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구광모 LG, 기존 경영문법 파괴…인사로 보는 전략

입력 2019-11-29 14:57 수정 2019-11-29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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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회장 출범 2년 만에 전자·화학·통신·상사 등 주력 계열사 CEO 교체

회장 취임 후 두 번째 연말을 맞이하는 구광모<사진> LG 회장이 자신만의 경영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 구 회장은 경쟁기업과 적극적으로 소송을 벌이며 외부에 ‘지지 않겠다’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으며, 내부에는 예상을 뛰어넘는 인사로 충격요법을 구사하고 있다.

◇ ‘인화’의 LG에서 ‘지지 않는’ LG로 = 지난해 6월 구 회장이 LG 수장에 오른 뒤 가장 큰 변화는 경쟁기업과의 싸움이었다. LG화학은 2차전지 관련 핵심 기술 탈취를 주장하며 SK이노베이션과 소송을 벌이고 있다.

LG전자는 아르첼리, 베코, 그룬디히를 상대로 양문형 냉장고 특허 기술이 침해당했다며 소송을 걸었다. 하이센스를 상대로는 TV 관련 특허 침해, TCL은 휴대폰 LTE 통신기술 침해를 주장하며 소송에 나섰다.

또 삼성전자를 상대로는 8K TV 기술문제, QLED 명칭 사용에 문제를 제기하며 전면전에 나섰다.

재계는 LG의 크고 작은 싸움이 구 회장의 달라진 LG를 대내외에 알리는 일종의 메시지라고 해석하고 있다. 구 회장이 외부에 삼성, SK 등 다른 기업에 지지 않겠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공격적으로 사업에 나서고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역대 LG 회장들의 조용한, 양반 스타일 덕분에 ‘인화의 LG’라는 수식어도 만들어졌지만, 구 회장은 사업 측면에서 적극적인 대응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라며 “특히, 부회장을 건너뛰고 회장으로 바로 승진한 구 회장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구 회장의 공격적인 경영은 과거 LG 반도체 등 주요 변화의 기점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LG의 역사를 극복하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정부의 정책에 따라 LG는 LG반도체를 넘겨야 했다. LG반도체는 현대전자를 거쳐 지금의 SK하이닉스로 성장했다.

▲(왼쪽부터)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선임된 하현회 LG유플러스 대표, 신학철 LG화학 대표, 정철동 LG이노텍 대표, 윤춘성 LG상사 대표, 정성수 지투알 대표. (사진제공 LG)
▲(왼쪽부터)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선임된 하현회 LG유플러스 대표, 신학철 LG화학 대표, 정철동 LG이노텍 대표, 윤춘성 LG상사 대표, 정성수 지투알 대표. (사진제공 LG)

◇ 안정적인 LG화학에 先 인사…변화 민감 LG전자 後 인사 = 구 회장은 대외적으로 달라진 LG를 알리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인사를 통해 구성원의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LG화학 수장 교체다. 구 회장은 창립 이래 처음으로 LG 화학 수장에 외부 인재를 앉히는 깜짝 인사를 단행했다.

LG 계열사 가운데 가장 보수적인 LG 화학은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해 조직문화를 바꿔보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수장이 바뀌어도 사업 성격상 당장 타격이 없기 때문에 LG화학의 수장 교체가 신의 한수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외부 출신 CEO를 선임한 것도 내부 구성원들에게 가하는 일종의 충격요법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올해 인사에서는 SK이노베이션과 전쟁 중인 LG화학의 전력을 보강하는 형태로 인사가 이뤄졌다. 소형전지사업의 지속적인 이익 창출에 기여한 김동명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하고 자동차용 전지사업부장에 선임했다. 또 특허 전문가인 민경화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켰다. SK이노베이션과 자동차 전지 부문에서 특허소송을 벌이고 있는 LG화학이 특허 담당 부문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LG화학에 비해 변화에 민감한 LG전자는 지난해 조성진 부회장을 유임했다. 그룹의 수장이 바뀐 상황에서 주력 계열사인 전자까지 건드리면 사업 타이밍을 놓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시장 판도가 바뀔 때 대응하지 못한 오판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LG 가전사업이 월풀을 넘어 서는 성과를 거두는 상황에서 변화보다 노련미가 돋보이는 조성진 부회장을 올해 인사에서 유임시킬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조 부회장은 세대교체를 이유로 용퇴를 결정했다.

조 부회장은 “안정된 수익구조와 사업 포트폴리오를 넘길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며, 바통을 권봉석 사장에게 넘겼다. 권 사장 역시 구광모 회장의 ‘지지 않는 LG’ 만들기에 힘을 보탤 전망이다. 권 사장은 2014년부터 HE사업본부장을 맡아오며 OLED TV의 부흥을 일으킨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삼성전자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TV 전쟁에도 권 사장이 총괄하고 있다. 그가 LG전자 CEO로 올라서면서 TV사업의 공격 경영이 더 매서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권 사장을 보좌해 HE사업본부장에는 박형세 부사장이 선임됐다. 박 부사장은 TV사업운영센터장을 역임하며 본부 사업구조 개선과 수익성 개선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권 사장이 HE사업과 함께 맡아왔던 MC사업본부장은 MC단말사업부장 이연모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맡는다. 이 전무는 MC북미영업담당, MC해외영업그룹장을 역임하며 단말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턴어라운드 기반을 구축할 적임자로 평가받는다.

이들 LG전자 경영진은 양문형 냉장고 특허(아르첼리·베코·그룬디히), TV 특허(하이센스), 휴대폰 LTE 통신기술(TCL), 8K TV 기술문제(삼성전자) 등을 상대로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펼칠 전망이다.

▲(왼쪽부터) 올해 연말 인사에서 선임된 권봉석 LG전자 대표, 정호영 LG디스플레이 대표, 강계웅 LG하우시스 대표  (사진제공 LG)
▲(왼쪽부터) 올해 연말 인사에서 선임된 권봉석 LG전자 대표, 정호영 LG디스플레이 대표, 강계웅 LG하우시스 대표 (사진제공 LG)

◇ 구 회장 취임 2년…주력 계열사 CEO 교체 = 실적이 곤두박질친 LG디스플레이는 앞서 비정기 인사로 부회장을 교체했다. 영업적자를 기록하고 희망퇴직을 받는 상황에서 엔지니어 출신이 아닌 재무통을 사장으로 앉힌 점이 특징이다. 정호영 LG디스플레이 사장은 2008년부터 6년 동안 LG디스플레이 CFO(최고재무책임자)로 재직한 재무통으로 꼽힌다. 정기인사에서는 실적악화에 따라 임원 승진을 작년 3분의 1로 줄였다.

최근 희망퇴직을 받는 LG이노텍도 작년보다 올해 승진 숫자를 줄였다. LG이노텍은 올해 부사장 1명, 전무 1명, 상무 2명, 수석연구위원 3명 등 총 7명에 대한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지난해에는 부사장 1명, 상무 6명, 수석연구위원 1명 등 8명을 승진시켰다. LG이노텍은 지난해 정철동 사장을 CEO로 신규 선임했다.

이로써 LG그룹은 구 회장 체제 출범 2년 만에 주력 계열사인 LG전자, LG화학, LG이노텍, LG디스플레이, LG유플러스, LG하우시스, LG상사, 지투알 등의 CEO를 모두 교체하게 됐다.

재계 관계자는 “구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보면 바둑을 두듯 정교한 수와 예상치 못한 창의적인 모습이 보인다. 젊은 대표답지 않게 신선하면서도 노련미가 엿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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