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의 가족이야기] 봄이가 왔다

입력 2016-11-10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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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봄! 봄이가 왔다. 딸아이가 내 생일날, 손녀를 안겨 주었다. 내 생애 최고의 생일 선물이었다. 갓난애가 이목구비가 얼마나 또렷한지! 새털처럼 가벼운 봄이를 안고, 새근새근 잠자는 모습, 방싯 웃는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보고 또 보게 되었다. 사위와 딸이 수시로 보내주는 사진을 자기 전에도 보고 아침에 눈뜨면서도 본다. 사돈 양반들, 외삼촌, 이모할머니, 증조할머니까지 야단이다. 봄이의 존재감에 ‘존재감’이라는 단어를 이런 데 쓰는 거구나 싶었다. 신생아실에서 아기를 보며 행복해하는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 가족들을 보면서 어른들의 웃음이 저렇게 순수하고 해맑을 수도 있구나, 하고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됐다. 세상에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도 많은데 할아버지가 된 기쁨이 그중의 하나가 아닌가 한다.

사위에게 아빠가 된 소감을 물었더니 참으로 복잡 미묘해서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딸아이가 임신했을 때, 그리고 배가 나왔을 때에도 몰랐는데 막상 고물거리는 아기를, 온전히 자기들에게 의지할 한 생명을 보니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바뀌더라고 했다. 봄이가 살아갈 세상을 좀 더 예쁘게 만들어야겠다는 책임감도 느끼고 이제 정말 한가족이 되었다는 실감이 난다고 털어놓았다. ‘부모님도 우리를 낳고서 이렇게 기뻐하셨겠구나’ 하고 부모님 심정이 짐작이 되고, 설사를 하는 봄이를 보면서 자식이 아플 때 “내가 아파줄 수 있다면”이라고 하셨던 부모님의 절절한 심정도 이해된다고 했다. 딸아이 역시 엄마도 이런 고통을 겪으며 우리를 이만큼 키워주셨겠구나 싶어 눈물이 난다며, 이제는 입덧했던 괴로움이 기억도 잘 안 난다고 신기해했다.

하지만 젊은 부부들은 아이를 안 낳거나, 낳더라도 늦게 낳고 적게 낳는 것이 현실이다. 내 생활이 없이 아이 키우는 일에 매달려야 하는 압박감과 경제적인 부담,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이 어려운 세상에 우리 아이를 태어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까지, 저출산의 이유는 많다. 맞벌이 부부는 직장 일과 가사, 양육을 병행해야 하는 고통으로 갈등을 빚고 불화를 겪는다.

그러나 자식을 키우는 일에 희생과 고통만 따르는 건 아니다. 자녀의 성장과 발달을 지켜보는 즐거움과 기쁨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고 그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우리 아이가 탄생했다는 성취감과 자부심, 정서적 안정감, 그리고 풍요로워지는 삶도 출산이 가져다주는 선물이다. 젊은 부부들에게 가계를 계승한다는 의미는 설득력이 약하겠지만 부모가 된다는 것은 사회적 기대에 부합해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둘도 없는 기회다. 게다가 자녀가 부모의 이혼이나 가족 해체를 예방해 주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불화가 심한 부부나 재혼 부부가 이혼을 방지하기 위하여 아이부터 갖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아이들은 그런 도구로 이용되어서는 안 되며 모든 사람의 축복 속에서 태어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부지(할아버지), 하무니(할머니)” 하면서 우리 봄이가 안겨올 그날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 하루가 다르게 말이 늘어 대화가 가능해지는 날이 오면 봄이의 재롱에 얼마나 또 빠져들게 될지…. 손녀를 보러 가는 날이면 샤워도 하고 향수도 뿌리고 옷도 갖춰 입어야겠다. 하지만 손녀 바보가 되어 사위와 딸에게 수시로 찾아가고 오라고 채근하는 부담은 주지 않으려 한다. 보내오는 사진과 동영상으로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자며 아내와 자제하고 있다. 그리고 사위와 딸아이의 양육 방침을 최대한 존중하는 할아버지가 될 것이다. 봄이가 태어나면서 ‘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할아버지가 되자’는 다짐 하나가 늘었다. 20년, 30년, 우리 손주들이 펼쳐낼 또 다른 추억과 행복을 맛보기 위해 더욱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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