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발언대] 취업난 속 대학가의 풍경

입력 2017-03-2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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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

근래 몇 년 사이 대학가의 풍경을 채우고 있는 건 부산스러움이다. 정원 감축 때문에 빚어지는 풍경이다.

대학은 2021년까지 2012년 대비 20만 명을 감축해야 한다. 대학별 감축 인원은 교육부의 평가 결과에 달려 있다. 좋은 평가를 받을수록 감축 인원이 줄어든다. 교육부는 대학을 평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지표를 마련했다. 교수충원율, 교사확보율 같은 것들이다. 지표의 목표는 분명하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얼마나 잘할 수 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잣대들이다.

그런데 교육부의 대학 평가 지표는 유동적이다. 어느 때인가 들어간 지표가 다음번에는 빠지기도 하고 그 반대 현상도 일어나지만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몇몇 지표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취업률이다.

대학들은 지난 10년 가까이 취업률에 사생결단으로 매달렸다. 대학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딸 수 있는 지표인 까닭이다. 다른 지표들로 그만한 점수를 따려면 단기간에 엄청난 경제적 투자가 필요하다. 교수충원율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돈만 있으면 당장 다음 학기라도 1등급을 맞출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제적 여력을 갖고 있는 대학은 전국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디라 할 것 없이 모두 취업률에 매달린다. 취업률로 대학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대학은 취업률에 매달리다보니 이제는 취업 잘 시키는 대학이 좋은 대학이 됐다.

요즘 대학이 할 일은 취업을 잘 시키는 일뿐인 것 같다. 마땅치도 않고 타당하지도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여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이려니 할 만하다. 취업률 광풍은 한발 더 나아간다. 학생들이 취업을 잘하고 못하고는 대학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학이 잘 가르치면 취업이 잘되고 취업률이 낮으면 대학이 잘못했다는 식이다. 한 대학만 놓고 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라 전체를 본다면 사정은 다르다. 일부 대학의 취업률이 높아지면 또 다른 일부 대학의 취업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아주 전형적인 제로섬 게임이다.

취업 문제에서 압권은 창업 지도다. 일자리 찾기가 어려우면 창업을 하라는 얘기다. 대학은 이제 학생들에게 창업을 권유하고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생들이 창업해서 올린 고용 효과를 머리에 그리는 모양이다. 대한민국에서 청년 창업이 정말 현실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청년 창업에 대해 특별한 조사를 해보지 않아도 그것이 성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 그런데도 기성세대는 창업을 취업난 해결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하며, 그것을 정책으로 입안한다. 왜 기성세대는 자기도 하지 못하는 일을 청년들에게 등 떠밀 듯 시키는 것일까?

청년들이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창업을 한다고 해서 취업난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취업난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일자리를 늘리거나 일자리를 쪼개는 수밖에 없음을 누구나 안다. 그런데 일자리 늘리기는 어려운 일이고 일자리 쪼개기는 곤혹스러운 일이다. 기성세대가 말하는 일자리 늘리기는 구두선(口頭禪)이고 일자리 쪼개기는 금기(禁忌)다. 이런 상황에서 기성세대는 책임을 청년들에게 미루고만 있다.

우연히 권여선 작가의 영화평을 보게 되었다. 소설가가 쓴 영화평을 보는 건 드문 일이라 관심이 갔다. 영화 ‘더 킹’의 평론에서 권여선은 말한다. 한강식의 처분에 자신의 미래를 내맡긴 박태수의 처지가 오늘날 청년의 슬픈 초상이라고. 현실은 영화보다 더 하다. 오늘의 청년은 자신의 인생을 맡기고 처분을 기다릴 기성세대도 없다. 취업난 속 대학 풍경화에는 무책임한 기성세대와 어리석은 청년을 담아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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