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보 화백 "전부 비워내잔 마음으로…죽을 때까지 그릴 것"

입력 2021-09-15 17:36 수정 2021-09-15 17:37

10년 만에 개인전서 '색채 묘법' 16점 전시…"단색화는 이런 것"

▲15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만난 박서보 화백. (김소희 기자 ksh@)
▲15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만난 박서보 화백. (김소희 기자 ksh@)
"중국에선 나를 걸어 다니는 한국 현대미술사라고 해요. 한국에서 나고 자라 운동하고 이 사회에서 끝까지 살아남으면서 투쟁하고 일궈낸 게 단색화 작업이었죠."

15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만난 박서보 화백은 열정적으로 자신의 그림 사(史)에 대해 설명했다. 그의 '친절한' 설명은 지난 2010년 이후 두 번째 개인전을 여는 것에 대한 기쁨 때문인 것도 있지만, 자신의 세계관에 대한 확신이 가득 찬 결과로 보였다.

국제갤러리는 이날부터 10월 31일까지 K1에서 박서보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그간 국제갤러리는 2014년 전시에 이어 2015년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2016년 벨기에 보고시안 재단, 2018년 상하이 파워롱미술관(2018) 등에서 열린 그룹전들을 통해 단색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여정을 화백과 함께 해왔다.

박서보 화백은 단색화에 대한 정의도 새롭게 써냈다. '단색화는 색이 단색이라서 단색화가 아니다'라며 단색화의 요체를 강조하기도 했다.

"첫 번째는 행위가 무 목적성이어야 해요. 서양에선 전부 목적성이거든. 두 번째는 행위의 무한 반복성이 있어야 하죠. 스님이 온종일 반복해서 염불하듯 말이에요. 이는 자신을 비워내는 일입니다. 세 번째는 그 행위 과정에서 일어난 물성이 중요해요.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물성을 정신화하는 일입니다."

박서보 화백은 회화에 동아시아의 자연과 예술에 대한 관점을 담아냄으로써 한국의 모더니즘을 선도했다 평가받는다. 그는 줄곧 '왜 회화 작업을 하는가?'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변화하는 시대상에 부응하는 새로운 작업방식을 모색해왔다.

그의 '후기 묘법' 내지는 '색채 묘법'으로 알려진 2000년대 이후 근작 16점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선명한 색감과 주변 도시 경관의 더 단조로운 색감이 혼재된 치유의 공간을 선사한다.

묘법 연작은 흔히 1970년대 초기(연필) 묘법, 1980년대 중기 묘법, 2000년대 이후의 후기(색채) 묘법으로 구분된다. 연필 묘법이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비우고 수신하는 과정에 중점을 두었다면, 색채 묘법은 손의 흔적을 강조하는 대신 일정한 간격의 고랑으로 형태를 만들고 풍성한 색감을 강조하여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작가의 대표 연작으로 자리매김했다.

"내가 부처님을 모시거나 그런 일도 없었어요.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나날이 침전돼 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젊었을 땐 부족함도 너무 많았지만, 뛰어남도 너무 많았어요. 그 두 개가 내부에서 충돌했죠. 그 모양들이 밖으로 뛰쳐나가서 저항운동으로 갔는데, 안 되겠다 싶어서 '수신'을 하겠다고 결심했죠."

화백은 회화에서 색은 시대상을 드러내는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전후 시기의 원형질 연작에서는 급변하는 세계에 대한 불안의 정서를 표현한 검은색, 1960년대 후반 서양의 기하학적 추상에 대응해 전통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유전질 연작에서는 전통적인 오방색, 그리고 1970년대에 '비워 냄'을 몸소 실천한 연필 묘법 연작에서는 색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 위해 흰색을 선택했다.

박서보 화백은 특히 둘째 아들이 세 살 때 형의 노트에 '한국'이라는 단어를 쓰는 모습을 보며 '비워냄' 철학을 완성했다고 말한다. 한 칸에 한 글자를 넣어야 하는데, 한 자음만 넣는 식으로 실패를 반복하다 빗금을 긋는 모습. "그게 체념이었던 거죠."

2000년대 이후 화백이 강렬하고 선명한 색감들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 디지털 문명을 대면하며 느낀 공포심과 맞닿는다. 시대상을 녹인 작업을 이어오던 그에게 '더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겠다'는 위기감이 엄습했고, 이는 스스로 작업 중단까지 고려하기에 충분한 배경이 됐다. 그렇게 화백이 찾은 돌파구는 다시금 색이었다.

박서보 화백은 2019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200호짜리 그림을 올해 안에 완성해내겠다고 다짐했다. 몸을 움직이며 곡선을 그려냈던 지난날을 회상하던 그는 "예전처럼 바닥에 엎드려 몸을 앉았다 일어섰다 하기 힘들다"고 고백했다. 이젤을 세워놓았다. 박서보 화백은 자신의 전부를 걸고 수없이 반복해서 그리고 또 그리고 있다.

"늙어서 다리에 힘이 없어요. 입 안도 꿰맸고, 오른쪽 팔뚝도 찢어져서 치료했어요. 그래도 그릴 거예요. 내가 지구에 살아있을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아요. 죽어서 후회하지 않으려고, 무덤 속에 가서 후회하지 않으려고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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