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정우 칼럼] 분노의 시대, 예외로 남는 길

입력 2016-11-1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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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국회의원

6월 영국이 유럽연합 탈퇴를 국민투표로 결정했을 때 전문가들은 영국민들의 분노와 불안의 표출이라고 읽었다.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보는 주요 언론들은 미국 사회가 분열과 분노로 상당 기간 고통받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사회현상이나 지도자를 향한 분노의 성격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대중의 분노는 어김없이 기득권을 겨냥한다. 그리고 민주적 투표를 통한 개인의 선택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 최선일까라는 의구심을 낳는다. 당사국 국민이나 언론조차 자신들 선택의 결과를 사전에 가늠하지 못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가 그러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탄생도 마찬가지다. 반군 게릴라 집단과의 평화협정이라는 숙원을 거부한 콜롬비아의 국민투표 결과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제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와 투표의 효능에 대해 다시 생각할 때인 듯싶다. 그리고 막연한 기대에 의지해 오늘을 살고 있는 한국민들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나도 살고 나라도 사는 길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언제 먼 미래를 생각하고 준비하며 살아왔던가. 나라를 믿고 지도자의 선택을 따르며 내일이 오늘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그런 기대와 희망을 저버리는 지도자들을 마주하고 있다. 모욕감을 느끼고 분노하며 일할 맛조차 잃어가고 있다.

우리가 트럼프의 미국을 걱정할 형편은 아니다. 지도자 한 사람이 나라를 꾸려가는 미국이 아니다. 시스템이 움직인다. 대통령이 소속된 공화당이 미 의회 상·하 양원을 지배하고 있다지만 대통령과 정부를 견제하고 국가의 갈 길을 결정하는 데 주어진 역할에 충실할 것이라는 미국민들의 믿음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불안감은 사뭇 다르다. 국회와 정치인들은 국민들이 가장 불신하는 집단이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 세계 증시가 폭락했지만 이내 회복되었고 미국 달러 가치가 오히려 상승하는 것은 미국 사회의 복원력과 건강함을 믿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분노와 분열이 치유되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상황이 갈수록 나빠질 것이라 믿는 이들은 많지 않다.

정치 아웃사이더 트럼프의 당선이 세계 곳곳에 파장을 미칠 것이라는 예측이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대선의 해로 접어드는 한국에선 국민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우울증을 더해주는 정치인들의 선동과 포퓰리즘이 난무할 것이다. 미국과 달리 시스템이 아닌 지도자 한 사람의 지혜와 경륜에 의지해 온 한국인들에게 지도자를 뽑는 선거는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북한의 위협과 경제의 구조적 침체에 더해 동맹국의 낯선 지도자의 출현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

불안을 떨쳐버리는 데 효험 있는 자기 복원력에 대한 믿음을 우리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정치인이나 지도자 한 사람의 힘으로 복원력이 생기지는 않는다. 견제와 균형의 민주주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때 충격으로부터 빨리 회복할 수 있다. 밉고 미덥지 않은 국회일지라도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압박하고 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어처구니없는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1987년 이후 30년간의 민주주의 실험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우리들 자신은 답답하기 이를 데 없지만 밖에서 보는 한국 민주주의는 그래도 올바른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난 주말 100만 명이 참여한 광화문 광장의 평화적 시위는 외국의 선진 언론들조차 놀라움을 표하고 있다. 좌절하지 말자. 민주주의 시스템은 뭐니 뭐니 해도 국회가 제대로 움직여야 한다. 꽉 막힌 정치권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 역시 국민들의 힘이다. 이제 관심과 분노의 화살을 국회로 돌리자. 서울광장의 집회를 여의도 국회로 옮기자. 전 세계를 휩쓰는 분노와 불안의 돌풍 속에서 한국이 성공적인 예외로 남는 국민적 운동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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