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4년제 대학 136곳이 등록금을 인상했다. 정부는 2010년부터 등록금 인상 대학에 국가 장학금 일부를 지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학 등록금을 통제해 왔다. 인상 쓰나미는 장기간의 강제 동결이 자초한 후폭풍이다. 계엄·탄핵 여파로 정부가 사실상 무력화된 것이 전국 대학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나 마찬가지였던 등록금 숙제를 풀 절호의 기회가 됐다는 측면도 있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29일 발표한 ‘2025년 4월 대학정보공시 분석 결과’를 보면 올해 4년제 일반 및 교육대학 193개교 중 136개교(70.5%)가 등록금을 인상했고, 57개교가 등록금을 동결했다. 4년제 대학 재학생 한 명이 1년간 부담하는 평균 등록금은 710만 원이다. 지난해 682만 원보다 27만7000원(4.1%) 상승했다. 올해 인상 법정 상한선은 5.49%다. 대다수 대학이 4% 이상 인상을 택했다.
앞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등록금 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등록금 인상 이슈가 불거지자, 종전과 같은 방식으로 개입한 것이다. 전국 대학생과 학부모들의 부담이 가중될 것을 우려한 선의의 개입이니 일방적으로 탓하기는 어렵다. 반추해야 할 선례도 있다. 1989년 대학등록금 자율화 조치로 상당수 사립대가 등록금을 대폭 올리면서 사회적 문제가 됐다. ‘반값 등록금’ 구호도 쏟아졌다. 당시 홍역을 치른 정부가 그 이후 좌우 이념을 떠나 하나같이 등록금 인상에 빗장을 건 역사적 배경이다. 정부는 2010년 고등교육법을 개정해 최근 3년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의 1.5배를 초과해 등록금을 올릴 수 없도록 상한선도 마련했다.
선의의 개입이 반드시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오히려 정반대가 흔하다. 특히 포퓰리즘 정책은 재앙적 결과를 빚기 일쑤다. 대학 등록금을 장기간 동결한 것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부작용과 역기능을 빚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영어 유치원비 월평균 비용은 154만5000원이다. 연간으로 치면 우리 대학 등록금은 영어 유치원비의 절반에 못 미치는 것이다. 상식과 통념에 부합하나. 인건비·물가 상승 등의 압박에 등록금 동결까지 더해져 대다수 대학 재정은 임계점을 넘은 지 이미 오래다. 시설 투자와 교수 채용 여력이 있을 까닭이 없다. 올해 등록금을 4.85% 인상한 서강대 등록금심의위원회는 “등록금 동결로 대학 시설 수준이 초·중·고 수준보다 못하다”고 토로했다.
대학의 국제 경쟁력도 하락세다. 영국 대학평가기관 THE가 발표하는 세계 대학 순위에서 서울대는 2009년 47위에서 2025년 62위로 떨어졌다. KAIST도 같은 기간 69위에서 82위로 낮아졌다. 재정이 열악해 과감한 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하니 당연한 결과다. 국가 미래가 걸린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 등 첨단 분야에 어느 대학이 큰돈을 쓸 수 있나. 이제 대학교육의 질과 더불어 국가 경쟁력도 생각해야 한다. 주요국의 경쟁 대학들에 비해 낮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는 대학생들이야말로 가장 큰 피해자라는 사실을 깊이 되새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