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970만 관객을 돌파하며 '1000만 영화'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다. 개봉 이후 꾸준한 입소문을 타며 관객을 끌어모은 이 작품은 단순한 흥행을 넘어 '단종 열풍'까지 만들어냈다. 설 연휴 이후에도 관객 감소 없이 오히려 관람세가 유지되면서, 장항준 감독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1000만 기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6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왕과 사는 남자'는 전날 하루 18만548명이 관람하며 누적 관객 수 977만8000명이 됐다. 평일, 주말 구분 없이 꾸준한 관객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개봉 3~4주차 이후 관객 수가 급감하는 것과 달리, 오히려 입소문을 통해 관람층이 확장되는 이례적인 흥행 패턴을 보이고 있다.
흥행의 가장 큰 요인으로는 이야기의 힘이 꼽힌다. '왕과 사는 남자'는 조선 6대 왕 단종이 폐위된 뒤 강원도 영월 청령포에서 보내는 마지막 시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기존 사극이 계유정난이나 권력 암투 같은 정치적 사건에 집중했다면, '왕과 사는 남자'는 권력에서 밀려난 어린 왕과 평범한 민초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유배지 촌장 엄흥도와 단종 사이의 유사 부자 관계와 우정은 역사 기록에 없는 설정이지만, 영화적 상상력을 통해 강한 감정선을 만들어냈다.
'아는 사람의 모르는 이야기'라는 설정 역시 관객의 흥미를 끌었다. 대부분의 한국 관객에게 단종은 익숙한 역사적 인물이지만, 유배 기간의 구체적인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왕과 사는 남자'는 바로 그 틈을 파고들었다. 단종의 비극적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관객들이기에, 영화 속 일상의 순간들이 더 큰 감정적 몰입을 만들어냈다는 분석이다.
연기 역시 흥행의 핵심 요소다. 촌장 엄흥도 역의 유해진은 특유의 코믹과 정극을 오가는 연기로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았다. 한명회 역의 유지태와 궁녀 매화 역의 전미도 등 베테랑 배우들이 서사를 안정적으로 받쳐주며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무엇보다 단종 역을 맡은 박지훈의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처연한 눈빛과 섬세한 감정 연기를 통해 비극적 왕의 이미지를 설득력 있게 구현하며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젊은 관객층의 반응도 흥행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소셜미디어(SNS)에서는 '단종 오빠'라는 별명까지 등장하며 10~20대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어린 나이에 권력 싸움의 희생양이 된 단종의 서사가 현대적 관점에서 '기성세대 정치에 희생된 청춘'으로 해석되며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영화 세계관에 몰입한 팬들이 2차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단종의 무덤인 영월 장릉을 방문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의 여운을 이어가고 있다.
흥행 타이밍 역시 절묘했다. 설 연휴 직전에 개봉해 가족 단위 관객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고, 겨울방학과 '문화가 있는 날', 3·1절 연휴까지 이어지며 꾸준한 관람 수요를 확보했다. 폭력적이거나 자극적인 장면이 거의 없는 '무해한' 사극이라는 점도 전 세대 관객이 함께 보기 좋은 작품이라는 인식을 만들었다.
여기에 장 감독에 대한 대중적 호감도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방송에서 보여준 유쾌하고 낙천적인 이미지 덕분에 영화에 대한 친근한 관심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결국 '왕과 사는 남자'의 성공은 화려한 연출이나 거대한 스케일보다는 이야기와 감정의 힘에서 비롯됐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초반에는 유머로 관객의 긴장을 풀어주고, 후반부에는 단종의 비극적 운명으로 눈물을 자아내는 구조가 전형적인 흥행 공식에 충실하게 작동했다는 것이다.
1000만 관객 돌파가 확실시되면서 극장가에서는 또 하나의 기록이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왕과 사는 남자'는 사극 장르가 여전히 한국 관객에게 강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동시에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 속 인물을 새로운 시선으로 풀어낼 때 어떤 흥행 가능성이 열리는지도 보여준 사례로 남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