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코노미] 넷플릭스 ‘하이스코어’를 통해 본 게임 산업의 과거와 미래

입력 2021-05-14 16:43

오코노미는 넷플릭스와 왓챠 등 OTT(Over The Top) 서비스에 있는 콘텐츠를 통해 경제를 바라보는 코너입니다. 영화, 드라마, TV 쇼 등 여러 장르의 트렌디한 콘텐츠를 보며 어려운 경제를 재미있게 풀어내겠습니다.

실리콘 밸리에 빌딩보다 자두나무가 더 많았던 1980년대. 이제 막 태동하던 IT 산업과 함께 싹을 틔운 산업이 있었다. 바로 '게임' 산업이다. 1960년대 MIT 공대생들이 밤늦게 컴퓨터실에서 몰래 즐기던 일탈에 불과했던 비디오 게임은 1980년대 미국 부모들의 지갑을 여는 신흥 산업이 됐다.

물론 부침도 있었다. 일명 '아타리 쇼크'라 불리는 북미 게임 시장 붕괴 사태 당시, 게임 산업은 다시는 재기하지 못할 듯 보였다. 하지만 게임 산업은 살아남았고 여전히 건재하며, 그때와는 비교도 못 할 정도로 성장했다. 디지털이 도래하기 전, 모두가 유해하다 손가락질하던 게임이 당당히 산업으로 자리 잡던 시기 이야기. 넷플릭스의 6부작 다큐멘터리 '하이스코어'(High Score, 2020)다.

▲1972년 아타리를 창업한 놀란 부쉬넬. 그는 게임 퐁(Pong)과 브레이크 아웃(Break Out·벽돌 깨기)을 통해 큰 성공을 거뒀다. (넷플릭스)
▲1972년 아타리를 창업한 놀란 부쉬넬. 그는 게임 퐁(Pong)과 브레이크 아웃(Break Out·벽돌 깨기)을 통해 큰 성공을 거뒀다. (넷플릭스)

하이스코어의 시작은 전설적인 게임 기업 '아타리'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아타리는 비디오 게임의 대부, 놀런 부슈널이 1972년 설립했다. 아타리의 첫 성공은 비디오 게임 '퐁'(pong)이었다. 부슈널은 창업 당시 500달러 자본금을 투자했는데, 퐁의 성공 이후 자본금의 수백 배에 달하는 돈을 거머쥐었다.

그 후 아타리는 가정용 게임기 '아타리 2600'으로 북미 게임 시장을 접수했다. 1977년 7500만 달러 수준이었던 아타리 매출액은 1982년 전성기 시절 20억 달러에 육박했다. 아타리는 당시 자유로운 기업 문화로 IT 인재들을 빨아들였다. 회사 내에서 맥주와 게임은 물론 대마초까지 피웠다. 이런 자유로운 문화는 지금의 실리콘 밸리 문화 전반에 영향을 줬다.

▲탁구처럼 이리저리 튀어다니는 공을 받아치는 아케이드 방식의 퐁 게임. 1972년 11월 29일에 아타리에서 출시했다. (출처=퐁 홈페이지 캡처)
▲탁구처럼 이리저리 튀어다니는 공을 받아치는 아케이드 방식의 퐁 게임. 1972년 11월 29일에 아타리에서 출시했다. (출처=퐁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아타리의 성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83년 이른바 '아타리 쇼크'라는 북미 게임 시장 붕괴 사태가 찾아왔다. 아타리 쇼크 이후, 30억 달러였던 북미 게임 시장 규모는 1985년에 1억 달러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당시 북미 게임 시장을 아타리가 독점하고 있었는데, 아타리가 무너지자 게임 산업 자체가 무너져내린 것이다.

