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도 유니콘 기업의 육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내년도 모태펀드 예산은 1조 원에 육박하며 벤처투자촉진법의 국회 통과도 추진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한국벤처투자가 주관해 18일 개최된 ‘코리아 벤처투자 서밋 2019’에서는 유니콘 육성을 위한 대규모 투자 능력을 갖춘 24개 벤처캐피털(VC)이 모여 ‘유니콘 도약 서포터즈’를 발족했다. 이 자리에서는 예비 유니콘 기업 24개 중에서 벤처투자사 선호도 조사를 통해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선정된 차세대 유니콘 후보 5개사가 국내외 투자기관 대상으로 기업설명회(IR)와 투자 상담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국내의 대표적 VC들이 공식적 모임을 갖고 유니콘 후보 기업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투자를 적극 협업해 나간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이전에는 벤처투자사들이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지 않았나? 벤처투자사가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 더 많은 혁신 기업이 투자를 받을 수 있을까? 벤처투자사끼리 협업한다는 것이 혹시 담합으로 이어져 투자가는 유리하지만 창업가에게는 불리한 투자조건이 나오지나 않을까?
‘코리아 벤처투자 서밋’에서와 같이 다수의 벤처투자사를 앞에 놓고 차세대 유니콘 기업이 설명회를 열고 투자를 유치하는 것은 형식적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설명회와 상담회가 있어 왔지만 거기서 투자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다. 대부분의 공개적 기업설명회와 상담회는 보여주기 위한 요식행사에 그칠 뿐, 본격적인 투자상담은 1:1 접촉을 통해 비공개적으로 이루어진다.
창업기업이 여러 투자사와 상담하고 투자를 제안하지만 실질적인 협의는 먼저 한 곳과 하고 거기가 안 되면 다른 곳과 협의하는 순차적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비된다. 첫 번째 투자협상이 실패해 그다음 투자사로 넘어가면 투자유치에 대한 창업가의 절박감이 커지게 된다.
초기에 접촉한 몇 군데에서 투자받지 못한 창업 기업은 VC 업계에서 평판이 하락해 투자 유치가 더욱 어려워진다. 싱싱한 생선이 여러 손을 타며 물이 가는 것과 같다.
VC의 투자 의사결정도 단순하지 않다. 특히 혁신형 기업의 성장(Scale-Up)에 필요한 대규모 자금을 공급할 수 있는 기관투자사는 여러 단계의 복잡한 내부 과정을 거쳐 투자적합성을 심사하고 투자조건을 심의해 결정한다. 실무자 선에서는 호의적으로 평가하지만 최종 결재 단계에서 승인받지 못해 투자가 성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투자계약까지 체결했다가 번복한 사례도 있다. 벤처기업들은 계약이 되어도 불안하며 돈이 입금되어야 그제야 안심한다고 한다.
이처럼 피를 말리는 과정에서 창업가의 관심은 기술혁신과 사업성장보다 투자유치에 매달리게 된다. 여러 곳과 상담하고 협상했지만 투자를 못 받는 가운데 자금과 열정이 고갈된 창업 기업은 결국 죽음의 계곡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조용히 사그라져 간다. 투자를 유치하더라도 일방적이며 불리한 조건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앞으로 VC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협업하겠다고 하니 혹시나 창업 기업에 불리한 비대칭적 투자 프로세스가 더욱 악화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유니콘 육성에 필요한 투자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투자 프로세스를 본질적으로 혁신하여 벤처투자사들이 협업하기보다는 서로 경쟁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정말 유망한 차세대 유니콘이 있다면 VC가 서로 투자하겠다고 경합해야 한다. 그래야 투자사보다는 창업 기업에 유리한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다.
현재 창업 기업이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은 경매와 같다. 설명회 형식은 한 창업 기업을 놓고 여러 VC들이 경쟁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한 VC의 투자 자금을 놓고 여러 창업 기업이 경합하는 방식으로 투자 프로세스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프로세스를 반대로 VC가 창업 기업을 놓고 경쟁하는 역경매로 만들도록 투자제도를 변화시켜야 혁신형 창업 기업이 죽음의 계곡을 넘어 유니콘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