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어느 프로골퍼의 정·재계 교유기

입력 2025-04-23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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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와 경제 다리놓은 한국골프史
‘편법 vs 근면’ 산업화 과정 보여줘
‘정치 퇴행·경제 성공’ 결과로 갈려

한장상 프로는 한국 골프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전설이다. 현역 때 통산 22승을 일궜으며 1968년부터 1971년까지 KPGA 4연속 우승이라는 전인미답의 대기록을 만들었다. 또 1958년 KPGA 제1회 대회부터 1907년 50회 대회까지 단일 대회에 50년 연속 출전, 최다 우승 기록(7회)도 보유하고 있다. 일본오픈 등 국제대회에서도 세 차례 우승해 우물안 개구리였던 한국 골프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또 1973년에는 마스터즈에 참가했는데 이 역시 한국인 최초였다.

때마침 박노승 골프칼럼니스트(전 건국대 교수)에 의해 그의 일생이 책으로 정리되어 나왔다. 이 책을 보면 맨주먹으로 시작해 정상에까지 오른 그의 힘겨운 역정이 보인다. 그러면서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으로 성장한 우리의 역사와도 중첩돼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골프를 칠 수 있게 된 것은 이승만 대통령 덕분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에 주둔한 미군 장성과 대화하던 중 그들이 주말에 오키나와까지 가 골프를 치고 온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몰라서 긴장하고 있는데 미군 지휘부가 주말에 외국으로 나가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총무처장에게 골프장을 지으라고 지시했고 일제 때 폐쇄됐던 군자리 골프장이 서울컨트리클럽(현 어린이대공원 부지)으로 재건됐다. 한국 골프의 시작은 안보에 대한 걱정이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도 군장성들에게 일요일에 급한 일이 생기면 도대체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으니 가급적 골프장으로 가라고 독려했다. 골프를 치면 대통령 주변에 몇 시간이고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챈 정치인들이 골프에 뛰어든 것도 이즈음이었다.

그런데도 프로골퍼를 보는 사회의 눈은 차가웠다. 당시 서울컨트리클럽의 식당에 프로골퍼들은 입장할 수 없었다. 최강자였던 한장상조차도 해외에서 손님이 온다든지 하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직원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달랐다. 1972년 한장상이 일본오픈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을 들은 박 대통령은 한장상을 불러 국위를 선양했다며 격려했다. 그리고 골프가 대중적이지 못해 훈장을 주지 못해 아쉽다고도 했다.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은 해외에 나가 돈을 벌어오는 이는 모두 애국자였으며 이들에게 국가는 훈장으로라도 보답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안보에서 시작된 골프가 경제로 연결되던 이 시기,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올릴 수 있었다.

한장상은 골프를 통해 당대 최대 기업인 삼성 이병철 회장을 만날 수 있었다. 한장상과 라운딩을 하면서 그의 실력을 확인한 이병철은 장충동 자택에서 몇 차례 식사를 한 뒤 그를 신설되는 안양컨트리 클럽의 헤드프로로 발탁했다. 실력뿐 아니라 인성까지 검증해 인재를 감별하는 이병철식 인재제일주의 경영은 골프에까지 그대로 적용됐다. 이병철은 지독한 연습광이었다. 해가 지면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켜놓고 연습을 계속하기도 했다. 감나무 헤드를 쓰던 당시에도 드라이버로 220 야드를 날린 실력파였지만 때로는 한장상이 모르는 질문을 던질 정도로 연구를 했다.

이 회장은 한장상에게 삼성의 부장 월급을 줬다. 일본대회 참가 시에는 삼성의 일본지사에서 도움을 받았고 이회장이 도쿄에 체류하면 바로 대화가 가능토록 옆방에 재우기도 했다. 해외출장비도 받았는데 자비로 출장비를 미련해야 했던 당시에는 그야말로 파격적 대우였다.

한장상 프로가 은퇴하고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는데 정치는 퇴보한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후진적이다. 그런데 초창기 골프를 치던 정치인들은 반칙이 일쑤였다.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이 대표적이다. 그는 볼이 숲으로 가면 미리 준비했던 볼을 슬쩍 떨어뜨리는 알까기도 했고 수시로 볼을 발로 차는 속임수를 썼다. 한마디로 골프를 유린했다. 반칙과 편법으로 골프를 쳤다. 반면 이병철과 같은 기업인들은 지독히도 연습을 했고 프로골퍼도 대답하지 못한 질문을 할 정도로 연구를 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바르게 살고 열심히 일하는 것 이상의 성공비법은 없다는 것을 그 시절의 기업인들은 알고 있었다. 한장상 프로골퍼의 정·재계 교유기를 보면 왜 한국에서 정치는 후퇴했고 경제는 성공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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