정에서 공식적인 사과나 별도의 설명은 나오지 않아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아쉬움을 표하는 반응도 이어졌죠.

최근 프로그램 상황도 논란 확산의 배경으로 거론되는데요. 지난해 말 박나래가 개인 논란 이후 프로그램 출연을 중단했고 이후 샤이니 키 역시 출연을 중단하면서 프로그램 핵심 멤버 구성이 크게 변화했죠. 장기간 이어져 온 출연자 간 서사가 약해지면서 시청률 역시 예전만큼의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제작진이 야심 차게 준비한 ‘기안84와 이토 준지의 만남’ 에피소드가 화제성 대신 논란을 불러온 점은 프로그램 입장에서도 아쉬운 대목으로 평가됩니다.
무엇보다 기안84의 진심 어린 팬심까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점이 아쉬운데요. 수십 년간 동경해 온 만화가를 만나 감격하는 기안84의 감동적인 순간도 제작진의 검증 부족 논란 속에 빛이 바랬죠.
장수 예능 프로그램이 유지되는 힘은 결국 시청자 신뢰인데요. 이번 논란을 계기로 콘텐츠 검증과 제작 과정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뼈아픈 이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