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우리집에 왜왔니'중

입력 2009-04-03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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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려는 남자의 집으로 돌연 미친년이 찾아든다. 자동반사적으로 살려주더니, 죽으면 안 된다며 손발을 꽁꽁 묶어버린다. 이어 제 집 안방이라도 되는 듯 발라당 누워 주객전도 상황을 연출하고야 만다. 묻고 싶다. ‘우리 집에 왜 왔니’.

딱 TV 단막극 유의 이야기다. 범상치 않은 인물의 등장, 자살이라는 코드는 쉽고도 빠르게 극을 전개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우리집에 왜왔니’ 속 장황한 내레이션 역시 영화적 영상 언어와는 거리가 있다. 1회용 TV드라마라면 또 모르겠다.

동네 사람들이 다들 미친년이라고 손가락질하던 그 여자는 요즘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영화는 출발한다. 거지나 노숙자, 혹은 매춘부로 전락했을 지 모른다는 일반적 상상력을 영화는 모두 보여준다. 미친년만의 막무가내 정신에서 비롯된 코믹함도 확실히 발산한다.

천장에 끈을 매달아 자살하려는 ‘김병희’(박희순)의 집에 황당하리만큼 유유히 ‘이수강’(강혜정)이 걸어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신의 첫사랑이 살고 있는 건너편 집구석이 제일 잘 보일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자기를 이렇게 만든 첫사랑 ‘박지민’(승리)을 산 채로 매장하겠다면서 미친년만의 살기를 불태운다.

병희는 이해 불능, 납득 불가 시추에이션이 억울하기 짝이 없다. 자살하려던 굳건한 의지도 잊고 황당함에 몸을 떤다. 억울해 죽겠다는 병희의 속마음들을 내레이션이 다 알려준다. 내내 똥마려운 표정을 짓고 속으로 억울함을 삭이는 주인공의 말 못할 분노들은 고스란히 유쾌함으로 전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병희는 수강에게 익숙해진다. 개처럼 묶여 있지만, 역시 길들여진다. 물 좀 떠다 줘, 화장실 갈래…, 병희의 생리적 요구들에 피곤한 쪽은 오히려 수강이다. 수강이 뿜어대는 노숙자만의 쾨쾨한 냄새 탓에 입으로만 호흡하던 병희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 냄새들에게마저 익숙해진다.

자살을 꾀한 남자와 살인을 구상한 여자는 그렇게 ‘우리집’이라는 공간에서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

영화는 이런 스토리들을 액자형식으로 구현해낸다. 과거와 현재를 정신없이 오가면서 때로는 혼란스럽게 펼쳐낸다. ‘수강은 죽었다’는 스포일러성 결말은 영화 초반 드러나는 설정이다. 숨진 채 발견된 수강의 짐에서 병희 앞으로 온 엄청난 우편물들이 발견되면서 극이 전개된다. 경찰 조사를 받게 된 병희가 수강의 자택침입 사건을 털어놓고, 그 과정에서 옛날 이야기들이 꺼내지는 액자 속의 액자 형식이다. 복잡한만큼 설명을 위한 내레이션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이 모든 구성은 TV단막극이 던지는 재미와 유사하다.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누군가가 나타나고, 결국은 삶의 의미를 깨친다는 교훈적 메시지는 독특한 듯 보이지만 진부하다. TV단막극을 떠올리면 답이 나온다.

어떤 남자를 스토커처럼 쫓아다니는 미친년 이야기는 ‘미쓰 홍당무’와 닮은꼴이다. 삽질을 하는 장면까지도 ‘어쩜 그렇게’ 닮았다. 신선하다는 평가가 새어나왔지만 흥행 성적은 저조했던 ‘미쓰 홍당무’의 전철을 ‘우리집에 왜왔니’가 밟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신선도 면에서는 ‘미쓰 홍당무’보다 한참 떨어진다.

‘우리 집에 왜 왔니’의 ‘이수강’은 안면홍조증 환자인 미스 홍당무 ‘양미숙’처럼 인상적이지 않다. 누가 봐도 못생기고 비호감인 양미숙과 달리, 이수광은 노숙자라지만 더러워보이지 않는다. 영화가 미친년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저 좀 이상한 여자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눈썹까지 가지런히 다듬은 강혜정식 노숙자는 패션마저 ‘집시 스타일’이다. 9일 개봉한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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