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수입산 곰탕과 테슬라

입력 2024-02-21 06:00 수정 2024-02-21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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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정도 다녔던 단골 식당이 하나 있었다. 가격은 조금 있었지만, 국물 맛은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었던 곰탕집이다. 여의도 근처라 유명 방송인이나 국회의원 등도 자주 찾던 곳이다.

그런데, 원산지 표시제가 시행되면서 손님이 확 줄었다. 당연히 그 가격이면 한우로 생각했는데, 전부 수입이었다. 가게에서 한우라고 내세운 적도 없고, 맛도 그대로인데 손님은 줄었다. 아마도 묘한 배신감이 작용했던 것 같다.

고객과의 신뢰는 기업의 생존까지 좌우한다.

신뢰를 저버린 남양유업은 결국 주인까지 바뀌게 되었고, 브라질산 닭고기로 논란이 되고 있는 BHC도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고객은 변덕스럽다. 제품 성능이든 기업 이미지든, 언제고 내가 낸 돈만큼의 가치를 주지 않으면 돌아선다.

테슬라가 지난달 국내에서 판매한 자동차는 1대라고 한다.

보조금, 재고문제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지만,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가 이전만큼 절대적인 존재감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해진 것 같다.

그만큼 혁신으로 포장됐던 이미지가 많이 희석된 느낌이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신뢰로 귀결된다.

차량 완성도에서 오는 불편함과 이어지는 불만족스러운 서비스가 쌓였고, 고무줄 같은 가격 정책은 자칫 고객을 무시하는 듯한 감정마저 들게 했다.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의 튀는 행보는 덤이다. 이런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며 고객의 절대적 ‘팬심’이 옅어진 것이다.

물론 전기차의 상징성을 가졌던 테슬라의 가치 자체가 많은 경쟁자의 출현으로 희석된 점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마니아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사실 테슬라는 ‘가성비’로 선택하는 차는 아니다.

자동차를 구매할 때 많이 작용하는 요소 중 하나가 소위 ‘하차감’이다. 어떤 차에서 내리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가치와 사회적 지위를 투영하는 성향이 강한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특히 큰 부분이다. 테슬라를 타야지만 얼리어답터가 된 것 같거나, 최소한 시대에 뒤떨어지는 느낌은 덜 받을 수 있었다는 의미다.

며칠 전 만났던 다른 수입차 브랜드의 한 임원에게 들었던 말에서도 이런 상황이 그대로 드러난다.

“솔직히 그동안 그 정도 가격을 주고 살만한 차는 아니었죠. 이제는 수입차만 한정하더라도 그 정도 가격이면 훨씬 좋은 전기차들을 살 수 있는데, 굳이 그 테슬라를 사야 할까요?”

아마도 20일 발표한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으로 테슬라의 판매량 회복은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가 테슬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떤 제품이나 시장이든 성숙기에 접어들면 고객은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 영역에 발을 딛고, ‘가성비’를 바라본다. 테슬라도 그 시점을 맞은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추세가 더 빨라질 수 있다.

물론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해법은 있다. 그동안 쌓은 소비자와의 신뢰 여부다. 그 신뢰는 당연히 그동안 고객을 대했던 시간의 결과물이다.

2019년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취임 후 첫 신년사에서 ‘LG가 더 나아갈 방향은 고객’이라는 말을 할 때만 해도 좀 생뚱맞다고 생각했다.

치열한 기술 경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한국 대표 그룹의 젊은 총수가 다른 모든 걸 제치고 ‘고객’이라는 다소 유행에 뒤처지고, 모호한 개념을 기치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당시 LG그룹의 상황은 쉽지 않았다. 적자만 쌓여 갔던 스마트폰 사업이 당시 상황을 대변한다. 그룹 내 내세울 사업도 딱히 보이지 않았다.

5년이 지난 2024년. LG그룹의 위상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이 변했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동안 쌓인 고객과의 신뢰가 크게 작용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구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여전히 ‘고객’을 맨 앞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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