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의 우문현답] “엄마는 사교육이 藥인 줄 알아요”

입력 2023-07-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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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카르텔 온갖소문 많지만

교육효과 의문에 요령만 가르쳐

인적역량 키우는데서 방향 찾길

예전 중간고사 기간 중엔 강의가 없던 시절, 해외로 패키지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호주 뉴질랜드 여행팀에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부모와 함께 왔기에, “학교는 어쩌고 여행을 왔느냐?” 물었더니, “요즘 누가 학교에서 공부하나요? 선행(학습) 하면 되고요, 현장실습 보고서 제출하면 출석 인정도 받아요.” 엄마가 대신 대답해주었다. 벌써 15년도 더 지난 일이다.

일타 강사의 현강(현장 강의)과 인강(인터넷 강의) 세례를 받은 후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 강의실에 들어서는 순간, 일종의 문화충격(?)을 경험한다는 이야기를 이웃 대학의 지인을 통해 전해 들은 지도 10년이 넘었다.

“교수님들은 왜 이렇게 강의를 못하시나요? 알아듣기 쉽게 요약 좀 해주세요”가 학생들 단골 멘트라 했다. “교수님 저희들은 IQ(지능지수) 보다 JQ(잔머리지수!)가 높습니다.” 농담까지 덧붙이면서 말이다.

최근 대통령의 “킬러 문항 배제”가 쏘아올린 사교육 논쟁이 한여름 폭염보다 뜨거운 듯하다. 신기한 건 무수히 많은 전문가들이 한마디씩 거들며 논쟁을 가열시키고 있지만, 정작 사교육에 등 떠밀리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사교육을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교육은 학부모의 불안 심리를 이용한 공포 마케팅의 승리라는 분석도 나왔고, 교육부와 사교육 간 입시 카르텔이 조성돼 있다는 주장도 나왔고, 날로 팽창하는 사교육 시장 규모에 대한 우려도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있고, 일타 강사의 몸값이 야구 선수 류현진 수준이라는 ‘믿거나 말거나’류의 가십도 떠다니고 있다.

하지만 사교육의 주체라 할 우리 아이들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사교육이 진정 의도했던 효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해서도 입도 벙긋 하지 않는다. 물론 대치동 ‘돼지엄마’의 성공사례 같은 괴담은 빠른 속도로 구전(口傳)되면서, 우리 아이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고문에 빠져들도록 한다.

하지만 성공 스토리보다는 실패 사례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우여곡절 끝에 자녀가 대학에 입학하고 나면, 사교육 이슈는 뇌리에서 말끔히 사라져버리고 만다.

최근 대학원 석사 과정 제자가 ‘명문대 입학생들은 고등학교 시절 사교육을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주제로 심층면접을 한 후에, 이를 토대로 학기말 페이퍼를 제출했다. 여의도에 살았던 본인도 웬만한 사교육은 남부럽지 않을 만큼 섭렵했던지라, 친구들 경험담을 들으며 낄낄대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고 했다.

“우리 엄마는 사교육이 무슨 약인 줄 알아요. 성적이 떨어지면 곧장 비싼 사교육으로 갈아타요. 마치 값비싼 약을 쓰면 약효가 더 좋아지듯, 비싼 사교육을 하면 성적이 올라가리라 기대하는 거죠.” 인상적인 고백을 했던 주인공은 엄마에게 자신의 성적 하락 이유가 사교육 가격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스스로 성적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엄마에게는 비밀로 한다고 했다. 심지어 대학 가서 알바 할 때 써먹기 위해 값비싼 사교육을 받을 때면 정성껏 노트 정리를 해두었다는 인터뷰 내용도 있었다.

물론 사교육을 위해 그토록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는 모범생다운 발언도 있었고, ‘우리 부모님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으셨길래 나를 위해 이 많은 돈을 쓰나’ 자괴감이 든다는 솔직한 의견도 있었다.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지갑을 열 준비가 돼 있는 우리네 상황에서 사교육 폐지나 사교육 무용론을 주장할 생각은 없다. 대신 기왕 돈 쓸 요량이라면 제대로 된 사교육을 하자는 데 한 표 던지고 싶다. 제대로 된 사교육이 도대체 뭐냐고 묻는다면, 선진국 후진국 막론하고 벤치마크해도 좋을 사례는 차고 넘칠 것이라 답해주고 싶다.

대학에 학생선발 자율권을 주고 본고사를 부활시키자 주장하면, 그건 사교육 유발 요인이 되기에 절대 불허라는 의견이 교육부의 공식 입장이었다. 한데 현실은 교육부의 선한(!) 의도와 달리 사교육 시장만 팽창에 팽창을 거듭하며 천문학적 규모로 성장해왔음을 환기시키고 싶다. 그것도 우리 아이들의 수능 찍기 요령과 JQ만 올리면서 말이다.

때로는 명분만 앞세우는 최선책보다는 실리를 챙기는 차선책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 사교육 논쟁이 최적의 실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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