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단체 간에 극심한 갈등을 낳고 있는 간호법안이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안이 통과된 이후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보건의료복지단체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2020년 의사 파업 이후 의료현장의 혼란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렇게 간호법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커지게 되면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위협도 커지고 있다.
이번에 국회에서 통과된 간호법안은 지난 72년간 대한민국의 의료체계를 규정해온 의료법 체계를 전면적으로 뒤흔드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통일적인 의료법 체계를 유지해 왔다. 즉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간호사의 업무를 유기적으로 조율하고 있는 의료법 일원화 체계인 것이다. 여기서 간호만을 분리해 의료·간호 이원화 체계로의 일대 전환을 꾀한 게 이번 간호법안의 핵심이다. 보건의료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셈이다.
하지만, 간호법안의 세부 내용을 둘러싼 갈등보다는 미래 보건의료의 헤게모니를 누가 차지할지를 둘러싼 영역 싸움의 성격이 크다.
정부는 물론 간호협회마저 인정했다시피 간호법안이 제정된다고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점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인구고령화에 따라 들어설 미래 의료·돌봄 시장을 누가 선점할 것인지에 대한 싸움이고, 지난 70년간 의사들이 누려왔던 기득권에 대한 일대 도전에 대한 응전의 성격이 강하다. 정글 속에서 볼 수 있는 영역 싸움을 보건의료계가 두 쪽으로 갈려 벌이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은 뒤켠에 버려둔 채. 히포크라테스와 나이팅게일의 선서가 무색할 지경이다.
이러한 상황이 초래된 데에는 정치의 잘못이 가장 크다. 무릇 정치의 본령은 갈등의 조정에 있지만,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확산시켰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최대한의 공감대를 형성한 후에 입법에 나서라는 것이 우리 헌법이 국회에 입법권을 부여한 이유다. 그러나 여·야의 힘 겨루기와 정쟁이 보건의료계로 전염되었다.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현재의 갈등이 지속될 경우 국민에게 더 큰 피해가 갈 수 있다. 간호법안이 의료법체계로부터 독립하면, 그 다음에는 한의사법안, 치과의사법안, 물리치료사법안, 안경사법안이 줄을 이을 것이다. 그때마다 막대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누구는 독립법을 허용해주고, 누구는 허용하지 않기가 쉽지 않다.
소아과 ‘오픈런’ 등 필수의료의 전반적 위기 속에서 간호법안으로 생긴 보건의료단체 간의 갈등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차갑다. 이제라도 여야와 정부, 관련된 보건의료단체들은 이 같은 국민의 시선을 느껴야 한다.
여당과 정부는 찬반 단체의 의견을 다시 듣고 입장 조율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국정을 책임지는 자세다. 야당과 간호협회도 간호법안을 반대하는 단체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상대방을 무너뜨려 이겨야 하는 싸움이 아니다.
특히, 같은 간호인력인 간호조무사단체가 단 한 번도 간호사단체와 대화를 해보지 못했다는 비판은 엄중히 새겨들어야 한다.
간호법안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 간의 협의가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은 채 법안이 의결된 것은 기이한 일이다.
의사단체와 간호조무사단체 등은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파업 선동을 멈추어야 한다. 갈등은 심해지고, 불신만 키울 뿐이다.
여당과 정부는 갈등을 조정함과 동시에 열악한 간호사의 처우를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개선해야 한다. 아울러 급속한 인구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한 미래 의료·돌봄시스템의 청사진도 조속히 제시해야 한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다시 국회에서 제대로 된 솔루션을 모색해보자. 의료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는 최적의 대안을 찾아가는 데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