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을 위한 101] 냄새가 좋은 도시가 좋더라

입력 2022-12-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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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선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

최근 도시 내 대표적 기피 시설인 하수처리장의 상부를 복합개발해 지자체나 지역주민들이 선호하는 기초생활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을 설치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때 큰 난관 중 하나가 바로 냄새, 즉 악취라고 합니다. 이런 악취를 줄이는 기법은 기술 발전과 더불어 매우 특화되어 거의 냄새가 나지 않도록 조절 가능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근 주민들의 수용성과 사회적 공감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도시는 인간의 후각으로 모두 느낄 수 없는 다양한 냄새들로 가득하고, 그것은 개인별 요인에 의해 향기가 되기도 하고 악취가 되기도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정적 냄새를 완화하기 위해 방향제 등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봄과 가을이 되면 자연과 도시에 다양한 꽃들이 피면서 나는 냄새, 소비구매 욕구를 부르는 카페의 커피 냄새 및 베이커리의 빵 굽는 냄새, 요즘 불멍을 즐기기 위해 나무 장작을 태울 때 나는 냄새 등은 자동차 매연, 악취 및 인공 향으로 물든 삭막한 도시인들의 삶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꽃피는 계절에 북한강 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면 자전거 도로 옆에 무심하게 핀 들꽃 또는 집단화되어 정성스럽게 관리된 꽃밭에서 나는 향기는 힘겨운 페달질을 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주며, 그러한 냄새가 나는 장소에 대한 기억을 더욱 좋게 해주는 공간체험을 만듭니다. 만족스러운 후각 체험은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강한 이미지로 기억에 오래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시에는 이러한 긍정적 냄새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대규모 아파트 단지 내 순환보행로를 걷다 보면 어딘가에서 부정적 냄새가 나는데, 그러한 곳에는 정화조가 묻혀있기 때문이라고 하며, 주민들은 냄새나는 쪽으로 걸어 다니지 않고 우회하는 행동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러한 행동 변화는 이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도시공간을 구성하는 환경과 인간 행동 간의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으며, 이를 잘 이해한다면 도시를 설계할 때 좀 더 좋은 도시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도시에는 보이지 않는 냄새 배출구가 많은데 그중 하나가 지하에 매설된 수많은 하수관로로, 우리가 매일매일 인지하지 못할 뿐이지 이곳에서 발생하는 냄새는 도시공간을 뒤덮고 있습니다. 1868년 영국 런던에 최초로 하수도를 설치하여 분뇨와 오물이 뒤섞이면서 발생되는 냄새를 직접 대면하지 않게 한 매우 선진적인 위생기술로 과거 도시에서는 자연스러운 냄새였던 것이 지금은 악취가 되어 버렸습니다. 악취가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닌 것이, 가끔 교외지역을 운전하다 보면 창문으로 들어오는 가축의 분뇨냄새를 어린 시절 두엄 냄새를 맡으며 성장했던 사람들은 고향의 냄새라 부르며 잠시 악취를 즐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냄새가 낯선 이들에겐 매우 불편할 뿐만 아니라 그곳에 대해 좋지 못한 기억을 만들어주곤 합니다.

2018년부터 올해까지 ‘독산동 우시장 일대 도시재생뉴딜’사업의 총괄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곳은 마장동과 더불어 서울의 대표적인 축산물 시장으로 두 곳 다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독특한 악취가 배어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육류를 저렴한 가격에 즐기기 위해서는 일반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그곳만의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지만 맛있는 고기를 먹는다는 즐거움으로 악취에 대한 부정적 느낌은 덜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후각이 그곳의 악취에 친숙해지고 순응해진 덕분이며, 이러한 냄새는 이곳이 축산물 시장이라는 공간의 정체성을 매우 강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도시에는 이처럼 긍정적 혹은 부정적 냄새들이 항상 존재합니다. 인간의 오감 중 하나인 후각은 고상한 감각으로 인정받고 있는 시각에 비해 천한 감각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냄새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도시 생활 경험, 장소 및 인식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여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과 노력이 있습니다. 바로 도시디자인과 후각을 결합해 도시를 설계해야 한다는 ‘후각도시(Smellscape)’입니다. 이 개념은 영국의 지리학자인 더글라스 포르테우스(Douglas Porteous)가 만든 용어로 ‘Urban Smellscapes’(2014)를 저술한 도시 디자이너 빅토리아 헨쇼(Victoria Henshaw)에 의해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도시를 만들 때 공간에 개성을 주고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랜드마크(Landmark)를 만드는 것처럼 후각적 특성을 활용한 스멜마크(Smellmark)를 통해 세월과 사연의 향기를 잃어버린 21세기의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합니다.

잠시 눈을 감고 내가 사는 주변에 긍정적인 냄새를 불러일으키곤 하는 그런 곳이 있는지 회상을 해보시지요. 도시화를 하면서 냄새는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되거나 몰아내야 할 무엇인가가 되었고 점점 더 후각적 정체성이 상실되어가고 있습니다. 좋은 향기란 가공된 향기가 아니라 그 공간의 역사성과 사회성이 밴 시간과 사연의 향기라고 합니다. 도시로 뿜어져 나오는 부정적 냄새에 대한 가능성을 줄이고 이를 조절할 수 있는 기술적 발전은 스마트도시라는 개념 속에서 기술적 진보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고, 이는 건강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인간이 가진 오감을 통해 도시가 일상적인 인간 경험을 증진시키는 것에 점점 더 중요한 관심을 가지고 이를 위한 투자들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시각적, 청각적인 것과 더불어 이제는 후각적인 것에서도 인간과 공간 간의 관계를 고려하면서 도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악취를 줄이면서 자연에서 느끼는 냄새나 이와 유사한 향기로 가득 차고 새로운 경험의 차원을 제공해줄 수 있는 도시로 만들려는 후각적 도시디자인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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