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유착 고리 끊자] “구태 악습 벗고 기업 지배구조 선진화 작업부터 우선”

입력 2017-01-0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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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정경유착’ 문제가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과정에서 출연금을 냈던 대기업들은 줄줄이 검찰 조사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특위 여야 의원들은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정경유착 의혹을 집중적으로 추궁하며 연일 근절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도 쏟아지고 있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해체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하지만 기업의 업무 범위를 놓고 어디까지 정경유착인지에 대한 기준안이 아직 애매모호하다. 국가 경제를 병들게 하고 경제정의 실현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정경유착을 뿌리뽑기 위한 대안 마련 관련 논의도 부족했다.

이투데이는 정치 원로, 학자 등 전문가 4인에게 ‘소통’과 ‘유착’의 애매한 경계선에 서 있는 정경유착의 정의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기업과 정치권, 정부가 상생할 수 있는 해법을 찾기 위해 지상 대담을 마련했다.

▲왼쪽부터 신율 명지대 교수,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 김상조 한성대 교수, 정의화 전 국회의장.
▲왼쪽부터 신율 명지대 교수,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 김상조 한성대 교수, 정의화 전 국회의장.

◇ 정경유착, 권력에 기댄 불공정 행위 = 신율 명지대 교수는 정경유착을 “기업의 정상적인 업무를 권력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라 규정지었다. 당장의 이익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권력의 도움을 받을 것으로 예상해 금전적인 이익을 주는 행위 역시 정경유착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정경유착의 근본 원인으로 ‘기업 지배구조’를 꼽았다.

신 교수는 “기업의 업무영역이나 기능 등은 이미 세계화된 반면, 지배구조는 산업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어 기업은 권력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고, 권력은 이를 이용하게 된다”고 진단했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는 정경유착을 “기본적으로 불공정한 관계”라고 했다. 정치권이 기업에만 유리한 정책을 만들어 시행한다든가, 심할 경우 특정 기업을 위해 정치 권력을 사용하는 소위 ‘특혜’를 주는 행태라는 것이다. 이 교수 역시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 패턴이 정경유착을 키웠다”고 꼬집으며 국민경제에 걸맞은 정책을 만들고 그에 따라서 정부가 경제를 건전하게 발전시키는‘정상적인 관계’ 정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합법과 불법을 가르는 선험적 기준을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절차’의 중요성을 거론했다.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절차의 확립 여부에 정경유착 해결의 열쇠가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정치권과 재계의 주요 인사들은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권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을 내린다”며 “그 과정에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고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경유착 근절 지름길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 = 전문가들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과거의 구태를 벗고 기업의 지배구조를 선진화려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상조 교수는 경제권력이 정치권력을 능가하는 힘을 갖게 된 요즘 현실에선 이번 사태로 불거진 정경유착을 ‘비선실세의 삥 뜯기’로만 볼 수는 없다고 정의내렸다. 김 교수는 “정경유착을 정치권(규제자)과 기업(피규제자) 간의 갑을관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라고 했다. 과거 개발독재 시절에는 정치권력이 절대적 우위에 있었고, 인허가나 재정ㆍ금융상 특혜의 대가로서 상납이 이뤄졌지만 이제는 재벌의 지배체제를 건드리지 않는 것의 대가로 떡고물이 주어지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 교수는 “재벌의 경제력 오남용을 규제하고 후진적 지배구조를 개혁하는 것은 정부의 정당한 권한이자 막중한 책무”라는 주장을 폈다. 소위 ‘삥’ 뜯어갈 소지가 없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정경유착 근절의 핵심 대책이며, 그것이 지배구조 개선이고, 재벌개혁이며, 경제민주화라는 의미다.

신율 교수도 “먼저 기업의 전근대적, 기형적 지배구조를 바꾸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권력구조의 변화도 생각해볼 때”라고 강조했다. 이정희 교수는 “불공정한 경제적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좀 더 활발히 움직여야 한다”면서 “정치권도 재계의 편의를 봐주는 것이 아닌 전체 국민 경제를 위한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경유착 온상 ‘전경련’ 해체 맞다 = 전문가들은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재계 총수들이 전경련 탈퇴를 선언하면서 전경련이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데에 대해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권력형 비리의 중심에는 언제나 정경유착의 창구로 비판받는 전경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전경련이 그동안 권력의 부당한 요구의 창구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라며 전경련 해체 분위기에 동조했다. 다만 신 교수는 “기업들의 지배구조 변화와 같은 근본적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경련 해체는 단순히 보여주기 식에 불과하다”며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도 지금은 부작용이 더 커진 전경련은 해체하고 재계를 대표하는 역할은 대한상의가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경련은 개발독재 시절의 유산”이라며 “과거에는 긍정적 역할을 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부작용이 더 커졌다”고 지적했다. 재계단체의 기본적 역할은 이익단체임에도 전경련은 전체 기업의 이익을 공정하게 대변하는 것이 아닌, 소수 거대 재벌의 기득권만을 옹호했다는 점에서다. 또 재계단체는 회원사들에 대한 자율규제기구로서의 역할도 담당해야 하나, 불법을 저지른 재벌 총수들에 대한 탄원서를 제출하는 창구에 불과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전경련의 싱크탱크 전환 등의 논의는 현재 전경련 상근자들이 결정지어서는 안 돼며 사회적 신망을 받는 외부 인사들이 조직개편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앞서 전경련이 소유한 천문학적 액수의 부동산 등을 조속히 처분해 부채를 상환하는 등 구조조정부터 단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개헌 필요성에 공감…권력구조 개편돼야 = 정경유착 근절 요구와 맞물려 투명한 국정운영이나 권력구조 개편을 해결책으로 ‘개헌론’이 부상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포스트 탄핵 정국의 가장 중대한 과제로 개헌에 공감했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우리사회의 제도나 의식, 관행 등 잘못된 것을 바꿔 내는 노력들을 정치권에서 해야 하고 그 틀은 개헌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며 개헌의 필요성을 적극 강조했다. 정 전 의장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그대로 두면 제2, 제3의 국정농단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면서 “‘권력구조 분산’에 방점을 두고 개헌, 선거제도 개선, 정당개혁의 세 개 축으로 정치개혁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개헌 시기와 관련해서는 “가능하면 대선 전에 개헌이 이뤄져야겠지만 탄핵안에 대한 헌재심리 중이라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면서 “차기 대통령의 임기를 3년 이하로 줄여 차차기 대선을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와 함께 치르자”고 제안했다.

김 교수도 “저성장ㆍ불확실성의 뉴노멀 시대에서는 대통령이 모든 권력을 가지면서도 재평가받을 기회가 없는 현 권력구조는 사회갈등을 증폭시키고 진영 논리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개헌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다만 그는 “개헌이 권력구조 개편에만 한정될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정치권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개헌을 도모해서는 안 되고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한다”며 열린 개헌 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각에서 대선 전 개헌을 주장하는 데 대해선 “지금 개헌을 단행해 대선을 치르기는 어렵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라면서 “다만 국민의 뜻이 뭔가 하는 것을 살피려는 생각들이 없어 아쉽다”고 했다.

신 교수는 개헌의 방향과 관련해 ‘내각제’ 를 제안했다. 그는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 임기 동안 기업들이 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임기제를 근간으로 하지 않는 내각제를 실시하면 정경유착은 상당부분 사라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내각제에서는 권력이 언제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정경유착의 행동대원 격인 공무원들이 권력의 부당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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