아타리 쇼크의 원인으로는 야심작 게임 'E.T'의 실패, 시장의 과포화, 저질 게임 범람으로 인한 소비자의 외면 등이 꼽힌다. 'E.T' 게임은 크리스마스 시즌을 노리고 5주 만에 날림으로 제작되느라 베타테스트도 제대로 못 했다. 개발자 하워드 스캇 워셔는 "온종일 게임 코드를 짜다가 운전 중 길을 보지 않아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고 회고했는데, 그러한 노력에도 E.T.게임은 망했고 넘쳐나는 재고는 뉴멕시코 사막 한가운데 묻히고 말았다.

▲하이스코어는 그 시절 비디오 게임을 연상시키는 감각적인 연출과 레트로 감성의 도트 애니메이션으로 게임의 역사를 흥미롭게 펼쳐보인다. (넷플릭스)
▲하이스코어는 그 시절 비디오 게임을 연상시키는 감각적인 연출과 레트로 감성의 도트 애니메이션으로 게임의 역사를 흥미롭게 펼쳐보인다. (넷플릭스)

하지만 미국 소비자들은 다시 게임을 찾았다. 아타리의 빈자리는 일본 기업 '닌텐도'와 '세가'가 채웠다. 닌텐도는 적극적인 현지화 마케팅으로 미국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81년 7월 9일에 발매된 '동키콩'을 시작으로 대성공한 '마리오 시리즈'의 역할이 컸다. 마리오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 시리즈로 꼽힌다.

후발 주자 세가는 닌텐도와 달리 10대를 타겟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였다. 10대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당시 닌텐도의 주 고객인 9~11살 어린이까지 따라올 거란 전략이었다. 세가의 전략은 통했다. 롤러코스터와 고슴도치에서 영감을 받은 '소닉'은 개성 넘치고 반항적인 이미지로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래픽이 최초로 사용된 PC 게임 '미스터리하우스'. 거대한 주택을 탐험하는 호러 게임으로, 부부인 로버타와 켄 윌리엄스가 함께 만들었다.   (출처=유튜브 캡처)
▲그래픽이 최초로 사용된 PC 게임 '미스터리하우스'. 거대한 주택을 탐험하는 호러 게임으로, 부부인 로버타와 켄 윌리엄스가 함께 만들었다. (출처=유튜브 캡처)

게임 산업은 발전하는 PC와 만나 새로운 영역에 들어선다. 1980년 최초로 그래픽을 적용한 PC 게임 '미스터리 하우스'와 롤플레잉 게임의 시초로 꼽히는 '아칼라베스: 파멸의 세계'다. 아칼라베스를 만든 리처드 개리엇은 그 후 RPG 게임의 바이블로 꼽히는 '울티마 시리즈'를 만들어 비디오 게임을 한층 더 발전시켰다.

2D에 머물렀던 게임을 실감 나는 3D로 재현한 '둠'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둠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즐기는 '배틀그라운드', '오버워치' 같은 FPS(1인칭 슈팅 게임) 게임이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콘솔의 시대가 저물고 모바일·디지털 시대가 왔지만, 그 시절 게임의 유산은 현재의 게임에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넷플릭스)
▲콘솔의 시대가 저물고 모바일·디지털 시대가 왔지만, 그 시절 게임의 유산은 현재의 게임에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의 마지막은 게임 산업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물으며 끝이 난다. 구체적인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새로운 길에 이전처럼 수많은 혁신가가 있으리라 전망한다. 게임 스포츠 대회 아타리 챔피언십의 최초 우승자인 베키 하이네만은 "우리는 시대를 앞서갔지만 이제 그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최근 게임 업계는 앞다투어 '메타버스'와 '가상 자산'을 미래 먹거리로 제시하고 있다. 스크린에만 머물러있던 게임은 현실과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성장하고 있다. 언택트 시대를 맞아 게임 산업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물론 유해성·사행성 논란 등 게임 산업의 앞날이 언제나 꽃길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의 혁신가들이 그랬듯 오늘의 혁신가들도 새로운 길을 걸으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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