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10억짜리 불량품'이 사라지는 날

입력 2023-07-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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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공사를 근절하고 신뢰를 회복하겠다."

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부실공사를 막기 위해 건설 공사 전 과정 동영상 기록에 동참해달라고 요청한 다음 날이다.

건설사의 외침이 서울시장의 요구에 즉각적인 혁신 의지를 밝힌 것이란 점에서 반가웠다. 하지만 한편으론 아쉬웠다. 마음먹기에 따라 하루면 할 수 있는 선언을 건설업계 스스로 하지 못하고 건축허가권이 있는 서울시가 앞장서서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최근 붕괴사고 등으로 부실공사에 대한 소비자의 민감도가 극에 달한 상황이라 업계가 먼저 대대적인 혁신을 입에 올리는 게 자칫 "사실 그동안 우리가 모두 잘못한 게 많습니다"란 자백으로 오해를 살까 봐 눈치를 살피느라 그랬는지 모르겠다.

어찌 됐든 계기는 차치해도 좋다. 무엇보다 부실공사를 원천차단할 혁신을 시작하게 됐다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건설사들은 항상 품질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부실공사를 없애겠다고 얘기해왔다. 시스템 구축 등 여러 노력을 부단히 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부실공사와 하자는 여전하다. 집에 비가 새고 주차장이 물에 잠기거나 옹벽이 무너지는 것은 예삿일이 됐고 철근이 벽을 뚫고 나왔다는 얘기도 대단하게 들리지 않는다. '붕괴' 수준은 돼야 깜짝 놀라 찾아볼 정도다.

동영상 기록·관리는 이런 문제를 풀어줄 충분한 해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부실공사가 사라지지 않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는 건설사의 실행 의지 부족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 듯 하다.

오 시장의 요청을 곧바로 받아들였다는 것과 이후 서울시가 진행한 동영상 기록·관리 설명회에 64개 건설사 270여 명의 임원과 현장소장이 참석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는 것만으로도 건설업계가 여느 때보다 부실 방지와 신뢰 회복을 간절히 원하는지 드러난다는 점에서다.

동영상 기록·관리에 참여하면 서울시가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중대재해처벌법상 주의·관리 의무를 다한 것으로 인정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하겠다고까지 했으니 더더욱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지 않고 별도의 장비 없이 휴대전화기만으로도 시작할 수 있어 실행을 뒤로 미룰 이유도 없다.

동영상 기록·관리를 하면 부실공사 방지의 다른 걸림돌 중 하나인 현장관리의 한계도 극복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소수의 관리자가 넓은 공간에 흩어져 있는 작업자를 모두 살피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장 곳곳을 촬영하면 모든 작업을 지켜보는 효과가 있고 자연스레 작업자 스스로 실수를 줄이는 노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에 앞서 건설사 구성원 모두 설계와 규정을 지키려는 마음을 가질 게 분명하다.

지금 서울에서 3~4인 가족이 살만한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면 10억 원은 있어야 한다. 수도권으로 범위를 넓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 사람은 이 돈을 내기 위해 금융기관에 빚을 진다. 짧아도 10년, 길면 30년, 50년이 되기도 한다. '내 집' 마련을 위해 경제활동을 하는 기간의 대부분, 어쩌면 평생을 바친다는 얘기다. 전 재산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집이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모두가 십수억, 십수 년 이상을 들여 마련한 집에 비가 오면 물이 새지 않을까, 어디가 무너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는 그 날이 하루빨리 오길, 그리고 그때 2023년 7월의 어느 날이 그 시작점이었음을 추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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